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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6.25전쟁 교훈따라 핵무기 포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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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9-06-24 17:23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인민군이 남한을 향해 일제히 포격을 시작했습니다. 38선에 집결해 있던 13만 여명의 인민군은 포격과 함께 남침을 시작했습니다. 인민군 전체 부대에 하달된 남침 암호는 ‘폭풍'이었습니다.

소련제 T-34/85형 탱크 2백 마흔두대, 전투기와 폭격기 2백여 대, 각종 야포와 박격포로 무장한 인민군은 전쟁 시작 3일 만인 6월 28일, 남한의 수도 서울을 점령했습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전쟁이 일어난 직후인, 6월 25일 오후 2시,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북한 인민군의 즉각적인 전투 행위 중지와 38도선 이북으로의 철수"를 요청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지만, 북한군은 유엔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서울을 점령한 것입니다.

결국, 7월 1일 유엔안전보장 이사회는 한국을 지원하는 유엔군사령부 설치 결의안을 의결했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 영국, 프랑스, 필리핀, 터키, 에티오피아 등 열여섯개 나라로 구성된 유엔군이 편성됐습니다. 인민군의 남한 침략은 유엔군과 중공군의 개입으로 국제전으로 확대됐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전쟁은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3년 동안 계속됐습니다.

전쟁은 아름다운 산과 들을 파괴하고, 수많은 사람의 생명과 삶을 불살랐습니다. 당시 남과 북의 인구를 합하면 약 3,000만명이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죽거나 다친 사람은 군인과 민간인을 포함해 대략 4백만명이 넘었습니다. 전체 인구의 7분의 1이었습니다. 서울과 평양을 비롯한 주요 도시는 폐허가 됐습니다. 민간인 사이에 학살이 이어졌고, 분단으로 천만명이 가족과 헤어져야 했습니다. 전쟁은 남북 사이의 분단의 골은 더욱 깊게 만들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한 민족의 상처와 아픔은 6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민족에게 비극을 가져다 준 전쟁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그것은 폭력으로 ‘혁명'을 해보겠다며, 남한을 침략한 김일성에게 있습니다.

김일성은 소련 스탈린에게 수십차례에 걸쳐 전쟁을 승인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무력으로 남한을 점령하여, 한반도를 사회주의 국가로 통일하겠다는 목적 때문이었습니다. 스탈린은 그 때마다 거절했습니다. 소련이 직접 개입하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것, 3차 대전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것, 원자탄을 가진 미국과 싸워 승산이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소련이 원자폭탄 개발에 성공하고, 1949년 중국 공산당 정부가 들어서 북한을 군사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가능해지자, 스탈린은 김일성의 전쟁 요청을 승인하고 지원을 결정했습니다. 이것이 비극적 전쟁의 출발이었습니다.

전쟁의 고통은 우리 민족에게 귀중한 교훈을 주었습니다. 그 어떤 목적도, 폭력을 사용해 달성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정권은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지속하며, 무력으로 체제를 유지하고 통일을 이루겠다는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쟁 69주기를 맞는 지금, 7천5백만 민족의 이름으로 김정은 정권에게 고합니다. 지금 당장, 핵과 미사일 개발을 중단하고, 폭력과 전쟁의 길이 아니라, 대화와 평화의 길로 나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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