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사건과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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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안전성 심화조에 의한 대학살 사건 6

추적 사건과 진실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19 21:04




청취자 여러분, 우리는 지난 시간에 중앙당 본부당 책임비서 문성술과 평안남도 도당 책임비서 서윤석이 심화조의 고문으로 처참하게 무너지는 광경을 살펴봤습니다. 두 사람의 사건에서도 알 수 있지만 사회안전성 심화조는 과학적인 수사방법보다는 개인의 원한을 앞세우거나 잔혹한 고문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죄인으로 몰고 갔습니다.



심화조의 고문은 전기고문, 얼음고문, 손톱·발톱을 뽑는 고문 등 그 잔인성과 방법이 참으로 다양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악독하기로 유명했던 것은 비둘기 고문입니다. 사람의 팔과 다리를 뒤로 한데 모아 묶고 매달면 가슴이 비둘기 가슴처럼 둥그렇게 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이렇게 매달아놓고는 예심원이 피심자에게 먼저 질문을 합니다.



예심원 : 너 간첩이지?



피심자 : 아닙니다.



(군화발로 차는 소리)



피심자 : 으악....



예심원 : 너 간첩이지?



피심자 :아닙.... (군화발로 차는 소리) 으악....



최대한 옥죈 가슴을 군화발로 차면, 첫 발길질에는 갈비뼈가 부서지고 두 번째 발길질에는 부서진 뼈가 심장까지 찌를 만큼 안으로 박힙니다. 그 아픔이 더해지는 세 번째 발길질에는 자기를 포기하고 간첩혐의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스스로 폭로한 강연제강에도 심화조가 행한 고문의 잔인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강연제강에 따르면 평양시 안전국의 한 녀성 예심원은 예심과정에 진술을 완강히 부정하는 녀성 과학자의 젖꼭지를 도려냈다고 합니다. 당시 심화조의 사법처리 방법은 다른 기관들과 큰 차이가 있었는데 감옥에 있는 사람 숫자를 줄이고 성과를 올리기 위해, 일단 자백문건을 받아내여 죄명이 인정되면 상부의 수표를 받아 감옥 내에서 총살하였습니다.



중앙급 간부들 처리는 김정일의 비준을 받아야 했는데, 누구를 쏠지 이름까지 지명하여 김정일에게 올려보내서 친필서명이 떨어지면, 그대로 사회안전성 간부들이 나가서 직접 처형했습니다. 지방에서는 지방안전국 자체 결정으로 재판도 없이 총살하기도 했습니다. 심화조 총지휘부의 책임자들부터 이렇듯 김정일이 부여한 특권을 리용해 중앙당 본부당 책임비서까지 고문할 만큼 안하무인이였으니 도나 시·군 안전부 심화조 성원들은 더 말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심화조가 퍼져 있는 전국 곳곳에서 복수전과 피바다가 시작됐습니다. 6·25전쟁 시기 구월산 유격대, 지리산 유격대원으로 활동했던 김기선, 림형구 도당 책임비서들과 인민위원장들도 거의 전부 수감됐습니다. 박사, 교수, 로동자, 농민 등 직종에 관계없이 6·25전쟁을 경험한 사람들 가운데 의심이 가는 이들은 심화조에 불려가 예심을 받아야 했으며 평소 심화조 성원들과 앙숙이던 사람들은 대부분 고문으로 살해되거나 간첩루명을 뒤집어써야 했습니다.



고통과 억울함을 더욱 키운 것은 김정일의 최대악법인 ‘정치범 3대멸족’이였습니다. 사돈에 팔촌까지 정치범수용소나 산골로 쫓겨가는 신세에 빠진 사람들은 심화조에 걸려 처형된 사람들의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 우리 인민들 중에는 아직도 그때를 떠 올릴 때면 지옥이 바로 이런 데였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시는 분들이 많으실 줄 압니다. 그 어떤 조건이나 구실도 통하지 않았고,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였던 그 시절, 청취자 여러분,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김정일의 권력다지기를 위한 숙청놀음이였습니다.



심화조에 동원된 안전원들이 전국을 그야말로 피바다로 잠그고 있을 때 김정일은 국가안전보위부와 보위사령부를 강하게 질책했습니다.



김정일 : 사회안전원들도 이렇게 간첩을 잘 잡아내는데 너희들 국가안전보위 부와 보위사령부는 뭐 하는 거야!



이는 자기에 대한 충성심경쟁을 유도하기 위한 김정일식 정치방식입니다. 김정일은 특정 부서가 권한이 커질 것 같으면 이처럼 충성경쟁을 유도해, 누가 더 자기에게 아첨을 잘하는가에 따라 신임을 주는 척하는 수법을 자주 쓰고 있습니다. 결국 2000년 초 국가안전보위부와 무력부 보위사령부는 창건 이래 처음으로 ‘조직의 질적 향상을 높여 반혁명 분자들을 철저히 소멸하자’라는 안건으로 공동협의회를 가졌습니다. 대외적인 명분은 ‘간첩소탕’이였지만, 사실은 사회안전성의 권력횡포가 나라를 무너뜨릴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이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조률에 합의를 보고 대책을 토의하기 위해 모인 자리였습니다. 물론 이들 두 기관이 사회안전성의 과도한 권력람용과 허위과장 사업실태 보고를 처음부터 몰랐던 것은 아닙니다. 문성술 사건 때 이미 당 중앙위원회 사법담당 비서 계응태가 장성택에게 이 점을 경고한 바 있습니다.



계응태 : 장성택 동무, 지금 사회안전성 심화조의 권력람용이 도를 넘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사회적으로 혼동과 불안이 증폭되고 있는데 장 동무도 귀가 있으니 모르진 않을 텐데요.



장성택은 김정일에게 심화조의 성과를 보고하는 자리에서 계응태의 발언을 보고하였습니다.



장성택 : 장군님, 계응태가 질투가 나는지 자꾸 방해하려 들고 있습니다.



김정일 : 그 령감 왜 그래, 공부 좀 더 하게 하라!



김정일의 이 말 한 마디에 계응태는 1999년 철직되여 일흔이 넘은 나이에 김일성고급당학교 학생으로 ‘책가방’ 신세가 됐습니다.



추적, 사건과 진실 <사회안전성 심화조에 의한 대학살 사건>, 여섯 번째 이야기를 마칩니다.





*참고 및 인용 자료:‘親김일성 세력 제거작업 ‘심화조 사건’의 진상’(신동아. 2005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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