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으로 본 세계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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챠우쉐스꾸의 영광과 몰락

사건으로 본 세계력사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09 10:58




안녕하십니까? 과거로부터 현재를 리해하고 그 현재를 통해 미래를 배우는 ‘사건으로 본 세계력사’ 시간의 송현정입니다. 오늘은 아흔네 번째 시간으로 ‘챠우쉐스꾸의 영광과 몰락’ 편을 보내드리겠습니다.



1989년 12월 27일, 로므니아 텔레비죤은 대통령 니꼴라예 챠우쉐스꾸와 그 부인 엘레나의 재판기록이 담긴 프로그람을 방영했습니다. 챠우쉐스꾸가 쓰고 있던 털모자를 집어던지며 화난 표정으로 뭔가 말하고, 옆에 앉은 엘레나는 매우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 담긴 내용이었습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총살형에 처해졌습니다. 이어 두 사람이 12월 25일 비밀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당했다는 구국위원회의 공식발표가 잇달았으며, 사형 집행 직후 두 사람의 시체를 찍은 사진이 신문의 머리 기사를 크게 장식했습니다.



챠우쉐스꾸는 19018년 부꾸레슈티 근교에서 농부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5세 때인 1933년 공산당 활동을 했고,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반 나찌 운동을 벌려 수차례 투옥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로므니아의 영웅이라고 불렀습니다. 1965년 챠우쉐스꾸는 공산당 총비서가 되고, 74년에는 대통령이 되어 유럽 최연소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는 다른 동유럽 사회주의국가들과는 달리, 쏘련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독자로선을 걸었습니다. 동유럽 8개 사회주의국가들의 군사동맹인 와르샤와조약기구가 1968년 체코를 침공하자 이를 비난해 나섰으며, 1979년에 일어났던 쏘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립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는 ‘동유럽의 이단자’로서 자본주의 세계로부터 찬사와 함께 경제적 지원을 듬뿍 받아냈습니다. 특히 프랑스와는 긴밀한 우호관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추진한 중공업정책이었습니다. 석유파동이 일어나자 수출위주의 석유화학공업에 치중한 그의 중공업정책은 수출비용의 엄청난 증가로 막대한 타격을 받았습니다. 거기에 석유화학 투자에 끌어들인 외채 110억 딸라를 갚을 길이 막막해졌습니다. 그러자 챠우쉐스꾸는 정책의 우선순위를 외채상환에 두고 재정규모를 축소하는 극도의 긴축정책을 실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출할 수 있는 것은 식량이든 원자재든 무엇이든지 수출했습니다. 반면 국민들은 희생과 인내로 견뎌야 했습니다. 1인당 육류배급량은 월 500g, 빵은 하루 160g이 전부였습니다. 령하 25도의 강추위가 계속되었지만 전력과 휘발유 공급이 제한되었습니다. 한편 드높아지는 국민들의 불만과 쿠테타 위협을 누르기위해 챠우쉐스꾸는 가족을 등용해 정치하는 족벌체제를 구축했습니다. 군대가 미덥지 않자, 보안군에게 각종 특혜를 주어 자신의 친위대로 키웠습니다. 또 보안군 내에는 비밀경찰을 두었습니다.



챠우쉐스꾸의 몰락은 1989년 12월 16일 로므니아 서부 티미시와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지방은 1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웽그리아 령토였으며, 주민의 대부분이 웽그리아 인이었습니다. 이 날의 시위는 이들 웽그리아 인의 인권옹호에 앞장섰던 목사 토에케스를 국외로 추방시키기 위해 경찰이 그를 강제 련행하자 주민들이 인간 사슬을 만들어 저항한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저항하는 주민들에게 경찰이 무차별 발포하여 대규모의 류혈사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그로부터 닷새 후인 12월 21일, 로므니아의 수도 부꾸레슈티 광장에서 정부 주도의 궐기대회가 열렸습니다. 챠우쉐스꾸가 연단에 올라 지난 주말부터 계속되고 있는 시위를 격렬히 성토했습니다. 순간 군중 속에서 야유와 함께 챠우쉐스꾸 퇴진을 외치는 함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일제히 그에 호응했습니다. 군중들의 함성은 곧바로 아비규환으로 바뀌었습니다. 보안요원이 군중을 마구잡이로 구타하고 체포했으며 현장에서 8명을 즉결처분했습니다. 잠시 후 챠우쉐스꾸는 다시 연설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늦게까지 부꾸레슈티 시는 시민과 학생들로 이뤄진 수만 명의 시위대로 들끓었습니다.



다음날 22일에도 시위는 계속되었고, 보안군의 총소리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오후에는 시위대에 합세한 군인들이 장갑차를 앞세우고 시민들과 함께 대통령관저로 행진했습니다. 군중에게 연설하려던 챠우쉐스꾸는 물러나, 부인 엘레나와 함께 공산당 본부건물 옥상에 대기시켜 놓은 직승기를 타고 도망을 쳤습니다. 물론 이들은 3일 후 체포되어 처형당합니다.



로므니아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반 나찌 투쟁의 영웅에서 독재자로 전락한 챠우쉐스꾸의 몰락은 불과 1주일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이루어졌습니다. 그의 몰락은 쏘련의 개혁개방이후 일어난 동유럽 사회주의 변화가 가져온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건으로 본 세계력사, 제94화 ‘챠우쉐스꾸의 영광과 몰락’ 편을 마치겠습니다. 다음시간에는 제95화 ‘독일의 통일’ 편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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