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자, 평성 여자의 결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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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연최지우, 이분희, 박지민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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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네 번째 이야기-문화 생활

서울 여자, 평성 여자의 결혼 이야기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1970-01-01 09:00


분희언니에게

언니, 잘 지내요? 건강은 괜찮구요? 저야 뭐, 아플새도 없이 이리뛰고 저리뛰고 맨날 전쟁이죠. 애들 데리고 왔다갔다 종종거리다보니 체력이 좋아진건지 감기도 잘 안걸리네요.

지난 주말에는 처음으로 온 가족이 공연을 보러 가기로 했는데, 결국 부산만 떨다가 못가고 말았어요. 신랑이 사정이 생겨서 못간 건데, 또 우리끼리 가려니까 발이 안떨어지더라구요. 날씨는 춥고, 꼬맹이들 데리고 버스 탈 엄두도 안 나고... 결국 가지 말자고 말해놓고는 그 주말내내 애들한테 시달렸어요. 공연히 애들한테 바람만 집어넣었다가 못가게 되니까 아이들이 울고  불고 난리도 아니었죠. 예약한 표도 아까웠지만 그거야 환불하면 되는거고, 그보다 애들한테 문화생활 한 번 못시켜준 게 마음에 걸려요.

지방에 사는 친구들은 저한테 서울엔 공연도 많고 놀데도 많아서 좋겠다고 늘 부러워하는데 정작 저는 그런데 잘 못갔거든요. 미술관, 공연장, 놀이공원이 아무리 많으면 뭐해요, 그것도 시간과 돈이 있어야 가는 거잖아요. 

그러다가 큰애가 한 말이 마음에 걸려서 큰맘 먹고 공연예약을 했죠. 큰 애는 어린이집에서 월요일이면 주말에 어떻게 보내는지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어요. 그러면 나연이는 눈썰매를 타고왔다, 현성이는 엄마랑 연극을 보고왔다, 민준이는 놀이공원에 갔다 왔다. 다들 재잘재잘 할말이 많은데 저희애는 할 말이 없었다는 거에요. 갑자기 그 말을 듣고 나니 괜히 미안해서 다음주에는 어린이공연을 보러가자고 큰소리를 쳐놨는데, 못가게 되버렸죠. 또 후회가 막 밀려오네요.

지금은 좀 더 아끼고 절약할 때라는 생각에 애들 좀 더 크면 가자, 다음에, 다음에, 그러다보니 1년이 지나가고, 그 맘때 정서적으로 필요한 시기를 놓쳐 버린 건 아닌지.  

그런 저한테 신랑은 아이들 어릴 때 뭘 알겠냐고, 나는 어릴 때 공연은커녕 영화 한편 못보고 컸다고 큰소리 치는데 제 생각은 다르거든요. 우리 어릴 때야 뭐 친구들도 그런 생활이 흔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너무나 흔한 건데... 애들한텐 그런 경험이 다 공감대거든요. 가뜩이나 큰애가 약간 소심한 편이라 마음이 쓰이는데 다른 애들 다하거 못해주니까 더 마음이 쓰여요. 남들 하는 피아노 태권도 학원은 못보내줄지언정 가끔 그런데라도 다녀야겠다고 결심했는데 이렇게 한해가 가버리네요. 그게 지금 내가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언니한테는 이것도 투정이죠? 그래도 그래요. 애들이 주변에서 보는 게 있는데 자기들만 주말마다 집에만 있으면,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게 있거든요. 직장 때문에 애들한테 해주고 싶은거 못해준다는 피해의식이 있어서 그런지 늘 뭔가 부족하단 생각이 들어요.
에휴, 오늘도 언니에게 투정만 늘어놓다가 말았네. 언니, 2013년 잘 마무리하고, 2014년에는 더 좋은 일 많이 생기길 바랄께요.

지우가
지우에게

지우야. 네 편지 읽다가 가슴아픈 추억이 떠올라 울고 말았어.
너처럼 딸들을 데리고 공연나들이는 못 갈망정 난 엄마라구 따라가겠다는 딸을 사정없이 밀쳐내고 가버린적이 있거든...
울며불어대는 딸을 힘껏 때리고, 가려는데 또 자전거 안장을 붙들고 왕왕 울어대기에  처음보다 더 힘껏 때리고 자전거 타고 가버렸던 그때가 다시 생각나서 마음이 미여진다...

내일만 일이라구 내가 왜 그랬을까?...
한시간쯤 지나 집에 도착하니 마당에서 그냥 울고 있지 않겠니? 얼마나 울어대는지 개가 다 누워있지도 못하고 딸을 처량하게 지켜보고 있더라니까... 그때는 웃어버렸는데...
지금 생각하니 내가 개보다도 인정이 없었던거 아닐까싶다.

북한을 떠나 중국에 와서야 그일이 후회가 되서 제일먼저 자전거를 샀었거든... 어린이용 자전거였는데 진짜 이뻣어...타양살이 그 힘든 속에서도 자전거 타고 좋아할 딸을 그리며 이겨낸거 같다.
어느날 남편이 세관으로 왔다는 전화가 오드라구...얼마나 숨이 나가던지, 우리딸에게 자전거를 보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온 몸에 힘이 생기는데...

난 밤잠을 자지 않고 딸에게 보낼 옷이랑, 컴퓨터랑 포장하고, 남편 것은 좋은 보약과 약을 트렁크에 가득 채워넣었어. 냉동기요, 티비는 말할것도 없구 옷짐만 굉장하였지...
큰 트럭으로 한차 되더라니까... 그걸 큰아버지에게 부탁해서 남양세관으로 보냈어.
그리고는 혼자 갖가지 상상을 해댔지... 그 중에서도 자전거를 타고 좋아하는 딸을 그려보니 아~그날만큼 행복하였던 날도 드물었던거 같다.

그러나 그 행복도 순간일뿐... 아침에 나간 큰아버지가 저녁이 되도록 나오시지 않는거야... 불안하고 무섭기 시작하였어. 뭔일 생겼나? 안절부절 못하는데 두만강다리로 걸어오는 큰아버지가 보이지 않겠니?
내가 막 달려가서 큰아버지를 반기는데 70세 노인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지 않겠니? 가지고 나간 짐을 모두 빼앗겼다는거야...
주머니에서 한국전화번호가 나왔다구 특무로 몰려 하루종일 감방에서 취조 받다가 짐한차 무상몰수당하구 쫒겨오는 길이래...

지우야, 사람이 너무 급작스러운 일 닥치면 아무 감각도 안나더라. 눈물도 안나구 그냥 바보처럼 난 아무말도 하지 않고 연길로 돌아왔어. 몇 시간동안 식물인간처럼 숨만 쉬였지...
밤에 혼자 잠자리에 들어서야 참았던 오혈이 터져버리는데, 꺽꺽거리며 이불안에서 울어대구나니까 코가 막혀 숨도 쉬지 못하겠더라구... 알지못할 반감은 자꾸 오르고, 날 진정시키느라고 가슴만 치면서 울어댔지만 속이 그냥 아픈거 있지...
심장 아프다는 말을 처음 이해한거 같다. 이젠 3년 전 일이 되여 버렸네...
오늘은 이만할게.

언니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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