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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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의 긴 여행을 마치고

내 생애 봄날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3-10-29 18:14

북한을 탈출해 한국으로 오는 탈북자들에게 한국행은 그저 단순한 여행이 아닙니다. 불안과 위험이 뒤따르고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 긴 여정에 주린 배를 움켜쥐는 것은 다반사이고, 나라를 떠난 죄 아닌 죄로 철창 속에 갇히기도 합니다. 이렇듯 너무도 어려운 일입니다. 북한에서 저는 인간의 자유를 마음대로 누려보지도 못하고 숨어살아야만 했습니다. 그 비참했던 시절 바라는 것은 오로지 자유의 땅 한국으로 향하는 것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선뜻 고향을 떠날 결심을 할 수 없었던 것은 그 긴 여정에 벌어질 수 있는 위험이 너무 불안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결국 그 길을 택했고, 지금은 한국에 와 있습니다.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긴 여행을 해봤습니다. 중국을 거쳐 라오스, 타이까지. 한국으로 오는 길엔 난생처음 비행기도 타보았습니다. 오랜 세월 갈라져 살았으면서도 한민족이라는 이유로 탈북자들을 자유의 세상 한국에 받아준 한국 정부와 한국 국민들의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한국에 오자 비로소 안도감이 생겼습니다. 중국에서 체류하면서 오랜 시간동안 숨어살아야만 했기에 항상 불안했습니다. 한국에서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문제는 나중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게 신기하더군요. 특히 정말 잘 닦인 도로를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하나원에서 나오자마자 취직을 했습니다. 조명을 만드는 작은 회사였습니다. 지금은 200명이 넘는 직원들이 일을 하지만 제가 일을 시작하던 때는 적은 인원들이 가족처럼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였는지 제가 북에서 왔다고 하니 그리 곱지 않은 시선으로 저를 봤습니다. 거기에다 말이 차이가 나다나니 서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서툰 일솜씨에 불량을 만들기 일쑤였습니다. 한국 동료들의 왠지 모를 텃새가 느껴졌지만 이방인에 일까지 서툰 제의 무엇인들 곱게 보였겠습니까. 그저 묵묵히 일하면서 부지런히 배우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열심히 일을 하니 동료들도 어느 순간부터 저를 인정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성실한데다 손놀림이 좋다보니 얼마가지 않아 저를 ‘달인’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외부에서 공장에 견학 오는 손님들이 있으면 그때는 꼭 제 뒤에 서서 일하는 모습을 지켜볼 정도로 제 일솜씨는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 동료들과도 문제없이 의사소통이 가능해졌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제 노력도 있었지만 주위 사람들의 도움도 많았습니다. 특히 탈북자로서는 저를 처음 고용한 것이어서 사장님이 많이 신경을 써주고 믿어 주었습니다. 또 한국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자 자신의 일처럼 도와주고 보살펴준 복지관 선생님들과 탈북자이주민센터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만약 이런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초기 정착의 막막함을 어떻게 극복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저에게도 꿈이 생겼습니다. 부지런히 일해서 제가 받은 만큼 이 사회에 돌려주는 것입니다. 아직은 가진 것이 너무 적지만 언젠가는 제가 받은 도움을 나도 다른 사람에게 돌리며 살고 싶습니다. 그렇게 사노라면 북에 두고 온, 소식조차 모르는 딸과 가족들을 만날 날이 꼭 오겠지요. 그날을 기약하며 저는 오늘도 부지런히 달인의 손을 움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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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 7천 탈북자들의 한국살이 이야기 “내 생애 봄날”, 오늘은 이순정 씨를 만났습니다.  


1. 이순정씨는 중국에서 10년을 살다가 한국으로 오게 됐는데요. 중국에서의 삶은 내내 불안함의 연속이었습니다. 안정된 삶을 살기 위해 한국으로 왔는데요. 한국에 왔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했습니다.    
(한국에 오고 안전하게 살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 처음엔 한국의 모든 게 신기하고 새로웠습니다.
(모든게 신기했다. 그 중에서도 고속도로가 참 잘 돼 있다고 생각했다.)
   
3 한국에 와 처음으로 들어간 회사는 조명을 만드는 곳이었는데요, 북한에서 왔다고 하니까 텃새를 부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북한 사람이라고 하니까 안 좋게 생각했지만 일을 열심히 하니까 인정받을 수 있었다)


4. 때로는 한국 동료들과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서로 말을 못알아 들었다)


5. 순정 씨는 밤낮없이 열심히 일한 덕분에 회사에서는 ‘달인’이라 불릴 만큼 최고의 숙련자로 인정을 받게 됐습니다.
(회사에서 동료들과 사장님이 인정해 주는 사원이 될 수 있었다)


6 이순정씨는 한국에 와 2년이 지난 뒤 중국인 남편과 아들을 한국으로 데려왔습니다. 남편과 아들이 한국에 적응하는 것도 처음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남편이 처음에 일자리를 찾지 못해 조금 놀기도 했지만 지금은 일을 잘 하고 있다. 아들도 친구들과 잘 어울려서 참 다행이다)


7 한국에 와서 ‘아 이제 나도 정말 한국사람 다 됐구나.’ 하고 느낀 때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대통령 선거를 하면서 한국인으로서의 긍지감을 느꼈다.)


8 낯선 한국 땅에서의 생활과 적응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별 어려움 없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살아보니까 의외로 사람들이 잘해주고 괜찮더라)


9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 바로 지금이라는 이순정씨.
(뭐든지 배울수 있고 할 수 있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10. 이순정씨는 나이 들어서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직업을 찾고 있는데요. 안정적인 삶을 누리게 되면 다른 사람들을 도우면서 살고 싶다고 말합니다. 
(제과나 미싱쪽으로 새로운 직업을 잡으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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