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선총련의 죄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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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부 불법송금 (1)

우리 조선총련의 죄와 벌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2-09-24 19:07


1980년대 말 무렵이 되자 북조선의 핵개발의혹에 대해 일본 언론들이 크게 떠들기 시작했다. 초점이 된 것은 평안북도 녕변 부근에 위치한 몇 개의 핵관련시설이었다. 즉 북조선의 핵무기개발에 일본에서 보내지는 자금이 리용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송금의혹 문제가 불거진 것이었다. 이 보도에 대해 총련은 강력히 부인했지만 일본에서 해마다 북조선으로 거액의 돈이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다만 그 액수가 년간 1000억 엔 이상 이라는 데 너무 놀라서 다들 반신반의 하고 있었을 뿐이다. 일본에서 비합법적으로 북조선으로 보내지는 돈은 대부분 니이가타와 원산항을 오가는 비정기 항로를 통해 현금으로 운반된다. 하지만 그 돈이 정말로 핵개발에 리용되고 있는 지는 나도 잘 모른다.



북조선에 대한 총련의 불법송금은 총련결성 직후부터 계속돼왔다. 총련은 해마다 김일성, 김정일 부자생일, 9월 9일 공화국 창건일, 10월 10일 당창건기념일 등 북조선에서 큰 축하행사가 있을 때마다 조국에 대한 충성표시로 동포들에게 많은 기부를 부추기곤 하였다. 그것이 조직적인 사업으로 추진된 것은 1979년 단기조국방문단이 시작됐을 때부터다. 즉 그해부터 일반 동포들의 조국왕래가 실현되었던 것이다. 그때까지 북조선을 방문한다고 하면 총련간부들이 김일성에게 인사차 방문하는 것이 고작이었고 일반 동포들의 북조선방문은 오로지 영구 귀국만을 의미하였다



1959년부터 시작된 귀국운동으로 약 10만 명의 재일동포들이 북조선으로 영구 귀국하였다. 가족이 모두 귀국한 동포들도 있었지만 한 가족이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서로 헤어져 사는 동포들도 셀 수 없이 많았다.



“머지않아 자유롭게 북조선을 왕래 할 수 있게 된다.”



처음에는 다들 그렇게 알고 있었다. 북조선에 귀국한 사람이나 일본에 남은 사람이나 그 선전을 그대로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일본과 북조선과의 자유왕래는 실현되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집에서는 북조선으로 귀국한 자식들의 소식이 갑자기 끊기고, 또 어떤 집에서는 귀국한 아들이 총살당한 것 같다는 등 흉흉한 소식들이 들려왔다.



북조선당국이 재일동포들의 친척방문을 허락하지 않은 리유는 뻔하였다. 재일동포들에게 북조선으로 간 귀국자들의 궁핍한 생활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러던 것이 1979년 그해부터 갑자기 생각을 바꾸어 재일동포들의 친척방문까지 허락한 것은 그만한 속심이 있었다. 북조선측은 재일동포들의 친척방문을 허락하면서 조건을 내걸었다. 즉 아들과 딸, 형제와 부모를 만나게 해주겠으니까 돈을 내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신청자들이 쇄도했다. 어찌 그러지 않으랴. 부푼 희망과 기대를 안고 북조선으로 귀국한 지 근 20년이다. 그 동안 소식도 없는 아들과 딸이 살아나있는지 확인도 하고 만나보고도 싶은 것이다. 단기방문단은 최소 100명에서 최대 150명 이상이 정원이었지만 매회 그 몇 배를 넘었다. 예전에는 만경봉호가 귀국자들을 태우고 갔지만 이번에는 삼지연호라는 대형려객선이 단기방문단 성원들을 실어 날랐다.



나는 제1차 단기조국방문단의 총무로서 방문자들의 서류신청과 출입국수속 등을 맡아했다. 대다수가 자식들을 한번만이라도 만나고 싶다는 로부부들이었다. 한번은 걸음걸이가 불편한 로부부가 딸 부부와 손자에게 의지한 채 찾아왔다. 귀국운동이 한창이던 때 너무 살기 힘들어 아직 소학교도 졸업 못한 딸만을 남겨두고 나머지 자식들을 모두 귀국시켰다는 것이었다. 죽기 전에 그 자식들을 만나도 보고 생활도 돌봐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할머니: (신음소리, 힘겹게) 여기가 단기조국방문 신청을 받는 곳입니까?

한광희: (밝게) 네, 맞습니다. 자녀분들이 모두 조국에 있습니까?

할머니: 네. 우리 애들이 지금 그곳에 살고 있어요. 여기 막내딸만 빼고 다 귀국했지요. 이렇게 20년 되도록 못 볼 줄이야, 어떻게 살고 있는지, 죽기 전에 꼭 만나보고 싶어요.

한광희: 예- 잘 오셨습니다. 그런데 누구랑 같이 가실 건지, 할머니 혼자서는 무리십니다.

할머니: 나하고 우리 령감, 그리고 막내 딸 부부하고 손자 이렇게 다섯이 갈거예요.



일가족 5명의 단기조국방문, 북조선에서의 체류기간은 2주일이다. 방문단 성원으로 선택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한 기부를 해야 했다. 최소한 200만 엔에서 300만 엔, 그러나 그것으로는 자식들과 호텔 다방에서 겨우 한 시간정도만 만나볼 수 있었다. 그것도 옆에서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 중요하지 않은 잡담이나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자식들이 살고 있는 집들까지 일일이 다녀보자면 좀 더 많은 돈을 내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 액수가 1000만 엔이나 했다.



단기방문단으로 가는 동포들 모두가 빠찡코 같은 큰 장사를 하고 있으면 모를까 대부분은 월급쟁이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1000만엔이라는 돈은 굉장히 큰 부담이었다. 하지만 오로지 20년 가까이 헤어져있는 자식들을 만나보겠다는 일념으로 가슴 불태우는 로부부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결국 그 로부부는 20년 가까이 아껴쓰며 한 푼 두 푼 모은 저금을 몽땅 털어 단기조국방문에 오르고야 말았다.



1차 방문단에서 2억 내지 3억 엔의 돈이 모아졌다. 단기방문단이 년간 15회에서 20회 정도 갔으니까 그를 통해 북조선당국이 얻은 수입은 해마다 30억 내지 60억 엔이나 되었다. 북조선으로서는 그야말로 큰 돈 벌이었던 것이다. 단기조국방문단 성원들과 함께 그 돈은 모두 배편으로 북조선으로 보내지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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