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사건과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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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 천도교 교령 오익제 랍치 사건 5

추적 사건과 진실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19 21:04




내레이션 : 1997년 8월 남조선의 종교지도자 오익제가 평양에 도착했다. 당시 장군님의 품을 찾아 한 달음에 달려왔다고 요란하게 선전했지만 평양역에 도착한 오익제의 표정은 어두웠고 일그러져 있었다. 오익제는 도착 성명을 발표한 직후 어디론가 끌려갔고 그 뒤로 오랫동안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과연 오익제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추적, 사건과 진실, 남조선 천도교 교령 오익제 랍치사건>



<지난이야기> : 실무 책임을 맡은 안경호 조국평화통일서기국 국장은 오익제를 외국으로 유인하기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안경호는 먼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직원들을 보내 평안남도 성천에 살고 있는 오익제의 처와 딸의 사진을 찍어오게 하는데.....



림동옥 통일전선사업부장은 안경호가 가져온 ‘오익제 가족사진’을 보다가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림동옥 : 야 안경호! 옷만 번지르르하게 입혀서 사진 찍으면 다야? 눈이 있으면 보라. 이렇게 시골냄새가 풀풀 풍기는 강냉이 밭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 오익제가 뭐라고 생각하겠나. 도대체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안경호 : 사진을 찍어온 놈들이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림동옥 : 실수? 당신 지금 이 공작이 장난인 줄 알아! 1분 1초가 아까운 때에 이게 뭐하는 짓이야! 그리고 35호실과 대외련락부, 작전부 애들이랑 경쟁이 붙은 상황인데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하면 어떻게 하겠다는거야. 당신 나를 물먹이려고 작정한 거 아니야!



안경호 : 아닙니다, 부장님 아닙니다....



림동옥 : 또 이런 실수하면 당신이나 나나 죽은 목숨이야. 승용차 내줄 테니까 당장 가서 다시 사진 찍어 오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직원들은 다시 일제 중고 옷을 준비해서 평남 성천으로 급하게 차를 몰았습니다. 이번엔 회칠을 한 흰 아빠트가 있는 곳으로 오익제의 처와 딸을 데리고 갔습니다.



남1 : 야, 너 머저리야. 몇 번이나 가르쳐 줬는데 표정이 그 모양이야.



오익제의 처 : 미안합니다, 선생님. 미안합니다.



남1 : 똑바로 서기나 하라! 자, 다시 찍는다. 하나, 둘, 셋



남1 : 됐다. 야, 그 옷 벗으라. 시간 없으니까 빨리빨리 벗어.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직원들은 그 바쁜 와중에도 오익제의 처와 딸에게 입힌 중고 옷을 다시 회수했습니다. 그들에게 월남자 가족은 사상이 불순한 적대계급에 불과했기 때문에 옷조차 아까웠기 때문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사진이 완성되자 안경호는 오익제를 해외로 유인하기 위한 두 번째 준비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오익제에게 사진과 함께 보낼 편지를 쓰는 일이였습니다. 물론 이 편지 또한 오익제의 처와 딸이 직접 쓰는 것은 아니였습니다. 안경호는 평양시 중구역에 있는 대남문화련락소인 101련락소에 편지쓰기 임무를 주었습니다. 101련락소는 1970년대부터 남조선 작가나 시인의 이름을 빌려서 출판물 등을 위장 제작해 남조선 대학가나 운동권 진영에 침투시키는 일을 해왔기 때문에 위장편지를 쓰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였습니다. 오익제의 편지는 정치 리념적인 내용보다는 감정을 흔들 수 있는 애절한 사연이 담기는 것이 적절하다는 판단아래 101련락소 5국 시문학 부서의 박철이 담당을 했습니다. 박철은 오익제의 처와 딸의 이름으로 각각 두 통의 편지를 쓰게 되는데 통전부에서 몇 번의 검증 작업을 거친 후 마침내 편지를 완성했습니다. 잠시 편지의 내용을 살펴보고 가겠습니다.



오익제 처 : 여보, 저는 수십년간 당신을 그리며 살았습니다. 녀자 홀로 딸을 키우고 늙으신 어머니까지 모시면서 살아온 그 세월을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당신에게 이렇게 편지로나마 소식을 전할 수 있다니 아직도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습니다. 당신 소식을 전하니 어머님도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소식을 몰랐을 때는 잘 살고 있겠거니 하며 체념하고 계셨는데, 당신 이야기를 들은 뒤부터는 죽기 전에 한번이라도 아들 얼굴을 보고 싶다며 매일같이 흐느끼십니다.



오익제 딸 : 아버지... 얼마나 이 말을 해보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한 번도 본적이 없지만 제게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정말 꿈만 같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평생을 재가하지 않으시고 아버지를 기다렸습니다. 저도 할머니도 아버지를 기다렸습니다. 지금이라도 온 식구가 모여서 살았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버지, 우리 가족을 잊으신 거는 아니시겠죠.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편지는 애절했지만 사실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우선 오익제의 안해는 그동안 두 번이나 결혼을 했습니다. 그 때문에 오익제의 딸도 성이 두 차례나 바뀌었습니다. 또한 월남자 가족이라는 리유로 그들이 겪었던 차별대우와 고통은 단 한 글자도 편지에 실리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통일전선사업부가 준비한 사진과 편지글은 대외련락부 공작원을 거쳐 남조선 내 현지에 있는 35호실 공작원을 통해 마침내 오익제에게 전달됐습니다. 이 편지와 사진을 받아본 오익제는 화장실 변기에 앉아 한 시간을 울었습니다. 한편 편지를 전달한 35호실 공작원은 오익제를 해외로 끌어내기 위해 본격적으로 미끼를 던지기 시작합니다.



공작원 : 저쪽에서 오선생의 처와 딸을 중국으로 보내겠다고 합니다. 만나 보시겠습니까?



추적, 사건과 진실, 남조선 천도교 교령 오익제 랍치 사건>, 다섯 번째 시간을 마칩니다.



<참고 및 인용자료>

- 전 북한 통일전선부 요원 11년만의 폭로(신동아, 200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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