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자, 평성 여자의 결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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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번째 편지-교육

서울 여자, 평성 여자의 결혼 이야기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3-10-10 20:46

 

분희언니

언니, 잘 지냈죠? 저는 요즘 별로에요. 어제는 신랑이랑 애들 교육문제로 싸웠어요. 언성높이고 싸운 적이 별로 없는데 어제는 나도 할 말은 해야겠더라구요.

글쎄 언니, 내말 좀 들어봐요. 저희 큰애는 이제 6살이고 작은애가 4살이잖아요. 근데 큰애가 좀 똘똘해서 별로 가르친 것도 없는데 4살 때 한글을 읽고, 지금은 한두문장이지만 일기를 써요. 그래서 우리애가 좀 특별한가 싶기도 하고, 알아서 하니까 가르치는 것에 크게 신경을 안썼어요. 근데, 며칠 전에 8살짜리 조카가 집에 왔다갔는데 걔는 한자공부를 하더라구요. 엄마가 한자숙제도 매일 내주고, 수학도 하고, 일기도 쓰고....

그런걸 보더니 신랑이 우리 애들은 공부 안시키냐는 거에요. 큰애가 총명하더니 지금은 평범해졌다나? 나는 그만한 나이 때에 무슨 공부냐면서 한마디 쏘아붙였죠? 그랬더니 다른 집들은 엄마가 나서서 애들 공부계획, 정보수집을 한다는데 너무 한가한 거 아니냐고 한소리 더하잖아요?

저도 애들 교육 때문에 고민을 안하는 것은 아닌데 너무 앞서나가니까 속상하더라구요. 

사실 등 떠밀려서 시작하긴 했지만 5살 때는 방문교사 불러서 독서지도도 시켰고요, 어린이집에서도 영어다 수학이다 벌써 특기교육이 있거든요. 그런데 거기다 또 집에서 공부를 시키라니 언니, 그건 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 이제 여섯 살인데?

그래서 공부 시킬거면 당신이 좀 하라고 더 큰소리를 쳤더니, 그날 저녁에 제가 늦게 집에 가니 신랑이 애들을 앉혀놓고 뭐했는지 아세요? 글쎄 알파벳을 쓰게 하더라구요. 매일 한 장씩 쓰라고 숙제까지 내주면서... 웃기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고. 애들 교육은 대체 어떻게 시켜야하는 걸까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는 공부를 잘하게 하고 싶긴한데, 그걸 언제부터, 무엇부터 시켜야할지 벌써 고민을 하게 될 줄이야… 
암튼 고민이네요.


지우에게
지우야. 네 편지 반갑게 받았다. 6살짜리가 벌써 일기를 쓸 정도라니, 총명한 건 널 닮은 모양이다. 하긴 네 남편은 또 자길 닮았다고 하지? 흔히 남자들이 그러두라구. ㅎㅎ
그나저나 남편이 자식교육에 관심을 갖고, 영어자모를 배워주었다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 그게 내가 바랬던 남편의 모습이고, 아버지 모습인데…

내 남편은 자식교육에 왜 그렇게 무관심이였던지, 분명 직업이 교육자인데 말이야. 하긴 관심이 없었다기 보다는 나하고 달랐다고 해야 되나?

난 우리 딸이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 ‘남이장군 시’를 읊어주고 외우게 했어… 여자라도 장군같은 기개를 가져야한다고 생각했거든.

~백두산의 흰돌은 칼을 갈아 다 없애고 두만강의 푸른물은 말을 먹여 다 말리리
사나이 스물에 나라평정 못하면 후세에 그 누가 대장부라 하리요.~

딸이 4살 때 아버지 앞에서 이 시를 외우니까 남편이 나를 힐끗 보더니 아무도 모르는 아이한데 그런 시부터 배워준다고 면박을 주더라? 난 나대로 그 시를 배워주는데 뭐 잘못 되였는가고 대꾸하고...

딸이 6살이 되자 나는 일반 대화를 중국어로 하게 했어, ‘감사합니다.’ ‘밥 먹자.’ 등 간단한 인사말은 중국말로 딸이 대화할 수 있게 되니까 그때는 남편이 진짜 화를 내더라구…
날보고 자본주의 물이 들었다나… 내가 중국에 일년 갔다 왔었거든. 중국에 일년 있으면서 내가 깨달은 것 중의 하나가 중국어를 배우는 것이 전망 있다고 남편에게 말했지만, 오히려 그게 더 남편의 성미를 자극했나봐. 당장 걷어치우라고 소리를 지르더라.

내 머리가 썩어빠졌단다. 난 더 말할 상대가 되지 않아 지고 말았어. 난 분명 교육을 하는데 남편에게는 왜 그것이 날라리 바람으로 보였던지… 이해하려고 애를 썼지만 지금도 이해가 안돼. 
그래도 남편 의견은 존중해야 되서 중국말 가정교사 계획도 포기하고 내가 배워주던 가정교육도 그만두었어. 친정아버지가 중국말 가정교실을 운영 하셨는데 거기에 우리 딸을 넣으려고 하였거든. 그때 당시에 한 달에 쌀 열 키로값이였지만 학생들이 생각보다 많았어. 다른 사람들도 나름대로 중국어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거지. 아마 지금은 외국어 열풍이 불고 있을거야.  

아직도 그때일 생각하면 화가 난다.
왜 남편이 중국어교육을 반대했는지. 그때 내가 고집을 더 피워서 교육을 시켰으면 지금 더 좋았을텐데하는 후회도 되고.

남편이 가르치던 학생들 중에는 먹을 것이 없어 제때 학교에 다니지 못해 자기 이름도 쓸 줄 모르는 학생들이 많았거든… 남편에게는 나라의 교육현실에 대한 교육자의 양심 때문에 자기 자식에게 마음껏 교육을 시키기 어려웠는지 모르지. 지금 생각해보니 그러네.

당시에는 군대 초모생들에게 국어교과서를 읽어보게 하는 것이 웃을 일은 아니였으니까 말이야.

그래도 난 자식의 앞날을 책임진 엄마의 자리를 지키고 싶었거든…
오늘은 이만할께. 

언니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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