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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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61

황장엽 회고록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16 17:29




지난 이야기: 1996년 2월, 김정일의 54돐 생일을 경축하기 위해 모스끄바종합대학에서 주체사상 국제토론회가 열렸습니다. 토론 내용은 마르크스의 유물변증법을 비판하고 주체철학 원리의 정당성을 논증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황장엽은 이 자리에서 여러 차례 발언을 했고 좋은 평판을 들었습니다. 김정일도 그 토론회를 매우 흡족했는지 황장엽에게 여러 차례 호의를 표시하기도 합니다.





김정일의 변덕스러운 성격을 잘 알고 있던 나는, 그가 나에게 좋게 대할 때도 경각심을 늦추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5월 9일, 그는 갑자기 모스크바 국제토론회가 당의 의도에 맞지 않게 진행되었다고 지적한 문건을 선전부장 앞으로 내려 보내면서 나에게도 보내왔다. 나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5월 9일 문건이라는 것은 김정일이 직접 쓴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써 올린 것에다 김정일이 서명을 한 것이었다.



선전비서에게 물어 보니 자기도 모르게 그런 보고가 올라갔다면 한발 늦었다고 했다. 나는 누구의 짓인지 짐작이 갔다. 김정일의 측근 가운데 한 명이 나를 찾아와서는 그 상대도 안 되는 유치한 놈들의 책동에 개의할 필요 없으니 묵살해버리라면서 나를 위로했다.



그래서 나는 그 문서에 있는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적어 김정일에게 보냈다. 며칠 후 내 글을 다시 반박하는 글을 누군가 김정일에게 올렸다. 김정일은 그 글을 나에게 또 보내 주었다. 나는 이번에는 묵살하고 말았다. 제자들이 찾아와 이번 건은 아무개의 조작인데, 이 기회에 공개적으로 싸워보자고 제기하고 나섰다.



나를 대하는 김정일의 쌀쌀한 태도가 얼마간 계속되었다. 김정일은 내 글을 반박한 보고문들을 모두 문서정리실로 보내, 수령관을 중심으로 하여 김정일을 내세우지 않고 내 개인의 철학이론을 선전한 것이 잘못이라는 내용의 문서를 작성하라는 과업을 주었다.



이것이 1996년 7월 26일자로 발표된 「주체철학은 독창적인 혁명철학이다」라는 제목의 김정일 문헌이다. 이는 참으로 가소롭고도 당치않은 정신적 허영이며 손으로 해를 가리려는 사상적 기만이다. 김정일이 어떻게 철학을 알겠는가. 그렇다고 혁명을 아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주민들을 굶겨죽이고 청년학생들을 총폭탄으로 내모는 것이 인간의 철학이자 인간을 위한 혁명이라고 착각하는 보잘것없는 독재자일 뿐이다.



김정일의 측근으로부터 자기비판서를 쓰는 것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속으로 김정일을 비웃으면서 내 무지를 인정하는 내용의 자기비판서를 써보냈다.



나중에 들으니 김정일은 나의 자기비판서를 읽은 다음 비서들에게 내려보내고는 측근들을 모아놓고 거들먹거렸다고 한다.



“이번에 또 황장엽이 나에게 항복했소.”



그러면서 김정일은 나를 다시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김경희도 뻔질나게 전화를 걸어오고 아내를 자기 집으로 부르는가 하면 예전처럼 자기를 도와달라고 은근히 말하기도 했다. 온 가족이 김경희와의 관계가 회복되었다고 기뻐했다. 그런 내 마음은 어느 때보다도 무거웠다.





수령절대주의의 종말



북한을 망치게 한 수령절대주의의 종말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강하게 느꼈다.



1996년 여름, 나는 태국과 인도의 여러 정당들과의 관계를 발전시킬 목적으로 두 나라를 방문하게 되었다. 나는 김덕홍을 만나기 위해 기차로 선양에 들렀다가 그곳에서 비행기 편으로 태국을 가려했다. 해외출장 때면 나는 대개 비서 개인자격으로 김정일에게 보고를 올리곤 했으나, 이번에는 국제부 이름으로 출장보고서를 올렸다. 보고서에서 나는 국제비서의 베이징 통과를 중국 측에 알리고 중국 측이 연회를 차리는 경우에는 응하겠다고 제의했다.



본래 나는 김정일이 중국을 좋아하지 않는데다 특히 내가 중국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꺼린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중국 측에 알리지 않고 그냥 태국과 인도로 떠난다는 것만 보고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중국담당 부부장은 중국 측에서 비서(나)를 여러 번 초청했는데 그에 응하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중국을 통과하면서도 통지까지 안 하면 중국 측에서 오해를 할지도 모르고, 또 두 나라 당의 관계에 좋지 않다면서 중국 측에 사실대로 통보하자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는 나의 친중국적인 태도만 이해하고 김정일이 그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지 못하고 있었다. 관례상으로도 당 국제비서와 외교부장이 중국을 통과할 때는 중국 측에 알리기로 되어 있었다.



김정일은 보고서를 접하고는 이렇게 지적했다.



“무엇 때문에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고 기차로 가는가? 중국을 거치지 않고 가도록 여행계획을 다시 짜시오.”



보고서가 지적을 받고 내려오자 국제부 일꾼들은 벼락이나 맞은 듯이 법석을 떨었지만, 나는 그저 쓴웃음만 지을 뿐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베이징에서 두 시간을 기다리다가 타이 항공을 타고 방콕에 가서 현지사증을 받기로 했다.



나는 김정일의 그런 조치야말로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유치한 짓으로 느껴졌고, 한편으로는 그가 우리 간부들에게 늘 하던 말을 떠올렸다.



“동무들한테서 당(김정일)의 신임을 떼놓으면 무엇이 남겠소. 단순한 고깃덩이일 뿐이오.”



나는 권력으로만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김정일의 봉건적 사고방식에 격분하면서도 가까스로 억누르며 속으로 부르짖었다.



‘만일 우리가 고깃덩이라면 너 또한 권력을 떠나서는 인민의 심판을 받아 난자당해 마땅한 고깃덩이다.’



나는 더 이상 김정일에게 아부하면서 살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할수록 권력만능주의자의 통치하에 신음하는 북한주민들의 신세가 더없이 가련하게만 생각되었다.





황장엽의 회고록 ‘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61부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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