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회고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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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부 마르크스와의 만남. 첫 번째
1948년 2월 중앙당학교 이론반 6개월 과정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것은 나의 사상적 발전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 이론반은 마르크스-레닌주의 강의 다시 말해 소련공산당 역사 강의를 담당할 대학원 양성반이었다. 이 반에 들어온 사람들은 모두 수준급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이 학교는 숭실전문학교 자리를 썼는데, 몇 동은 교실로 쓰고 몇 동은 기숙사로 썼다. 나는 뒤떨어진 공부를 메우기 위해 잠도 안 자고 매달렸다. 그래서 야간대학생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나는 철학에 취미를 가진 동무들과 철학연구소조를 조직하고 엥겔스의 저서『루드비히 포이에프바하와 독일고전철학의 종말』을 학습했다. 이 학습을 통하여 나는 마르크스주의가 자기철학을 갖고 있음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마르크스주의에 참다운 인생관이 없다는 걸 느끼기도 했다.
우리를 지도하는 강사들 대부분은 소련에서 온 조선인들이었다. 교장은 김승하라는 사람이었는데, 그는 소련에서 발간된 교과서로 철학 강의를 했다. 이때부터 강습기간이 한 달 연장되었다. 그래서 우리 이론반은 8월 말에야 졸업을 할 수 있었다. 우리들의 졸업성적은 서로 비슷했으나 이런저런 경력이 앞서는 이들이 김일성대학에 배치되고, 나는 그 다음 부류로 인정되었는지 평양사범대학에 배치되었다. 배치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느닷없이 중앙당 간부부에서 나를 호출했다.
“동무, 미안하게 됐소. 최창익 동무의 부인이 김일성대학 예비과에 배치되었는데, 그 동무가 자꾸만 사범대학으로 보내달라고 하니 어쩌겠소. 미안하지만 김대 예비과에 잠시 가 있어 주시오. 그럼 이내 원하는 대학으로 보내주겠소.” 간부부에서는 오히려 내게 김일성대학에 가 있어달라고 간청하는 것이었다. 최창익은 정치국원이고 연안파의 거두였다. 나는 군말 않고 김일성대학 예비과로 갔다. 사정이야 어찌 되었든 나에게는 공부를 더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던 것이다.
(중략)
해설: 황장엽의 회고록, 나는 력사의 진리를 보았다, 지금까지 해설의 윤옥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