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사건과 진실

2001년 5월 4일, 세계의 시선이 일본 나리타 국제공항에 쏠렸다. 위조려권으로 일본에 밀입국하려다가 체포되여 중국으로 추방당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왕자’를 보기 위해서였다. 비대한 몸집의 남자가 공항에 나타나자 카메라가 사방에서 번쩍였다. 수염을 깍지 않아 덥수룩한 얼굴은 귀찮다는 듯 찌푸려졌다. 얼굴에서 거만함이 묻어났다. 그 순간 기자들 속에서 ‘닮았다’는 말이 튀어 나왔다. 불룩한 배며, 오만방자한 얼굴이 영락없는 김정일이었다. 이렇게 김정일의 맏아들인 김정남은 범죄자의 모습으로 국제사회에 등장했다. 김정남의 불법입국에 대해 갖가지 추측이 난무한 가운데, 감춰져있던 그의 행적이 서서히 드러났다. <추적, 사건과 진실, 조선의 무기밀매 책임자, 김정남의 실체>



보도1 : 지난 5월 1일 나리타 공항에서 체포된 남성이 자신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아들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보도2 : 일본 정부는 김정남으로 추정되는 남성의 신분에 대해 공식적인 립장 표명을 미루고 있습니다.



2000년 6월에 열린 북남수뇌회담에서 그동안 모습을 감추고 있던 김정일이 세상에 등장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2001년 5월 김정일의 맏아들인 김정남이 국제사회에 몸을 드러내 또다시 주목을 받았습니다. 세상은 김정남의 등장에 경악했습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의 아들이 보여준 모습치고는 망신스럽기 그지없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돌려 당시 김정남의 행적을 추적해 보겠습니다.





2001년 5월 1일 오후 3시경 싱가포르에서 떠난 비행기가 일본 나리타 국제공항에 착륙했습니다. 비행기에서 빠져나온 승객들이 입국심사대 앞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 사람들 속에 유독 눈에 띄는 한 일행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눈에도 돈 많은 부자라는 느낌이 드는 차림새였는데 덩치가 큰 남자와 미모의 녀성이 섞여 있어서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176㎝가량의 키에 비대한 몸집을 가진 남자는 30대 초반으로 보였고, 이 남자와 동행한 미모의 녀성은 20대 중반, 또 7세 정도의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녀성은 30대로 보였습니다.



입국 심사대에 서 있는 줄이 서서히 줄어들자 이들의 차림새가 자세하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남자는 보석이 박힌 로렉스 시계를 팔에 차고 있었고 량손에는 두툼한 금반지를 한 개씩 끼고 있었습니다. 남자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윗옷 사이로 금목걸이가 살짝살짝 비쳤습니다. 동행한 녀자들도 수백딸라나 되는 외국상표 가방과 순금 목걸이로 자신들의 부유함을 한껏 뽐내고 있었습니다.



잠시 뒤 뚱뚱한 남자가 입국심사를 보는 직원에게 려권을 내밀었습니다. 직원은 려권에 찍힌 얼굴과 그 남자의 얼굴을 한번 쳐다본 후 려권감지기에 려권을 넣었습니다. 려권이 들어간 순간 위조려권을 알리는 종소리가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공항 직원 8명이 이들을 에워쌌습니다.



직원1 : 잠시 같이 가주셔야겠습니다?



김정남 : 왜 그러십니까?



직원1 : 선생님의 려권이 위조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김정남 : 위조려권이라니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직원1 : 위조된 려권이 맞습니다. 할 말이 있으시다면 조사실에서 하십시오.



남자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긴 했지만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따라갔습니다. 이들은 공항 2층의 입국관리국 취조실로 련행돼 각 각 다른 방에서 7시간가량 조사를 받았습니다. 처음에 남자는 려권에 기록된 대로 출생지가 남조선이라고 했습니다. 조사관이 이를 믿지 않자 역시 려권에 기록된 ‘팡 시옹(Pang Xiong)’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중국인이라고 말을 바꿨습니다. 그러나 심문이 계속되자 남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신분을 밝혔습니다.



직원1 :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무슨 목적으로 일본에 왔습니까?



김정남 : 나는 북조선 사람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제 아버지입니다.



직원1 : 김정일 위원장의 아들이라고요?



신분을 밝힌 남자는 “아이가 도쿄의 놀이 공원를 보고 싶어 해 관광차 왔다”고 밀입국 목적을 밝혔습니다. 북조선 고위층의 아들일거라고 짐작하고 있던 조사관은 ‘김정일’의 이름이 나오자 매우 놀랐습니다. 조사관은 공항차원에서 다룰 사안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리고 법무성에 이를 보고했습니다. 보고를 받은 법무성은 공항 출입국 관리소에 이들의 소식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지시를 내렸습니다.



김정남 일행 4명은 극비리에 이바라키현에 있는 불법입국자 수용시설로 옮겨졌습니다. 이윽고 법무성 직원, 검찰, 경찰 등 4개 기관으로 꾸려진 합동조사반이 도착해 정밀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합동조사반은 김정일의 아들이라고 주장한 남자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중국과 조선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조·일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였기 때문에 법무성은 이 사안을 외무성에 보고한 후, 김정남이 일본에 밀입국하려는 목적에 대해 수사를 계속했습니다.



한편 가와시마 유타카 외무성 사무차관은 5월 1일 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에게 김정남에 대한 사건을 전달했습니다. 고이즈미 총리는 다음날 아침 긴급 각료회의를 열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보안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때까지도 일본 언론사들은 김정남의 불법입국과 그에 대한 체포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5월 3일 오후 늦게서야 니혼 게이자이 텔레비죤이 이 사실을 알아내고 긴급보도를 보내면서 김정남의 불법입국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김정남의 존재가 언론에 공개되면서 갖가지 추측이 란무했지만 일본 정부는 아무런 해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5월 4일 오전 김정남을 중국 북경행 비행기에 태워 전격 추방했습니다.



<추적, 사건과 진실, 조선의 무기밀매 책임자, 김정남의 실체>, 첫 번째 시간이였습니다.





<참고 및 인용 자료>



1. “특종! 작은 장군, 김정남의 비밀행각”, 신동아, 2001년 6월호

2. “김정남 체포 日 현지 모습”, 2001-05-03, 조선일보

3. “[현장클릭]김정남 코미디”, 2001-05-06, 조선일보

4. “김정남 가방엔 100달러 지폐로 가득”, 2001-05-04, 조선일보

5. “김정남 송환/ 도쿄 출발서 베이징 도착까지”, 2001-05-04, 조선일보

6. “김정남 일행'중 1명 려권은 진짜”, 2001-05-04, 연합

7. “日, `김정남 사건' 속전속결 처리”, 2001-05-04 연합

8. “김정남 의문' 증폭, 韓· 中 ·日정부 침묵”, 2001-05-08 조선일보

9. “경원하, 북미에서 활동한 세계적 핵공학자”, 2003-04-20 한겨레

10. “김정남의 일본내 거점 ‘마루낑 비즈니스호텔’의 비밀”, 신동아, 2001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