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사건과 진실

1997년 8월 남조선의 종교지도자 오익제가 평양에 도착했다. 당시 장군님의 품을 찾아 한 달음에 달려왔다고 요란하게 선전했지만 평양역에 도착한 오익제의 표정은 어두웠고 일그러져 있었다. 오익제는 도착 성명을 발표한 직후 어디론가 끌려갔고 그 뒤로 오랫동안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과연 오익제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추적, 사건과 진실, 남조선 천도교 교령 오익제 랍치사건>



<지난이야기> :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통전부에서는 ‘남조선 인사 의거입북작전’을 준비했습니다. 통전부는 과거 북조선과 련계가 있던 사람이던가 혹은 북조선 연고자들을 통해 공작 차원에서 접근했던 인물들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구체적인 검토 끝에 오익제를 포함한 종교계 인사 세 사람이 지목되는데.....



이야기 시작에 앞서서 먼저 북조선의 대남공작 수법 한 가지부터 살펴 보는게 좋겠습니다. 가장 흔한 방법이 포섭할 인물의 연고자들을 활용해 공작을 펼치는 경우입니다. 이 같은 공작을 전담하는 부서가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입니다. 이 부서는 현재 평양대극장 뒤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건물 안에 있는데, 소위 의거입북했다는 사람들로 구성되여 있고 남조선에 있는 연고자들에게 편지를 발송하거나 방송심리전, 직접접촉 등을 통해 해당 인물을 포섭하는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이외에 공식적인 교류사업을 통해 인물 포섭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이 경우에도 북조선에 가족이 남아 있는 월남자에게 초점이 맞춰지는데, 가족 소식을 전해주면서 상대방의 감정 상태를 시험해보는 것입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듣다보면, 통전부가 지목한 남조선 인사 중에 왜 천도교 교령 오익제가 선택되였는지 리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익제가 김정일 독재집단의 그물망에 걸려든 1차적인 리유는 그가 북조선에 남아 있는 가족들의 소식을 듣고 감정이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통전부는 오익제의 처와 딸이 평남 성천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의 심리정서를 타진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가 1993년 10월 류미영 천도교 청우당 위원장이 <서울-평양 교환방문 및 동학혁명 100주년 기념행사 공동주최> 협의를 위해 중국 북경을 방문했을 때입니다. 류미영은 오익제를 만난 자리에서 가족들에 대한 안부를 전해주었습니다. 이때 오익제는 굉장히 감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통전부는 이 점을 중시해 이미 그를 공작 차원의 포섭대상 명단에 올려놓은 상태였습니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오익제가 공작대상으로 결정된 것은 아니였습니다.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대남 및 대외부서 간부들은 오익제 외에 두 명을 월북시키거나 랍치하기로 의견을 모았고, 이에 기초해서 전술 대책안을 마련해 김정일에게 보고했습니다.



김정일 : 작전을 하기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 잘못하면 세 명 다 놓칠 수 있어. 한 명을 분명하게 선택해서 실수 없이 끝내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황장엽 탈북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는 거야.



이렇게 공작대상을 한 명으로 단일화하라는 김정일의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35호실과 대외연락부, 통전부는 어떤 인물로 정할 것인지를 놓고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권희경 : 오익제는 94년까지 천도교 교령이었지 지금은 아니지 않습니까? 공식 직함도 없는 사람을 데려오면 파급효과도 떨어지는데 굳이 그런 사람을 데려올 필요가 뭐 있습 니까?



강관주 : 남조선 대통령 선거가 코 앞에 있습니다. 그런데 오익제는 김대중이와 련계돼 있는 인물인데 그를 랍치해 온다면 그 피해가 고스란히 김대중에게 갈 것 아닙니까? 오익제를 데려오자는 것은 리회창 역도의 승리를 돕는 것입니다.



림동옥 : 두 동지 의견이 맞는 부분이 있지만 장군님께서 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하시였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골라야 하는데, 우리 통전부에서 지금까지 확인한 바로는 오익제가 그중 적합한 인물입니다.



한동안 토론이 이어졌지만 결국 시간을 단축해야 한다는 림동옥 통일전선사업부장의 의견에 따르기로 하였습니다. 각 부서들은 바로 임무를 분공했습니다. 우선 오익제를 해외로 유인하는 것과 의거입북으로 위장하는 것은 통전부가, 랍치는 35호실과 작전부, 대외련락부가 담당하기로 했습니다. 림동옥은 안경호 조국평화통일서기국 국장을 실무 책임자로 임명했습니다. 안경호는 즉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각 련락소 내의 우수인력들로 실무진을 구성했습니다. 랍치를 맡은 부서들은 미국과 일본, 중국, 그리고 서울 현지에 있는 공작선을 어떤 방법으로 오익제에게 집중시킬지 또한 랍치 의혹을 피할 수 있는 위장형태와 통로 확보를 위한 전술에 대해서 협의에 들어갔습니다. 호상간의 협의를 끝낸 부서들은 구체적인 전술안을 정리해 다시 김정일에게 보고했습니다. 보고서를 받아본 김정일은 첫 장에 다음과 같이 친필싸인을 남겼습니다.



김정일 : 이번 기회에 당 대남공작 부서장들의 능력을 검증하겠다.



김정일의 친필싸인을 본 대남공작 부서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렸습니다. 그들은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평양 대동강구역에 있는 의암초대소에서 숙식하며 공작을 지휘했습니다.



한편 오익제를 유인하는 임무를 맡은 안경호는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우선 오익제의 감정을 흔들어 놓기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직원들을 보내 평남 성천에 있는 오익제의 처와 딸의 사진을 찍어오게 한 것입니다. 적대계층에 속하는 월남자 가족들의 생활은 뻔한 것이였기 때문에 안경호는 직원들에게 일본 중고옷들을 준비해서 성천으로 내려가게 했습니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직원들은 오익제의 처와 딸에게 준비해간 옷을 입히고 사진을 찍은 후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이 사진을 검토한 림동옥 통일전선사업부장이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추적, 사건과 진실, 남조선 천도교 교령 오익제 랍치 사건>, 네 번째 시간을 마칩니다.



<참고 및 인용자료>

- 전 북한 통일전선부 요원 11년만의 폭로(신동아, 2008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