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못한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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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사라진 의약품

부치지 못한 편지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07 01:22




오우 샘! 이 일을 어쩌면 좋나. 정말 자네에게 편지라도 쓰지 않으면 미쳐 버릴 것 같은 상황의 련속이네. 글쎄, 어떤 일이 있었는 줄 아나? 김복식을 따라 병원에 갔는데, 남아 있는 의약품이 하나도 없었다네.



한스 : 진료소장 선생,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내가 보고 받은 것과는 다르지 않습니까?



김복식 : 한스 선생, 뭐.. 잘못됐습니까?



한스 : 김선생, 이 서류 좀 보십시오. 내가 이곳에 오기 전, 전임자와 정부로부터 받은 보고서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기록된 의약품들이 보이질 않습니다.



김복식 : 어디 봅시다. 한스 선생 말이 맞군요. 소장 동무, 이거 어떻게 된 거요?



진료소장 : 그게 언제 적 얘긴데 그러십니까? 아니 환자들이 와서 아프다는데, 가만있을 수 는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한스 선생도 조선에 오자마자 진료하러 오실 줄 알았는데, 관광하시느라 바쁘셨다죠?



한스 : 지금 무슨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 겁니까? 그리고 하루빨리 병원에 오고 싶은 사람을 이런저런 핑계로 잡은 사람들이 누군데요?



김복식 : 자 자, 한스 선생 그만 진정하십시오. 그러니까 소장 동무, 의약품을 치료하느라 다 썼단 얘기요?



진료부장 : 그럼요. 당연하죠.



한스 : 그럼 지금 의약품이 하나도 없다는 얘긴가요?



진료소장 : 아니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습니까? 이거 야, 매번 의사가 바뀔 때마다 이렇게 복잡하게 노니....



한스 :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김복식 : 아이고 한스 선생 진정하십시오. 거, 소장 동무 이렇게 복잡하게 놀거야. 밖에서 좀 봅시다.



“보위원 동지도, 진료소 사정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다고 외국인 앞에서 그렇게 나오면 돼.” “어디 한두번이라야지요” 등



김복식은 한참만에야 돌아왔네. 어떻게 이야기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펄펄 뛰던 진료소장이 중국제 의약품이라도 좀 구해 보겠다고 했다는군.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아직까지 잘 모르겠네. 내가 알기론 전임자인 스위스 의사가 의약품을 꽤 많이 남겨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하나도 남은 게 없다니.... 분위기를 봐서는 김복식이 사정을 좀 아는 것 같은데, 몇 번을 물어봐도 속 시원히 대답해 주질 않더군.



그나저나 독일에서 보내는 약들은 아마 다음 달에나 중국에 도착할 것이고 북조선까지 들어오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네. 그동안 약도 없이 진료를 하게 생겼으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네. 그런데 며칠전 김복식이 급한대로 약을 구해왔 다네.



김복식 : 한스 선생, 급한 대로 좀 구해왔습니다.



한스 : 어디 봅시다.



한스 : (냄새를 맡으며) 김 선생, 약 냄새가 좀 이상한데요. 류통기한도 없구,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김복식 : 중국제라서 질이 좀 떨어질 겁니다. 한스 선생이 판단해서 쓰실 것만 쓰십시오. 그래도 힘들게 구한 약입니다.



한스 : 하여간 고맙습니다. 그래도 김 선생은 답답한 내 마음을 좀 알아 주는 것 같군요.



김복식 : 제 임무가 한스 선생 일 잘하도록 도와주는 것 아닙니까?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될 겁니다. 한스 선생, 담배 한 대 피우시겠습니까?



한스 : 그럴까요.



김복식 : 한스 선생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시 마십시오.



한스 : 저도 그러고 싶은데 마음처럼 되지 않는군요.



김복식 : 이와 벌어질 일인데 자꾸 생각하면 속만 상하지 않겠습니까? 툭툭 털어버리시고 편하게 생각하십시오.



김복식의 말대로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더군. 약품의 질도 좋지 않은 데나 양도 많지 않아서 하루하루가 불안하네. 그래서 요즘 나의 중요한 일과는 독일에서 부친 의약품들이 언제 중국 단동에 도착하는지를 점검하는 것이 되었다네. 단동에 약들이 도착하는 대로 내가 직접 중국으로 나가볼 생각이네. 마냥 기다리다가는 또 무슨 일이 터질지 누가 알겠나?



병원엔 지난 4월 중순부터 나가기 시작했네. 북조선의 의료 시설은 갖추어진 것이 거의 없더군. 겉으로 보기에는 꽤 좋아 보이는 건물인데 속을 들여다보면 엉망이야. 병원을 찾아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양실조 상태인 것 같았네. 사람들은 매우 온순해 보이더군. 약품이 없어서 치료를 제대로 못하고 대부분 돌려보내는데도 다들 수긍하면서 발길을 돌리더군.



자네도 들어봤는지 모르겠네. 북조선은 무상의료제도를 체제의 우월성을 선전하는데 많이 활용해 왔다더군. 그런데 지금 북조선의 사정은 무상이라는 말이 민망할 정도네. 하지만 북조선 사람들은 자신들의 현실을 완벽히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네. 어떠한 불만의 표시도 하지 않는 것 같아. 다른 나라 같았으면 진작에 반정부 여론이 들끓거나, 시위가 일어났을 텐데 말일세. 아무튼 조선은 아직까지 내게 리해하기 힘든 나라일세.



그래도 요즘 생활의 유일한 즐거움이라면 김복식과 함께 조선말 공부를 하는 걸세. 지난번 필림 사건으로 서먹서먹했는데, 조선말을 배우면서 많이 친해졌네. 쓰는 건 너무 힘들 것 같고, 일단 말하는 것부터 배우고 있네. 발음이 좀 어렵지만, 나름대로 재미를 붙이고 있는 중이네. 무언가를 배운다는 건 항상 즐겁지. 그렇지 않나?



늘 푸념만 늘어놓은 것 같아 자네한테 미안하네. 다음 번 편지 할 때는 좀 더 좋은 소식으로 편지를 쓰면 좋겠네.



1999년 5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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