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민이 살 길은 개혁개방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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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개방 이후 달라진 중국의 사상문화

북한이 살 길은 개혁개방뿐이다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30 22:17

사회 : 이번 순서는 '조선인민이 살 길은 개혁개방 뿐이다' 시간입니다. 김정일 독재를 반대하는 량심적인 간부들, 그리고 조선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청년학생들과 함께 개혁개방의 구체적인 방도를 살펴봅니다. 지난 시간부터 개혁개방 이후 변화한 중국 사회를 알아보고 있는데 지난 시간에 우리는 개혁개방 이후 중국인들의 식의주 생활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오늘은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사상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 마련했습니다. 개혁개방과 함께 중국의 사상과 문화는 또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오늘은 도움 말씀을 위해 윤성호 방송원과 전화로 련결해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윤 : 네, 안녕하십니까.



사회 : 중국은 여전히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중국의 사상을 좌우하는 것은 여전히 공산당의 리념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 공산당의 리념이 어떻게 달라져왔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순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먼저 문화혁명이 끝나고 개혁개방이 막 시작되던 당시 중국 공산당의 리념에서 어떤 변화가 나타났습니까?



문화대혁명이 막 끝이 나던 시기, 중국의 당면 과제는 역시 경제 건설이었습니다. 1976년 9월 모택동의 사망으로 국가 주석이 된 화국봉은 문화혁명의 잔재를 한꺼번에 쓸어버리는 동시에 모택동의 계속혁명론을 옹호하면서 경제를 우위에 놓는 실용주의 로선을 내세웠습니다.



화국봉 주석이 문화대혁명의 잔재를 청산한다면서도 문화대혁명을 주도했던 모택동을 옹호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인 것은 자신이 모택동의 계승자라는 점을 내세워 정권을 안정시키고 실용주의파의 득세를 견제하려는 의도로 풀이됩니다.



문제는 실용주의를 내세웠으면서도 경제 계획은 여전히 비현실적이었다는 것입니다. 76년부터 85년까지 약 10년 동안 농업생산량을 매년 4~6% 정도 증가시키고, 농업 기계화 비율을 85%까지 달성한다는 국민경제 10개년 계획을 내세웠는데, 이는 대약진 시기 현실을 무시한 채 수립된 경제계획과 차이가 없었습니다.



문화대혁명이 끝난 직후 화국봉 시대 중국 공산당은 경제를 우선한다는 실용주의를 내세웠다는 점에서 향후 변화의 기본 방향이 어렴풋이 제시했으나 그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하지는 못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 : 이렇게 화국봉의 계속혁명옹호론과 실용주의가 경제성장에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등소평이 등장하는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 이렇게 볼 수 있겠군요.



윤 : 그렇습니다. 78년 3차 중앙위원회전체회의에서 화국봉이 물러나고 등소평이 등장했습니다. 등소평은 그 동안 줄기차게 강조되었던 모택동의 계속혁명론을 포기하고 혁명보다는 경제건설을 우선하는 실용주의적 개혁 개방정책을 공식 채택했습니다. 바로 이 시점이 중국 공산당이 사회주의 혁명 대신 실용적인 경제발전을 전면에 내세우는 전환점이 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회 : 그럼 등소평이 등장하면서 중국 공산당의 리념과 로선은 어떻게 달라집니까?



등소평은 ‘중국적 특색을 지닌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내세웠습니다.

이를 위해 두 가지를 내세우는 데요. 하나는 4개 현대화 로선입니다. 계급투쟁이나 계급 모순론에서 벗어나 날로 증가하는 인민들의 물질적 요구와 이에 상응하지 못하는 락후한 생산력을 중국사회의 주요모순으로 규정하고 농업/공업/국방/과학기술, 이렇게 4개 부분의 현대화를 국가의 최우선과제로 채택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정치제일주의 로선을 경제제일주의 로선으로 바꾼 조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개혁개방 로선입니다. 개혁개방의 정당성을 내세우기 위한 리론적 근거로 등장한 것이 바로 사회주의 초급 단계론입니다. 경제적으로 빈곤하고 락후된 농업국가 중국을 사회주의 초급단계로 규정하고 농업국가를 현대화된 공업국으로 전환하고 자연적인 농업경제에서 고도의 상품경제로 발전시키기 위한 개혁과 개방이 필요하다는 논리였습니다.



사회 : 개혁개방 로선을 전면에 내걸면서 혁명을 사실상 포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만, 사실 중국식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총 로선에 여전히 사회주의를 견지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띱니다. 이걸 어떻게 볼 수 있습니까.



