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사건과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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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 천도교 교령 오익제 랍치 사건 7

추적 사건과 진실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19 21:04




1997년 8월 남조선의 종교지도자 오익제가 평양에 도착했다. 당시 장군님의 품을 찾아 한 달음에 달려왔다고 요란하게 선전했지만 평양역에 도착한 오익제의 표정은 어두웠고 일그러져 있었다. 오익제는 도착 성명을 발표한 직후 어디론가 끌려갔고 그 뒤로 오랫동안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과연 오익제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추적, 사건과 진실, 남조선 천도교 교령 오익제 랍치사건>



<지난이야기> : 오익제는 대외련락부 공작원에게 유인되여 북경까지 오게 되었다. ‘오익제 랍치공작 실무단’ 책임자인 안경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국장은 오익제의 처와 딸이 조중 국경 근처에 있다며 다시 오익제를 단동으로 유인했다. 단동역에 도착한 오익제는 려권 문제 때문에 가족들이 기차에서 내리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차에 오르는데...



오익제가 기차 안으로 들어서자 처와 딸이 달려들었습니다. 세 사람은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떨어질 줄 몰랐습니다.



오익제가 감격적인 가족상봉을 하고 있던 그 순간 기차는 서서히 신의주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정신이 없던 오익제는 기차가 움직이는 기척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남신의주역을 지나 속도를 내기 시작할 때에서야 오익제는 창밖을 쳐다봤습니다. 그는 낯선 풍경에 소스라쳐 놀라 함께 기차에 올랐던 안경호에게 소리쳤습니다.



오익제 : 이봐요, 여기가 어딥니까? 이 렬차가 어디로 가고 있는 겁니까?



안경호 : 평양으로 가는 렬차입니다. 오익제 선생은 지금부터 민족종교 교류와 북남통일 사업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담당해주어야 하겠습니다.



오익제 : 평양이라니요? 이게 무슨 짓입니까? 당장 기차 돌리세요!



안경호 : 오선생, 진정하시고 앉아서 이야기 합시다. 그리고 벌써 오선생이 의거입북했다는 보도가 나갔습니다. 이것 보십시오. 오늘 조선중앙통신사가 내보낸 보도 자료입니다.



오익제 : 의거입북이라니, 이건 명백한 랍치입니다. 혹시 기차 안에 외신 기자분 없습니까? 헬프 미... 도와주십시오.



안경호가 오익제의 처와 딸에게 눈짓을 했습니다. 그러자 두 모녀가 오익제에게 매달려 ‘다시는 헤어져 살지 말자고, 이대로 돌아가면 우리는 살아남지 못한다’고 울며 애원했습니다. 안해와 처의 호소에 순간 오익제의 마음이 약해졌습니다. 안경호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총리 대우를 해주겠다느니, 다시 남조선행을 희망하실 경우 언제든 돌려보내주겠다면서 회유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익제를 랍치한 기본 목적이 황장엽 망명 사건의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거입북을 했다는 명백한 증거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아직까지는 오익제의 협조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오익제는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는 말에 한 시간 동안 생각할 여유를 달라고 안경호에게 요구했습니다. 두 모녀의 눈물 섞인 호소는 계속되였고, 이미 북조선 땅으로 들어섰으니 되돌릴 수도 없는 상황이였습니다. 오익제는 가족들을 위해서 또한 안경호의 약속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서, 통일전선사업부가 미리 써놓은 각본대로 평양역에서 의거입북 성명서를 발표하게 되였습니다. 우리가 첫 번째 이야기에서 살펴봤지만 당시 오익제는 평양역에 도착해서도 한참을 망설이다가 억지로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어두운 얼굴로 마지못해 성명서를 발표한 오익제는 곧바로 대동강구역 청류2동에 있는 문수초대소로 끌려갔습니다. 문수초대소는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때 전대협 대표들과 남조선 사람들의 숙소로 쓰기 위해 지은 건물로, 당시에는 조총련을 담당하는 통전부 56과가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오익제는 무장한 경비대가 감시하는 초대소로 끌려가자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오익제 : 북조선이 말하던 북남종교 교류와 북남통일에 기여한다는 게 나한테 이런 범죄자 취급을 하는 것입니까?



하지만 초대소 안에서 오익제의 말을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가 반발하면 반발할수록 조사의 강도만 세질 뿐이였습니다. 급기야 오익제는 서울을 돌려보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라며 단식에 들어갔습니다. 이번에도 오익제의 처와 딸이 나서서 직접 음식을 만들어 그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통일전선사업부 제1부부장 림동옥이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국장 안경호 함께 오익제를 찾아 왔습니다. 림동옥의 손에 음식이 들려 있었습니다.



림동옥 : 오익제 선생, 장군님께서 오 선생의 노여움을 풀어주라며 보내신 음식입니다. 이제 그만 단식을 푸십시오.



안경호 : 그래요, 오선생. 이왕에 우리 조선에 왔으니 가족들과 편안히 여생을 보내십시오.



오익제 : 이딴 음식 치우시오. 그리고 안경호 당신, 서울로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왜 지키지 않소?



림동옥 : 이 새끼가 감히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음식을 팽개쳐. 좋은 말로 해서는 안되겠구만.



김정일이 보낸 음식을 거부한 이후 오익제는 사형수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았습니다. 바깥 출입도 허용되지 않았고 무장 인력이 침실에까지 들어와 감시를 했습니다. 처와 딸의 출입마저 막아버렸습니다. 결국 압력을 견디지 못한 오익제는 타협을 시도했습니다. 이후 오익제는 평양 관광을 하기도 하고 김정일이 하사하는 벤즈와 저택까지 받기도 했지만 이 같은 연극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오익제는 자유가 없는 북조선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고 탈출을 시도하다가 다시 초대소에 갇혀 집요한 사상공세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철저한 감시와 통제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황장엽의 망명으로 충격을 받은 김정일이 맞대응으로 지시한 오익제 랍치 사건, 하지만 김정일은 “김대중이면 몰라도 오익제는 황장엽에 버금가는 인물이 못 된다”면서 화를 풀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오익제 사건은 오로지 김정일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서 대남공작기관들이 총동원되여 집행한 치사한 랍치사건이였습니다.



한편 김정일은 랍치공작 실무단을 이끌었던 안경호에게 로력훈장과 국기훈장 1급을 주었고, 이 공작에 참여한 기타 다른 성원들에게도 훈장들을 안겨 주었습니다. 랍치는 반인륜적인 범죄로 전 세계 인민들이 혐오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김정일은 훈장까지 하사하며 반인륜적인 범죄를 고무시켰습니다. 이처럼 김정일은 인민의 지도자라는 탈을 쓰고서 추악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총 7회에 걸쳐 진행된 남조선 천도교 교령 오익제 랍치 사건을 마치겠습니다.



<추적, 사건과 진실, 남조선 천도교 교령 오익제 랍치 사건>, 마지막 시간이였습니다.



<참고 및 인용자료>

- 전 북한 통일전선부 요원 11년만의 폭로(신동아, 200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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