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악으로 가득찬 김정일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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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부 김정일의 대남테러

죄악으로 가득찬 김정일의 인생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2-11-09 19:07


안녕하십니까? 정민재입니다. ‘죄악으로 가득 찬 김정일의 인생’, 오늘은 김정일이 감행해온 대남테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김정일은 생전에 북남화해와 통일에 대해 곧잘 말했지만 실지로는 무력통일을 꿈꾸면서 남조선에 대한 각종 파괴와 테로를 일삼아왔습니다. 물론 그것은 김일성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김정일이 후계자로 등장해서부터는 더욱 심화됐습니다. 김정일이 감행한 대남파괴와 테로행위는 랍치행위로부터 시작해 남조선대통령 암살 시도 사건, 려객기 폭파사건 등 실로 다양합니다.

김정일은 후계자로 나선 1970년대부터 벌써 대남테로를 거리낌 없이 감행했는데요. 그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신상옥과 최은희 부부 랍치사건입니다. 당시 중앙당 대외정보조사부는 김정일의 직접적인 지시에 따라 남조선의 유명영화인들인 신상옥 최은희 부부를 각각 1978년 1월과 7월에 홍콩에서 강제로 랍치했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김정일도 직접 시인한 바 있습니다. 신상옥 최은희 부부가 북조선에 있을 때 록음한 김정일의 육성을 들어보겠습니다.

“남조선에서는 누구를 제일로 꼽냐? 그러니까 신감독이다. 첫째 조건이 이북 사람이다.
그래서 좋다. 그럼 그 사람을 한번 데려와야겠는데, 그런데 그 사람, 남자 데려오는 것은 좀 무리다. 무리인데 남자 데려오지 말고 신 감독을 유인, 유혹하자면 뭐가 필요한가? 그래서
실제 최 선생을 이렇게 데려다 놓았습니다.”

김정일은 신상옥 감독을 랍치하기 위해 최은희를 미끼로 리용했다고 고백했습니다. 랍치된 신상옥 최은희부부는 북조선에서 영화 “소금”과 “돌아오지 않은 밀사” 등 많은 작품들을 내놓았는데요. 하지만 랍치 8년만인 1986년 베를린국제영화제 참가 차 해외로 나갔다가 극적으로 탈출하게 됩니다. 결국 그들에 대한 김정일의 랍치행위는 만천하에 폭로되고 말았습니다.

김정일의 대남테로행위는 그가 실권을 잡은 1980년대 들어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남조선의 경기개발연구원 손광주 선임연구위원의 말입니다.

"김정일이 대남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것이 1980년대 들어와서입니다. 김정일이 중앙당 본 청사에 대남부서를 따라 모아 3호청사를 새로 지었어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대남사업을 했는데, 상당히 과격하게 했습니다."

김정일은 실권을 잡자마자 남조선에 대한 각종 테로를 직접 주도했는데요. 그 중에는 1983년 10월 9일에 발생한 먄마 아웅 산 국립묘지 폭파사건도 있습니다. 알려진바 와 같이 이 사건은 남조선의 전두환 대통령이 먄마를 공식 방문하고 있을 때 일어난 것으로 남조선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한 폭파테로였습니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다행히 무사했지만 그 사건으로 남조선의 리범석 외무장관과 함병춘 대통령 비서실장, 김재익 경제수석 등 17명의 고위인사들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테로를 감행한 북조선공작조가 먄마당국에 체포되었는데요. 그 중 한명인 강민철상위는 그것이 북조선당국의 치밀한 사전준비에 의한 테로였음을 죄다 자백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아웅 산 폭파사건은 인민무력부 정찰 국에서 지휘를 했고, 중앙당 작전부가 테로범들을 선박에 태워 량곤으로 데려다주기까지 했습니다. 그 모든 것을 계획한 것은 바로 김정일이었는데요. 김정일은 사건 발생 1년 전부터 그 테로를 모의해왔습니다. 손광주 연구위원의 말입니다.

"아웅산폭파사건은 1983년에 일어났는데, 사실상 1982년 가을에 이미 전두환 대통령이 아프리카를 순방할 때 아프리카 가봉에서 전두환 대통령을 암살할 계획이 이미 세워졌다고 합니다. 아프리카에 전두환 대통령이 오게 되면 암살하는 것으로 계획이 잡혀있었으나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김정일이 지시해서 취소가 됐지요. 당시에 아프리카에서 남한 대통령을 암살하게 될 경우 유엔에서 아프리카의 지지를 상실 할 수 있다. 이런 우려 때문에 취소를 한 거지요."

김정일이 주도한 대남테로는 비단 이것뿐이 아닙니다. 지난 1987년 11월 29일 바그다드를 출발해 서울로 향하던 남조선의 대한항공기가 갑자기 공중에서 폭파되고 맙니다. 그로 인해 당시 비행기에 타고 있던 남조선로동자들 100여명이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테로범들은 바로 중앙당 대외정보조사부 소속 대남공작원들인 김승일과 김현희였습니다. 그들은 사건 이후 정체가 탄로 나게 되자 독약자살을 시도했는데요. 하지만 김승일만 죽고 김현희는 실패해 남조선으로 압송됐습니다. 김현희가 자백한데 따르면 남조선비행기 공중폭파는 1987년 10월 7일 김정일의 친필지시로 88 서울올림픽을 방해하고 남조선정부에 대한 불신을 조장할 목적으로 감행된 것이었습니다. 현재 남조선에 살고 있는 김현희가 2012년 9월 23일 텔레비죤 기자회견에서 말한 내용입니다.

“제가 임무를 받을 때 같이 준비했던 담당과장이 얘기를 했습니다. 88년 1월 17일이 서울 올림픽 참가여부를 결정하는, 참가신청을 하는 마감일이라고, 1월 17일까지 마감신청을 해야 한다고, 세계국가들이 서울올림픽에 참가하는가 안하는가를 그 때까지 신청하게 돼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KAL기를 테로하자, 그렇게 함으로써 전 세계가 위험하다, 서울올림픽에 갔다가 잘못되겠다, 라고 서울올림픽에 참가하는 걸 불안하게, 올림픽참가를 보이콧 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11월 29일에 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사건 이후 독재당국에 대한 전 세계의 비난이 쏟아지고 북조선은 테로국으로 지정되며 국제사회에서 문제 국가로 락인 찍혔습니다. 화가 난 김정일은 “녀자는 요물”이라고 하면서 김현희가 속해있던 대외정보조사부에서 녀성공작원들을 모두 내보내는 조치까지 취했습니다.

이 밖에도 김정일이 감행한 대남테로는 부지기수인데요. 김정일은 죽기 전까지 자기 아들 김정은과 함께 천안호사건과 연평도 사건을 일으키는 등 남조선에 대한 테로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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