윤 : 당시 등소평은 개혁개방을 통해 중국식 사회주의 건설을 내세우면서 네 가지 원칙을 고수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첫째는 사회주의 로선을 견지하겠다는 것이구요. 둘째는 인민민주독재를 견지하겠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공산당의 령도를 견지하겠다. 네째는 맑스․레닌주의와 모택동 사상을 견지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사회주의 로선과 기본 리념은 고스란히 계승하겠다', '개혁개방은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한 실용주의적 차원에서 추진한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사회 : 화국봉도 경제발전과 실용주의를 내세웠지만,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현실적이 계획이 없어 성과를 거두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등소평이 내세운 개혁개방 계획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윤 : 등소평은 국가 발전 정책을 현대화 3단계론을 제시합니다. 80~90년까지 10년 동안은 '가장 기본적인 먹는 문제(溫飽解決)를 해결하겠다'는 것. 90년에서 2000년까지 10년 동안은 '인민들이 중산계층 수준의 생활을 유지하게 하겠다'는 것. 그리고 2050년까지는 중간선진국에 도달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이러한 3단계 발전론에 따라 중국은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각종 대내외 경제개혁 정책을 추진하였습니다. 구체적인 현실을 기초로 중국인민들의 실질적인 생활향상과 장래에 대한 청사진을 제공한 것입니다.

개혁개방을 통해 중국적 특색의 사회주의를 건설하겠다는 이러한 로선을 오늘날 중국 사람들은 등소평 리론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사회 : 사회주의, 인민독재, 공산당 령도, 맑스레닌주의와 모택동사상을 고수하겠다는 이른바 4개 원칙은 정치는 개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중국 당국의 의지를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이 시장경제를 도입하여 중등 공업국으로 발전하고 그에 따른 경제적 열매로 인민들의 생활수준을 높이겠다는 중국 정부의 전략의 장애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윤 : 그렇습니다. 경제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치 분야의 개혁 속도는 느린 편이었습니다. 그로 인한 부작용도 없지 않았습니다. 1986년 학생과 지식인들이 주도했던 정치적 민주화 요구 그리고 1989년 벌어진 천안문사태는 중국의 정치적 리념의 변화를 요구하는 투쟁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한편으로는 급진적인 변화 요구를 억누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경제로의 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방식으로 사태를 해결해 나갔습니다.

1980년대 말은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던 시기였습니다. 소련연방의 붕괴는 한편으로는 등소평 체제의 위기를 고조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증거가 되기도 했습니다.

92년 제14기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중국 당국은 중국의 체제의 성격을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로 공식화 했습니다.

등소평은 당시 남순강화에서 '계획과 시장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본질을 구분 짓는 요소가 아니며, 양체제 모두 두 요소를 공유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80년대 중국 사회에서는 약 10년 동안 계획이 먼저냐 시장이 먼저냐를 논쟁이 있었습니다. 등소평은 남순강화에서 시장이 경제활동을 조절하는 주요 수단이라는 점을 천명함으로써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정치개혁의 속도에 관계없이 시장경제체제 건설에 박차를 가하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사회 : 개혁개방 이후 중국 공산당은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자신의 리념으로 공식화했습니다. 중국의 리념은 한마디로 사회주의에서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변화해 왔다고 할 수 있는데요. 그렇다면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윤 : 사회주의 시장경제 리념의 주요 내용이 체계적으로 드러난 것은 중국 공산당 17차 전국대표대회였습니다. 호금도 총서기가 관련 내용을 보고했는데요. 내용은 크게 세 가지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중국특색 사회주의, 두번째는 과학적 발전관, 그리고 세번째는 소강사회 건설입니다.



사회 : 그렇군요. 그럼 첫 번째 중국특색 사회주의의 내용에 대해 살펴보죠.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란 어떤 것입니까?



윤 :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내용은 다섯 가지입니다. 첫째, 중국 공산당이 령도한다는 것. 둘째, 경제건설을 중심으로 4대 기본원칙을 견지한다는 것. 셋째 개혁개방을 견지한다는 것. 넷째 사회생산력을 발전시키며 사회주의 제도를 완벽히 한다는 것. 다섯째, 사회주의 시장경제, 사회주의 민주정치, 사회주의 선진문화, 사회주의 조화사회건설을 추진하여 부강하고 민주적이며 또한 문명적인 '조화로운 사회주의 현대국가'를 건설한다는 것.



호금도 총서기는 발표문에서 '맑스주의는 중국의 현실과 결합하고, 시대와 함께 발전하면서, 인민대중과 운명을 같이 해야만 거대한 생명력, 창의력, 감화력이 생긴다. 따라서 중국적 특색의 사회주의 리론체계를 견지하는 것이 맑스주의를 진정으로 견지하는 것'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중국식 사회주의란 쉽게 말해서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시장경제를 결합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사회 : 그렇군요. 등소평 리론이라고 할 수 있는 이른바 사회주의 시장경제론의 두번째 요소인 과학적 발전관은 어떤 것입니까?



