추적 사건과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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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안전성 심화조에 의한 대학살 사건 7

추적 사건과 진실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19 21:04




청취자 여러분, 김정일은 자신의 측근이였던 계응태까지 처벌하는 등 사회안전성 심화조에 막강한 힘을 실어 주었습니다. 계응태의 순간적인 몰락을 지켜봤던 권력기관들, 특히 보위부와 보위사령부에서는 심화조 활동에 대해 감히 시비를 걸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김정일이 배후에 있고 장성택이 실질적으로 이끄는 심화조는 누구도 다칠 수 없는 절대 권력으로 성장하게 되였던 것입니다. 권력이 어느 한쪽으로 집중되는 것을 늘 경계해 왔던 김정일은 사회안전성의 권한이 확대되는 것을 그대로 두고보지 않았습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봤지만 보위부와 보위사령부의 경쟁심을 자극하는 방법으로 사회안전성을 견제해 나갈 준비를 하였습니다.



처음에 국가안전보위부와 무력부 보위사령부는 매우 조심스럽게 움직였습니다. 사회안전성의 배후에 장성택이 있고 그는 김정일이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지지하는 사람이였기 때문에 두 기관의 공동작전은 극비리에 진행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선을 발동해 전국의 심화조 예심실에 도청장치를 설치하고 매 건을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도청 내용이 하나같이 사회안전성의 고문과 허위과장으로 일관된 사업실태와 권력람용을 명백하게 폭로하고 있었습니다. 국가안전보위부와 무력부 보위사령부는 공동문건 형식으로 사회안전성 심화조 사건으로 인한 민심변화와 그 부정적 현상들을 골자로 하는 정세보고서를 작성하고, 방증자료인 록음 테이프를 김정일에게 제출했습니다. 김정일은 이 문건을 통해 당과 군대, 내각 내의 권력지반 정돈과 강화를 목적으로 김일성의 측근들을 제거하기 위해 시작했던 심화조 사업이, 본래의 의도를 넘어 사회적인 불안과 김정일 자신에 대한 불신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김정일은 대책보고서까지 준비한 국가안전보위부와 무력부 보위사령부에 힘을 실어 주게 되였습니다.



김정일 : 이번에 보위부와 보위사령부에서 올린 문건이 아주 잘 됐습니다. 두 기관에서 사회 안전성 심화조 사건에 대해 제 때에 충고를 주었어요. 내가 모르고 있는 사이에 나라가 망할 뻔 했습니다.



김정일은 두 기관에서 올린 제의서에 친필수표을 하고 즉시 중앙당 비상회의를 열었습니다.



김정일 : 심화조를 해산하고 그 지휘성원들을 모두 체포하라. 사회안전성의 권력전횡과 고문행위를 조사하고 이를 위해 중앙당에 특별검열그루빠를 조직하라.



그러지 않아도 사회안전원들에 대한 원한과 증오가 사무칠 대로 사무쳤던 사람들은 그 소식을 듣고 환호했습니다. 그리고 마치 폭동이라도 일으키듯 안전원 복장을 한 사람만 봐도 돌을 던지고 침을 뱉었습니다. 김정일의 방침이 떨어진 이후 전국 각 도·시·군 안전부는 대문을 닫고 중앙에서 파견된 지도성원에 의해 검열총화에 들어갔습니다. 중앙당과 국가안전보위부, 무력부 보위사령부, 중앙검찰소 공동으로 조직된 검열단 성원이 전국 각 지역에 급파되여 한 주일이라는 짧은 검열과정을 끝내고 그 결과보고서를 김정일에게 올렸습니다. 김정일은 인민들의 원성이 행여나 자신에게 겨눠질까봐 재빠르게 ‘심화조 사건’을 현대판 ‘민생단 사건’으로 규정하고 숙청사업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자기 스스로를 피해자들의 구원자로 포장해 자신은 심화조에 전혀 관련이 없다는 식으로 선전을 하였습니다.



남1 : 지금까지 진행하여 온 사회안전성의 심화조 사업은 권력야심에 눈이 먼 사회안전성 정치국장 채문덕과 그 일당이 자기의 공명과 출세를 위해 벌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놈들은 오랜 당 간부들을 제거하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사법기관의 수뇌부에 오르려 했습니다. 그런데 위대한 장군님께서 제 때에 사태를 수습하시여 억울하게 희생될 뻔한 수많은 사람을 구해주시였습니다.



김정일은 전국의 강연회에서 사회안전성 심화조의 죄행을 폭로하는 당 중앙 검열 총화보고서를 랑독하게 하고, 중앙당 간부강연회에서는 국가안전보위부와 무력부 보위사령부가 록음한 테이프 자료를 기초로 고문행위까지 구체적으로 소개하도록 했습니다. 이 얼마나 파렴치하고 뻔뻔한 행위입니까? 수많은 간부들을 끔찍하게 죽인 장본인이면서도 버젓이 자기를 구원자로 포장하고 광폭정치를 운운하다니, 이건 사람의 가죽을 쓰고는 도저히 하지 못할 인류최대의 사기극입니다.



그런데 간부들에 한에서만 공개됐던 테이프가 사회로 류출되면서 그것을 들은 많은 인민들이 경악합니다. 이에 김정일은 민심을 달래고 높아지는 사회의 험악한 분위기를 바로잡기 위해 대대적인 심화조 소탕작전을 벌이도록 지시했습니다. 이에 따라 심화조를 처음 조직했던 사회안전성 정치국장 채문덕과 중앙당 조직부 사회안전성 담당책임지도원 리철, 사회안전성 주민등록국 국장, 룡성구역 안전부 수사과장 등 네 사람에게 현대판 종파분자, 반혁명적인 권력야심가로 판결하고 총살에 처했습니다. 또한 사회안전성 참모장 황진택을 비롯한 몇몇 사람은 징역 15~20년의 중형, 심화조 세포조직을 책임졌던 각 도·시·군 안전부장과 정치부장은 10년형, 심화조 사업에 앞장서서 악독한 고문방법으로 예심조사했던 평양시 심화조 녀성 예심원을 비롯한 전국의 고문전문가 수백명에게는 무기징역형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전국의 안전원 6000명에게는 무거운 형벌을 언도하거나 철직, 추방시켰습니다. 한편 이 사건의 최대책임자인 장성택은 김정일의 매제라는 이유로 대대적인 숙청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심화조에 대한 숙청 사업이 거의 마무리될 때쯤 김정일은 마지막 꼼수를 부리는 것으로 심화조 사건에 대한 마침표를 찍으려고 했습니다.



김정일 : 심화조 사건 놓고 봤을 땐 사회안전성을 통째로 없애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서는 사회안전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참기로 했습니다. 다만 사회안 전성에 대한 인민들의 원한과 불신이 매우 크기 때문에 오늘부터 인민보안성이라고 이름을 바꾸겠습니다. 앞으로 인민보안성은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출발하도록 하여야 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김정일의 손발이 되여 인민들을 못살게 굴었던 보안원들의 비참한 운명을 지켜봤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교훈을 찾을 수 있습니다. 김정일에게 아무리 충성을 바쳐도 결국에는 희생자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추적, 사건과 진실 <사회안전성 심화조에 의한 대학살 사건>, 일곱 번째 이야기를 마칩니다.





*참고 및 인용 자료:‘親김일성 세력 제거작업 ‘심화조 사건’의 진상’(신동아. 2005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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