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못한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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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부 보고대회

부치지 못한 편지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07 01:22




샘, 오랜만이지. 두 달만에야 편지를 쓰게 됐군. 진료가 끝나면 쓰러져 자기에 바빠서 통 소식을 전하지 못했네. 요즘 난 밀려드는 환자 때문에 련일 강행군이야. 오늘도 죽을만큼 피곤하지만, 얘기하지 않고는 못 견딜 일이 있어서 펜을 들었다네.



오늘 아침 갑자기 김복식이 좋은 구경거리가 있다며 저녁 시간을 비워두라고 하더군. 사실 기대를 좀 했는데 박수치는데 동원된 것에 지나지 않았다네.



한스 : 평양에 온 이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보기는 처음이군요. 체육관이 꽤 좋습니다.



김복식 : 그렇습니까? 우리야 뭐 이런 데서 여러 번 모이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한스 : 그런데, 김선생,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인 걸 보니 정말 중요한 행사인가 보네요?



김복식 : 그럼요. 꼭 참석해야 하는 행사니까요. 어, 시작하는군요.



군중들 : 노래 소리(당신이 없으면 조국도 없다), 구호(혁명의 수뇌부를 목숨으로 옹호 사수하자!)



사회 : 지금부터 력사적인 당창건 49돐 경축기념 중앙보고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알고보니 조선로동당의 창건을 기념하는 보고대회였네. 난 태여나서 이렇게 지루하고 판에박힌 행사는 처음 봤다네. 몇 사람이 연설을 했는데 다들 똑같은 말만 늘어놓더군. 마치 한 사람이 얘기하는 것 같았네.



한스 : 김선생, 무슨 당창건 보고대회가 수령에 대한 찬양으로 가득차 있습니까? 로동당에 꼭 수령 한 사람만 있는 것 같습니다.



김복식 : 수령이 출현해 지도사상을 창시해야 그것을 지침으로 하는 당이 창건될 수 있고, 당의 령도를 받아야 혁명적 로동계급이 형성될 수 있으며, 로동계급의 령도 밑에서만 인민대중이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수령님을 내세우는게 당연하지요.



한스 : 아, 그렇군요. 근데 김선생, 사람들이 정말 꼼짝도 하지 않고 잘 듣네요. 인내심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박수는 왜 이렇게 세게 치는 겁니까? 팔이 다 아프네요.



김복식 : 우리 조선 사람들이야 뭐, 이런 건 이골이 났지요.



한스 : 솔직히 이렇게 재미없는 행사에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오진 않을 것 같고, 안 오면

불이익이라도 받는 건가요?

김복식 : 한스선생, 말 조심하시오. 우리 사회는 재미로만 일을 하는 자본주의사회가 아닙니다.



김복식과 친해졌다고 생각하다가도 이런 일이 생기면 딴 사람을 보는 것 같아 당황스럽다네. 이럴 땐 먼저 사과를 하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 분위기도 어색하고 답답하기도 해서 화장실에 간다고 하고 밖으로 나왔네. 그런데 복도에서 뜻밖의 사람을 만나게 됐다네.



앤 : 아야.



한스 : 아이구, 죄송합니다. 괜찮으십니까?



앤 : 네. 괜찮아요, 그런데 못 보던 분 같네요.



한스 : 네. 전 한스라고 합니다. 조선에 온지 6개월 정도 됐습니다.



앤 : 전 앤이라고 해요. 그런데 혹시 의사 아니신가요?



한스 : 아니, 어떻게 아셨어요?



앤 : 독일에서 새로 의사 한 분이 오셨다고 들었어요. 그럼 저희 고아원에 검진하러 오시겠네요? 겨울마다 한 차례씩 검진을 하거든요.



한스 : 아, 고아원에서 근무하시는 군요.



앤 : 네. 이렇게 먼저 만나게 되네요. 여긴 너무 시끄러운데 저 쪽으로 가실래요?



한스 : 그럴까요. 안 그래도 행사장에 들어가기가 끔찍했는데 앤이 구해주는 군요.



앤: 저도 그런데, 마침 잘 됐군요. 오늘 행사는 어떠셨어요. 많이 놀랐지요?



한스 : 놀랐다기 보다는 지루해 죽는 줄 알았어요. 그리고 당에 대한 보고대회가 순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찬양뿐이더군요.



앤 : 조선에서 김일성, 김정일의 존재는 지도자 이상이죠. 혹시 한스는 김정일이라는 사람 만나본 적 있어요?



한스 : 없습니다. 신문에서만 좀 봤습니다.



앤 : 저는 본적이 있어요. 우리 고아원에 한 번 온 적이 있었는데 김정일이 다녀간 뒤 에는 요란을 떨며 기념비까지 세우더군요. 조선에서는 김정일이 하느님보다도 위대하다고 선전하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위대하다는 지도자가 허약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아이들을 지원할 생각은 않고, 기념비나 세우고 있으니, 정말 이렇게 굴러가는 나라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텔레비 보셔서 아시겠지만, 조선에서는 김정일 덕분에 잘먹고 잘산다는 이야기만 하지, 못 산다는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아요.



한스 : 앤은 조선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많은 것 같군요.



앤 : 한스도 지내다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예요.



한스: 그런데 조선에 온지는 얼마나 됐습니까?



앤 : 3년 됐어요. 그런데 2달 후면 떠나야 해요. 입국사증를 련장하려고 신청을 했지만 거절당했거든요.



한스 : 아니, 왜요?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앤 : 그래도 제 동료인 제인에 비하면 나은 편이에요. 제 발로 걸어나갈 수 있으니까요.



한스 : 그게 무슨 말인가요?



앤 : 저랑 함께 들어온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1년 남짓 활동하다가 추방당했어요.



한스 : 추방이요? 그런 일도 있습니까? 무슨 일 때문에요?



앤 : 그때....



김복식 : 한스 선생, 한스 선생



앤 : 담당보위원인가 봐요. 저는 그만 가봐야겠어요. 한스, 그럼 우리 또 만나요.



한스 : 그래요. 오늘 반가웠습니다.



앤 : 네. 저는 그럼 이만....



한스 : 김선생, 저, 여기 있습니다.



김복식 : 아니, 화장실 간다는 사람이 이렇게 안 들어오면 어떻게 합니까?



한스 : 아휴, 죄송합니다.



김복식 : 다음부터 이러지 마십시오.



한스 : 알겠습니다. 주의 하겠습니다.



오늘 처음 앤을 봤지만, 오래된 친구 같은 느낌이 들더군. 왠지 나에게 좋은 조언자가 되어줄 것 같네. 다음에 고아원에 가면 더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겠지.



언제 편지를 쓰게 될지 모르겠지만, 앤을 만난다면 꼭 편지하겠네. 그럼, 잘 지내게나.



1999년 10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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