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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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내 생애 봄날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3-10-14 18:07

추운 겨울이었다. 강은 얼어붙어 있었고 찬바람이 쌩쌩 부는 속에서 나는 가족과 함께 두만강을 건넜다. 16살 어린나이에도 나는 얼어붙은 강을 어떻게 건너 가냐는 불평 한마디 할 수 없었다. 온몸은 꽁꽁 얼어붙었고 제대로 걸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추운 겨울바람을 뚫고 나와 내 가족은 제3국을 거쳐 여기 한국에 왔다. 막 도착했을 때 한국은 여전히 추운 겨울이었지만 따뜻해 보였다. 하얀 눈이 덥혀있는 세상을 보니 내 고향인 것 같이 반가웠다.


국정원과 하나원에서 정착생활에 대한 수업을 받고 나오니 더운 바람이 불었다. 마치도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더운 바람으로 사르륵 녹여 날려 보내고, 새로운 희망의 바람을 불어 넣어주며 나를 환영하는 것 같았다. 이때부터 나의 한국생활은 시작 되었다.


내가 살던 곳과는 너무 다른 한국. 학교는 물론 북한과는 많은 문화차이가 있는 이곳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할 때, 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나를 따뜻한 말과 행동으로 보살펴줬다. 한국문화를 알 수 있게 문화체험을 시켜주기도 했고, 공부를 잘할 수 있도록 문제집도 사주고, 개인 선생님을 붙여주기도 했다. 나는 이런 고마운 사람들의 따뜻한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엔 항상 좋은 사람만 있지는 않다. 새로운 삶을 시작한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좋은 사람과 친구들도 많았지만 물론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북한에 대해 그리 좋지 않게 생각하거나 자기가 하는 행동과 말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 채 행동을 하였다. 특히 내 또래의 친구들은 “북한 것들은 왜 자꾸 한국에 오는 거야? 그냥 지들 나라에서 살 것이지” “통일을 뭐 하러 해. 우리가 북한을 먹여 살려야 하는 건데” 라며 막말을 하기도 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어쩔 수 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기도 했다.


사실 북한의 정부가 나쁜 것이지 북한 사람이 나쁜 건 아니지 않은가. 북한 사람이라고 싸잡아 비하할 때는 함께 맞서 싸우고 싶을 때도 많았다. 하지만 이 친구들은 북한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그러는 것이고, 10대 땐, 나도 그렇고 누구나 한번쯤은 흔들리며 방황하지 않던가. 세상엔 나를 때리는 세찬 바람이 있긴 해도 그 바람이 지나고 나면 또다시 훈풍이 불어온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한국에 와서 참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혹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경쟁을 뚫어야하는 것이 한국사회의 현실이었다. 한 번도 이런 경쟁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적이 없었던 나는 이런 환경이 너무 낯설고 당황스러웠다. “너는 무슨 일을 할 거야?” “대학에 갈 거야, 아님 취직을 할 거야?”
경쟁이라는 현실 앞에 나는 초조하고 불안하였다. ‘어른이 된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이런 생각이 들 때는 부끄러운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되겠다며 마음을 다잡기도 하였다. 목숨을 걸고 한국까지 와서 떳떳하지 못한 인생을 산다면 목숨을 건 보람도, 그 의미도 없게 될 게 아닌가. 그렇지만 내 몸과 능력은 내 의지를 따라주지 못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나는 나를 믿기로 했다. 내 한국생활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고 나는 채 스무 살도 안 된 10대 청소년이다. 조금씩 채우다 보면 능력도 내 의지만큼 자라 날 날이 꼭 올 것이다.


사람이 살다보면 특별하게 다가오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이 나에게는 바람이다. 내가살고 있는 공간이 모두 바람처럼 나에게 다가왔고, 또 인생의 슬픈 일 기쁜 일들이 나에겐 찬바람이고 따뜻한 바람이기 때문이다. 내 곁에는 항상 따뜻한 바람이 되어주시는 미리 선생님이 있다. 때론 엄마 같고, 때론 언니 같고, 때로는 친구 같다. 나를 이해해주고, 내 잘못을 깨닫게 해주고, 내가 길을 잃지 않도록 안내를 해준다. 나는 미리 선생님의 따뜻한 바람 냄새를 항상 느낄 수 있다.


누구나 삶의 길에는 굴곡이 있다. 내 한국생활도 마찬가지다. 또 앞으로 어떤 굴곡이 다가올지 두렵기도 하고 기대도 된다. 하지만 평탄하기만 한 재미없는 길보다는 좀 힘들더라도 찬바람도 더운 바람도 맞아보며, 내가 성숙해지고 한껏 커지는 길을 가고 싶다. 뿌듯한 내 삶에 바람은 언제나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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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 7천 탈북자들의 한국살이 이야기 “내 생애 봄날”, 오늘은 조혜연 양을 만났습니다.  


1. 조혜연 양은 3년 전 어머니, 그리고 언니와 함께 조선을 떠나 한국으로 왔는데요. 중국에 있는 할머니를 만나러 왔다가 한국까지 오게 됐습니다. 한국에 왔을 때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참 멋있어 보였습니다.  
(처음엔 교복이 너무 멋있었는데 나중에 나도 입고 보니 별로 예쁘진 않더라.)  
 
2 혜연 양은 한국에 와서 중학교 3학년으로 편입을 했는데요, 한국 친구들은 북한에서 온 혜연 양을 신기하게 생각했습니다. 
(담임선생님이 밝혀버려서 의지와 상관없이 북한에서 왔다는 게 밝혀졌다. 다른반 친구들까지 와서 신기하게 생각했지만 3일이 지나니까 관심도 없더라.)


3 학교 생활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서 말투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말투를 빨리 바꾸기 위해 노력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두 가지 말(북한말, 한국말)을 다 하는게 더 좋았을 걸 하고 생각한다.)


4. 한국 친구들이 하는 말을 못 알아 들어서 애를 먹을 때도 있었습니다.
(모르는 말이 나오면 대충 알아듣는 척을 하고 집에 가서 찾아보곤한다)


5 한국에서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진학할 때 인문계, 실업계, 특성화 고등학교 등 여러 가지 학교 중에 선택을 하는데요. 혜연 양은 졸업을 하고 바로 취업을 할 수 있는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간호사관교등학교에 진학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서 수업을 따라가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대학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간호사관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 학교 수업을 따라가는 것이 쉽지가 않다)


6 고등학교에서 한국 친구들과 사귀는 것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힘들었다.)


7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지금은 친구도 많이 사귀었고 적응도 됐지만 아직도 한국 친구들과는 벽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사는 게 어렵고 힘들어도 친구들과 진한 우정이 있었는데 한국 친구들과는 아무리 다가가려 해도 다가갈 수 없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8 혜연양은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습니다. 연기자도 되고 싶고 요리사도 되고 싶은데요. 아직 하나의 꿈을 정하진 않았습니다.
(제일 하고 싶은 것은 연기자, 그 다음은 요리사 인데 아직 뭘 하면 잘 할 수 있을지 잘은 모르겠다)


9 북에 있는 친구들이 가장 보고 싶다는 혜연양, 친했던 친구에게 음성 편지를 남겼는데요. 지금은 만날 수 없지만 통일의 그날이 어서 와서 그리운 친구를 만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친구에게 음성 편지)


CM1 조성모_바람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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