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회고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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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부 조국으로의 송환과 징용, 두번째

황장엽 회고록 2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3-01-16 18:06


어머니는 내가 징용을 나가게 되어 식량배급을 받게 것을 다행으로 여겼고, 아버지는 형이 죽었을 때를 얘기하면서 내가 일본에 일본놈으로 바뀌지나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그렇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삼척으로 가기 위해 승호리에서 기차를 탔다. 벌써 안주 쪽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오는 징용공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싸준 것은 땅에 묻어둔 무뿐이었다. 하지만 그 무는 혼자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허기를 채워 주었다. 나는 삼척에서 1945 8 15 조국이 해방될 때까지 1 6 동안 징용공으로 노동했다. 처음에는 나를 포함해 26명의 징용공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 둘씩 떠나더니 결국 광복을 나와 맞은 사람은 8명뿐이었다.


 


징용생활 1 6개월은 어떤 면에서는 내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 나는 혼자 고학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과는 거의 접촉이 없었던 만큼 사교를 몰랐으며, 의사를 표현하는 데도 어색한 편이었다. 그러나 징용생활에서 평안도, 함경도, 전라도, 경상도 도처에서 모인 사람들이 합숙소에서 집단생활을 했기 때문에 자연히 그들과 어울려 많은 것을 배울 있었다. 삼척에 있는 동안 나는 사투리를 고치려고 많은 신경을 썼다.


 


내가 평안도 사투리를 너무 심하게 써서 동무들이 놀려댔기 때문이다. 그래서 1 6개월 동안 의식적으로 노력을 하자 조금씩 고칠 있었다. 징용공 중에서는 내가 제일 어렸는데, 도쿄제국대학과 교토제국대학, 도오시샤(同志社)대학에 다니던 우수한 사람들도 있었다.


  (중략)


 


해설: 황장엽의 회고록, 나는 력사의 진리를 보았다, 지금까지 해설의 윤옥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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