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악으로 가득찬 김정일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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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부 김정일이 추진해온 핵개발 2

죄악으로 가득찬 김정일의 인생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2-10-19 18:05


안녕하십니까? 정민재입니다. ‘죄악으로 가득 찬 김정일의 인생’, 오늘도 전 시간에 이어서 김정일이 추진해온 핵개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994년 전쟁직전까지 치닫던 북조선의 핵위기는 그해 10월 조미사이에 체결된 제네바합의로 극적으로 타개됩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8년 후인 2002년 10월 김정일 정권은 당시 평양을 방문한 미국 대통령특사 켈리차관보가 농축우라늄에 의한 핵개발의혹을 제기하자 숨기지 않고 시인을 했습니다. 2003년 1월 중국주재 최진수 북조선대사의 기자회견입니다.

“우리는 미국대통령 특사에게 농축우라늄방법에 의한 것보다 더 한 무기를 만들 수 있게 됐다.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이것은 제네바합의 이후에도 김정일 정권이 뒤에서 핵개발을 계속해왔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었습니다. 우라늄농축 핵개발은 기존의 플루토늄방식과는 달리 방사능 방출정도가 적고 연구개발시설을 숨길 수도 있는 등 국제사회 감시망을 피하기가 비교적 쉬웠습니다. 이 점을 리용해 김정일정권은 제네바합의 후에도 방식을 바꾸어 몰래 핵개발을 지속해왔던 것입니다. 국제사회는 북한에 우라늄농축기술을 넘겨준 나라로 파키스탄을 지목했습니다. 일본 마이니치신문 요시다 기자의 말입니다.

"파키스탄이 핵시험에 성공한 직후인 98년 6월 파키스탄 주재 북한외교관 부인이 살해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북한 외교관 부인의 관속에 고농축 우라늄 핵무기개발을 위한 원심분리기 샘플과 설계도를 넣어 보냈습니다."

북조선의 핵문제는 다시 심각해져 2차 핵위기까지 불거집니다. 미국은 김정일정권이 우라늄핵개발을 시인한 지 한 달 만에 제네바 합의 이후 해마다 북조선에 주었던 50만톤의 중유공급을 전면 중단한다고 선언합니다. 그에 반발하여 김정일정권은 다음 달 12월에 핵동결 전면해제를 발표합니다. 이 후 그것을 실지 행동에 옮겨 핵시설봉인을 제거하는 등 국제원자력기구의 감시체제를 죄다 붕괴시킵니다. 국제원자력기구 감시성원들까지 추방했습니다. 그리고는 미국의 일방적인 제네바합의 파기로 핵무기전파방지조약 준수가 불가능해졌다며 다음해인 2003년 1월 10일 그 탈퇴를 공식선언합니다. 사실 우라늄농축 핵개발을 시인한 때부터 핵무기전파방지조약 탈퇴까지는 보통 1년이란 기간이 예상되는데요. 그렇게 볼 때 김정일정권의 반응은 굉장히 빠른 속도였습니다. 일명 벼랑끝전술을 구사한 건데요. 그것은 바로 지난 94년 제네바합의 때처럼 일부러 극단적인 상황을 초래해 원하는 것을 얻어보겠다는 속셈 이였습니다. 남조선 경기개발연구원 손광주 선임연구위원의 말입니다.

"김정일은 우리는 NPT체제에 복귀한다는 아주 당연한 요구를 들어주고 중유도 지원받고 경수로 2기도 제공받기로 합니다. 그래서 내부적으로 우리는 미국과의 외교전에서 승리했다고 막 떠들게 되는데요. 결국은 국제사회가 북조선과의 협상에서 실패를 했는데, 그 교훈이 상당히 컸지요."

하지만 2002년 당시 국제정세는 제네바합의가 도출된 90년대와는 질적으로 달랐습니다. 우선 국제사회는 제네바합의를 철저히 어긴 김정일정권을 더는 신뢰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특히 2001년 9. 11테로사건을 계기로 테로와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정부는 그 연장선에서 핵위협을 초래하는 김정일정권에 대해 더욱 강경한 립장을 취했습니다. 당시 2차 핵위기가 시작되면서 그 해결을 위한 새로운 협상구도가 필요했는데요. 김정일정권은 계속 미국과의 량자회담을 주장했지만 미국은 절대로 안 된다는 립장이었습니다. 결국 중국의 중재로 북핵문제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2003년 8월 베이징에서 처음으로 개최됩니다.

미국은 과거와 같은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첫 회담에서부터 김정일정권에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폐기를 요구했습니다. 즉 선 핵포기를 주장했는데요. 하지만 김정일정권은 체제보장과 경제지원을 해주면 핵포기를 하겠다는 ‘일괄타결·동시행동’ 립장으로 맞섰습니다.

6자회담은 그 동안 핵문제 해결을 위한 최선의 방안으로 총 6개항의 9. 19공동성명과 그 실현을 위한 2. 13합의와 10.3합의를 도출해냈습니다. 이것은 북조선의 핵문제를 대화의 방법으로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국제사회의 한결 같은 의지와 노력에 의해 마련된 귀중한 성과입니다. 하지만 김정일정권은 그 동안 두 번의 핵시험과 우라늄농축 핵개발까지 추진하면서 그 모든 것을 죄다 짓밟았습니다. 핵문제를 국제사회를 위협해 뭔가를 얻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리용했을 뿐 진심으로 그 해결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남조선의 세종연구소 백학순 연구위원의 말입니다.

“농축프로그람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밝혀졌고, 더구나 북한이 그것을 인정한 상황에서 도대체 말이 안 되고 전혀 믿을 수 없는 국가입니다. 더구나 지켜야 할 조약들을 지키지 않고, 그것을 또 하나의 카드로 사용해서 뭘 요구를 하는 것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그야말로 대화상대가 안 되는 국가라고 보고 있는거죠”


핵개발은 국제평화와 안전에 대한 커다란 위협입니다. 게다가 핵개발에는 많은 비용이 들어갑니다. 그 동안 심각한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정권이 진행한 두 번의 핵시험에 무려 65억 이상의 딸라가 들어갔습니다. 또한 핵개발로 유엔의 제재와 국제적 고립까지 자초했습니다. 이런 무모한 핵개발을 김정일정권이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온 것은 오로지 독재권력 유지를 위해서입니다. 김정일이 죽은 후 이제는 김정은이 그것을 물려받았습니다. 올해 4월 김정은은 헌법에 공화국을 핵보유국으로 명기했습니다. 이런 김씨정권이 존재하는 한 북조선은 계속 가난과 굶주림, 국제적 고립에 시달려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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