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회고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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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부 조선노동당에 입당. 두번째

황장엽 회고록 2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3-02-06 18:40


심재윤 교장은 외모가 단정하고 세련되었으며 노래를 불렀다. 그는 자신을 훌륭한 혁명가로, 철학의 대가로 자처했다. 그리고 자신이 간부가 되지 못한 것은 최창익을 비롯한 엠엘파(마르크스-레닌파)들이 파벌 감정에 사로잡혀 자기를 배척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도쿄제국대학 출신 공산주의자 김두용 등과 친교가 있었다. 교장은 말을 잘하고 외모가 번듯해 청년들에게 호감을 샀다. 나는 그를 선배로서 존경했고 역시 나를 아껴 주었다. 잔정도 많아 밤늦도록 일을 하고 있으면 간식을 사다 주기도 했다. 그는 나에게 철학을 공부해 보라고 권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중국교재를 읽고 있을 철학사에 대한 지식이 보잘것없다는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희랍철학이나 독일고전철학을 관념철학이라고 배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포위원장은 학도지원병으로 일본군에 입대했다가 탈영하여 연안에서 일본군과 싸웠다고 주장하는 최규봉이었다. 그의 고향은 평안북도였다. 세포위원장은 나에게 협박조로 입당할 것을 권고했다. 교장도 입당을 권했다. 나는 당에 들어가는 그리 탐탁지 않았지만 동료교사들도 선생을 하려면 당에 들어가야 한다고 달래기에 입당원서를 냈다. 그리고 구역당 심사를 거쳐 1946 11 16, 조선노동당에 입당했다.


 


입당원서에 기록된 나의 출신성분은 중농이었고, 사회성분은 사무원이었다. 동료들이 그렇게 기록하는 나에게 주의를 주었다.


해방 전에 일본에서 고학하면서 노동을 했고 징용 가서도 1 6개월이나 노동을 했으면서 그렇게 쓰면 어떻게 합니까? 노동성분이 앞으로 출세하는 훨씬 유리하니 그렇게 고쳐 쓰도록 하세요.”


강제로 징용 나가 노동한 것이 무슨 노동잡니까. 출세할 생각은 별로 없으니 괜찮습니다.”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입당원서를 냈다.


 


(중략)


 


해설: 황장엽의 회고록, 나는 력사의 진리를 보았다, 지금까지 해설의 윤옥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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