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유학생의 북한 역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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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부 초대 평양주재 소련 대사 슈띠꼬브와 6.25전쟁

러시아 유학생의 북한 역사 이야기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4-08-14 17:05


진행: 네.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진행을 맡은 장성무입니다. 오늘도 한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로씨야 사람이죠. 이휘성 동무와 함께 조선의 현대 역사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이: (인사)

진행: 오늘은 6.25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요, 특히 초대 평양 주재 쏘련 대사 슈띠꼬브가 6.25전쟁이 발발하는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현재 북조선 당국은 6.25 전쟁이 미제와 남조선의 북침 전쟁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휘성동무 하지만 1991년에 쏘련이 붕괴된 이후 6.25전쟁에 대한 기밀문서가 공개되면서 이 주장이 거짓으로 밝혀지지 않았습니까?

이: 맞습니다. 1991년에 쏘련이 무너진 이후 6.25전쟁을 전후해서 김일성과 쓰딸린 사이에 오간 기밀문서가 공개됐습니다. 이 문서에 따르면 김일성이 수차례 소련 대사 슈띠꼬브 통해 쓰딸린에게 남조선을 공격하겠다고 제의했습니다. 미국과의 충돌을 우려했던 쓰딸린은 1949년 말까지 남침전쟁을 승인하지 않았는데요, 국제정세가 돌변하면서 1950년 초반에 김일성의 전쟁계획을 승인하게 됩니다. 김일성은 쏘련과 중국 모택동의 지원 약속을 받고 1950년 6월25일에 전쟁이 일으켰습니다.

진행: 그러면 쏘련 대사 슈띠꼬브는 6.25전쟁이 이뤄지는데 어떤 역할을 한 건가요?

이: 당시 남조선까지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기 위해 침략전쟁을 주도적으로 계획한건 김일성과 박헌영이었습니다. 슈띠꼬브의 경우 김일성과 박헌영의 의도를 지지하고 부추기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조선에 대한 쏘련의 군사원조를 계속 촉구했고, 김일성과 박헌영의 의견을 쓰딸린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는 통로 역할을 했습니다.

““김일성과 박헌영은 평화 통일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남조선에서 미국 군대도 철수했다. … 김일성과 박헌영은 무력공격으로 조선반도를 통일할 수 있다고 본다… 그들은 북쪽과 남쪽인민 모두 (전쟁을) 지지한다고 보고 있다. …”

진행: 6.25전쟁은 쓰딸린의 최종 승인이 없었다면 진행되기 어려웠을 텐데요, 당시 쏘련의 눈치를 봤던 김일성의 입장에선 슈띠꼬브가 큰 힘이 됐겠네요.

이: 그렇지요. 슈띠꼬브의 경우 정치적 배경이 좋았고, 평양 주재 쏘련 대사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말은 북조선에 대한 쏘련의 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김일성의 입장에선 좋은 후견인을 만난 겁니다. 슈띠꼬브는 쏘련이 북조선에 대해 지원을 많이 하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진행: 그런데 1949년 말까지 김일성의 전쟁계획을 승인하지 않았던 쓰딸린이 이듬해 마음을 바꾸게 되는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이: 국제정세가 돌변했기 때문입니다. 우선 1949년 10월 중국 대륙에서 공산당 정부가 국민당 정부와의 내전에서 승리를 했습니다. 쓰딸린은 동북아시아 지역 정세가 공산주의 국제세력에 유리하다고 판단을 했습니다. 여기에 1950년 1월 미 국무장관 애치슨이 ‘한과 대만이 태평양 방위선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른바 ‘애치슨 라인을 선언합니다. 쓰딸린은 김일성이 남침전쟁을 해도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1950년 1월에 6.25전쟁을 승인했습니다.

진행: 쏘련 자료에서 공격 예정 날짜도 나왔죠?

이: 예 그렇습니다. 1950년6월 15일 슈띠꼬브가 쓰띨린에게 다음과 같은 전보를 보냈다.
“조선인민군에 공격은 6월25일 이른 아침에 시작할 예정입니다. 처음에 조선인민군 부대들은 옹진반도를 고격하고 다음에는 조선의 서쪽에 주공을 하겠습니다. 다음에는 서울 점령하고 한강도 통제할것입니다. 동시에 동쪽에서 북조선 군대는 춘천과 강릉을 해방시킬것입니다. 결국으로 적의 주력은 서울 지역에서 포위되고 멸망될것입니다. 작전의 최종정세로 적군의 패배와 도시 및 항구의 점령으로 조선의 다른 지역도 해방될것입니다”

진행: 자료를 듣고 보니까 슈띠꼬브가 김일성의 남침전쟁 계획을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을 정말 많이 했네요? 김일성의 집요한 남침전쟁 승인 요청과 국제정세의 변화, 슈띠꼬브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마침내 쓰딸린이 남침전쟁을 승인했습니다. 그리고 1950년 6월25일 우리 민족에게 헤아릴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 전쟁이 발발하게 되는데요, 6.25전쟁이 미국의 북침이 아니라 김일성의 남침이라는 슈띠꼬브의 기록이 있다면서요?

이: 네. 6.25전쟁 다음 날인 슈띠꼬브가 쏘련 참모부장에게 보낸 보고 내용이 있는데요,

“공격은 현지시간으로 4시40분에 시작하였습니다. 인민군의 공격은 불의에 이뤄졌습니다.

진행: 네. 쏘련이 공개한 비밀자료를 통해 6.25전쟁은 김일성이 계획하고 이를 쓰딸린이 승인하면서 이뤄진 남한을 침략한 전쟁이라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휘성 동무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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