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선 생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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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화 류통기한
남조선 생활기
작성날짜
2012-03-22 17:20
- 항상 적대적인 나라, 미군과 거지가 득실거린다고 생각해 왔던 남조선, 여기에 2만 여 명의 탈북자가 살고 있습니다. 과연 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한 탈북자의 생활기를 통해 그들의 삶을 들여다봅니다.
정임 ; 으 ~ 쌰 ~ (기지개를 켜는 소리) 커피나 한 잔 마실가?
효과 : (커피타는 소리)
정임 ; 음~ 좋다.
처음엔 쓴 맛 때문에 입에 대기도 싫었던 커피가 이젠 좀 익숙되는 것 같다. 남들이 열 잔 마실 때 겨우 한 잔 마시다시피 했는데 조금씩 입에 대다보니 점점 커피 맛에 중독되는 것 같기도 하구~
커피를 마시며 얼결에 옆에 있는 랭장고 문을 여니 아직 상표도 뜯지 않은 빵이 한 개 있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 배가 출출했던 터라 얼렁 집어 들어 비닐을 뜯었다. 때 마침 밖에 나갔던 다윤언니가 들어왔다.
정임 ; 어, 언니, 빵 드세요, 랭장고 안에 빵 있었네요,
다윤 : 그래? 너나 먹어~ 근데 그거 언제부터 랭장고 안에 있던 거 아냐?
언니는 다짜고짜 내 손에 든 빵을 낚아채고 이리 저리 빵을 싼 비닐을 살펴보았다. 잠깐 한 곳에 시선을 멈추고 찬찬히 흩어보던 언니가 대번에 인상을 찡그리더니 류통기한이 지났다며 먹지 말라고 한다.
대체 무슨 영문인지 몰라 난 멍하니 서 있었다.
다윤 : 여기선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사용할 수 있는 기한이 정해져있어, 그걸 류통기한이라고 하지, 자, 봐봐, 여기 류통기한 3월 19일이라고 씌여져 있는 게 보이지?! 바로 이 날까지만 이 빵을 먹을 수 있다는 표시야~
하지만 아무리 살펴봐두 빵에는 별 다른 이상이 없었다. 혹시 곰팡이가 끼거나 조금 냄새가 이상한가 싶어 여기 저기 뜯어봐도 아주 멀쩡했다.
정임 ; 이걸 그냥 버린다구?
생각할수록 정말 아까웠다. 그건 그렇고, 류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먹으면 어떻게 되는지 더 궁금했다. 다윤언니가 하는 말이 하루 이틀 지난 걸 먹어도 별 탈은 없지만 하필이면 왜 그런 걸 먹겠냐고 했다. 먹고 싶으면 새 걸 사서 먹으라는 것이다.
멀쩡한 음식을 기한이 지났다고 버리라고 하니 참, 세상 오래살구 볼 판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류통기한이란 말을 알아듣지 못할 것도 아니다. 무엇이나 귀한 조선에선 언제 류통기한이 넘어갈 걱정 같은 건 할 일도 없으니 그런 말을 모를 뿐이다.
지금 이 시각도 장마당에서 떨어진 국수오리나 주워 먹고 있을 꽃제비 아이들에게 류통기한이야기를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가, 길바닥에 떨어져 이 사람 저 사람 발바닥에 밟히고 뒹굴어 새까맣게 더렵혀진 국수 한 오리 주워 들고 옷섶에 쓱 한번 문대고는 바로 입에 넣고, 또 기차연착 때문에 며칠째 렬차칸에서 쉬여버려 던진 밥 한덩이 받아 먹고, 근심스레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별 걱정 다 한다는 듯 눈길 한번 휙 흘기고는 치약 한 입 꿀꺽 삼키겠지. 그리곤 마치나 대단한 거라도 보여준 것처럼 새까만 얼굴에 흰 이를 드러내며 희뜩해서 웃고 있을 천진한 아이들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그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먹어대는 불쌍한 내 고향사람들도 류통기한 딱딱 따져가며 풍족한 물질생활을 누릴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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