윤 : 과학적 발전관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가장 중요한 것이 ‘발전’이고, 핵심은 ‘인간본위’라는 것입니다. 계급투쟁이나 사유제 철폐와 같은 사회주의 리론과는 강조점이 크게 달라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발전은 전면적 소강사회를 건설하고 사회주의 현대화를 가속화 하는데서 결정적 의의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경제건설을 중심으로 전력을 기울여 발전을 추진함으로써 사회생산력의 끊임없는 해방과 발전을 추구하자고 선언합니다. 셋째는 경제건설, 정치건설, 문화건설, 사회건설 등을 전면적으로 추진하되, 각 부분, 각 분야가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도시와 농촌의 조화, 발전된 지역과 락후된 지역의 조화, 인간과 자연의 조화, 경제와 사회의 조화, 국내발전과 대외개방의 조화, 중앙과 지방의 조화를 효과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 : 마지막이 소강사회의 전면적 건설인데요. 소강사회란 어떤 사회를 말하는 것입니까?



윤: 호금도 서기는 보고서를 통해 소강사회에 대한 대략적인 상을 제시하는 데요. 대표적인 것을 세 가지 정도 골라보면 이렇습니다.

첫째, 조화와 균형을 견지하면서 경제발전에 전력하여, 환경을 보호하면서도 효율적인 경제발전을 실현함으로써 2020년 일인당 소득을 2000년의 4배로 높인다.

둘째,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완벽하게 세우고, 자주적 혁신능력을 높이며, 경제성장 과정에서 과학기술의 기여도를 크게 향상시켜 혁신형 국가의 반열에 오른다.

셋째, 주민 소비를 안정적으로 늘리고, 소비와 투자, 수출이 동시에 증가하는 경제성장 구조를 만들며, 도시와 농촌, 각 지역이 서로 협력하여 공동으로 발전하는 발전 체제를 세우며, 사회주의 새 농촌건설에서 중대한 전진을 이룬다.

종합해보면 시장경제와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인민들의 소득을 늘리고, 지역과 계층 간 격차를 줄이겠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중국 당국은 2020년 소강사회가 실현되면, 공업화가 실현되고, 종합국력이 뚜렷하게 증강되어 국내시장 규모가 세계에서 가장 커지고, 주민생활 수준이 크게 높아지며, 인민들의 민주적 권리가 보장되고 제도가 완비된 문명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사회 : 사실, 겉으로는 사회주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공산당의 령도를 유지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보입니다.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내용을 보면 사실,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윤 :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역대 중국 공산당의 당대회에서 등장한 용어를 보면 중국 공산당의 리념적 변화를 엿볼 수 있어 흥미롭습니다.

77년에 열린 11차 당 대회에선 ‘모주석’이란 단어가 214회나 등장해 1위를 기록했습니다. 투쟁과 혁명이라는 용어도 많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2002년에 있었던 16차 당 대회(2002년)와 17차 당 대회에서 가장 많이 나온 용어는 ‘발전’이었습니다. 두번째로 많이 나온 용어는 '건설'이었습니다.

발전과 건설이라는 용어는 30년 동안 시간이 갈수록 꾸준하게 증가해왔습니다.



사회 : 그렇군요. 그럼 끝으로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사상과 리념은 어떻게 변화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윤 : 개혁개방 이후 지난 30년 동안 중국 공산당은 리념성 자체가 꾸준하게 약화되어 왔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리념을 뜻하는 용어로 ‘홍(紅)’이라는 글자를 사용합니다. 실리나 전문성을 뜻하는 용어로는 ‘전(專)’이라는 글자를 사용하는 데요. 개혁개방 이후 중국 정치는 홍에서 전으로 이동해왔습니다.



중국 사회에서는 그 동안 혁명·투쟁·무산계급과 같은 리념 색채가 짙은 용어들이 사라지고, 대신 발전·건설·경제와 같은 실용주의적 용어가 대거 등장했습니다. 현재 중국 인민들 가운데 혁명이나 투쟁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들의 관심은 경제발전과 풍요로운 생활입니다. 중국 공산당도 자신들의 리념에 이러한 인민의 요구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회 : 끝으로 향후 중국 공산당의 리념변화를 전망해주시죠.

윤 : 사회주의라는 용어는 앞으로도 일정 기간 계속해서 사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중국 공산당은 경제발전과 인민들의 생활향상을 최우선에 놓는 정당이 되었고, 이러한 성향은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다른 나라의 정당과 사실상 차이가 없는 정당으로 변화하겠죠.



사회 : 개혁개방 이후 중국 공산당의 리념변화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 공산당은 혁명과 투쟁을 앞세우던 리념정당에서 경제발전과 인민생활을 앞세우는 민주주의 시장경제 정당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일정 기간은 공산당 집권을 위해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겠지만, 이미 사회주의라는 용어는 계급투쟁과 혁명이 빠진 껍데기만 남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개혁개방 이후 변화한 중국의 문학과 예술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 갖겠습니다. 조선인민이 살 길은 개혁개방 뿐이다. 오늘 시간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윤성호 방송원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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