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회고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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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부. 모스크바종합대학 철학연구원. 첫 번째
6개월이 지나자 강의를 마음대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듣고 싶은 강의를 찾아다니며 듣고 또 열심히 책을 읽었다. 천문학 강의와 이론물리학 강의도 듣고 철학사 강의, 문학 강의도 들었다. 러시아문학과 철학사, 로마사도 읽었다. 그렇게 열심히 1년 동안 5천여 페이지를 읽었는데, 그때부터 어떤 책이든 사전 없이 볼 수 있게 되었고, 또 러시아어로 사고(思考)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모스크바의 조선 유학생들은 매일 저녁 연구원이나 공부를 잘 한다고 소문난 학생 방에 모여 조선혁명과 관련된 토론회를 열었다. 유학생들은 이 토론회에서 서로 팽팽히 경쟁하며 두각을 나타내려고 애썼다. 그것은 이 토론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면 유학생 사회에 소문이 금세 퍼져 유명해지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토론회에 한 차례 참석했다. 그러나 토론회가 너무 정치적이라고 판단하고는 다시는 참석하지 않았다. 내가 소련에 유학을 간 목적은 소련의 발전된 이론을 배우려는 것이지 조선의 정치를 배우려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의 이런 행동에 대해 뒷말이 많았다. 내가 토론에 참가할만한 실력이 없기 때문에 토론회를 기피한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 소문이 맞았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나의 준비 정도로는 토론회에서 빛나는 의견을 내놓을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보다 나는 빠른 시간 내에 러시아 학생들을 따라잡기 위해 공부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자신을 위한 성실하고 실속 있는 공부를 하느라 토론회 따위는 무시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공부하는 대학에도 존경하는 사람의 정신이 아니라 외모를 흉내내려는 사람이 간혹 눈에 띄었다. 한 철학부 학생은 자기가 마르크스와 같은 천재라고 떠벌리면서 수염도 깍지 않고 담배를 많이 피웠다. 마르크스가 담배를 많이 피웠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었지만 그 친구처럼 많이 피웠는지는 의문이었다.
(중략)
해설: 황장엽의 회고록, 나는 력사의 진리를 보았다, 지금까지 해설의 윤옥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