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민이 살 길은 개혁개방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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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개방 이후 중국 사회 3

북한이 살 길은 개혁개방뿐이다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30 22:17


사회 : 이번 순서는 ‘조선인민이 살 길은 개혁개방 뿐이다’ 시간입니다. 김정일 독재를 반대하는 량심적인 간부들, 그리고 조선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청년학생들과 함께 개혁개방의 구체적인 방도를 살펴봅니다. 지난 시간부터 개혁개방 이후 변화한 중국 사회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중국의 기념일과 려행문화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오늘은 개혁개방 이후 중국사람의 식의주 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 마련했습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사람들의 무엇을 어떻게 먹는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집에서 생활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오늘도 도움 말씀을 위해 윤성호 방송원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윤 : 네, 안녕하십니까?



사회 : 개혁개방 이후 중국 사람들의 생활변화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식의주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중에서도 식생활 즉 먹는 문제가 제일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 먼저 개혁개방 이전 중국 사람들의 식생활은 어떠했는지 짚고 넘어가보죠.



윤 : 사회주의 국가가 세워진 직후였던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를 중국사람들은 배를 곯던 시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집집마다 쌀이나 밀가루가 부족하여 늘 감자, 호박, 고구마로 끼니를 때웠던 시대였습니다. 기름도 모자라고 반찬거리도 별로 없고 요리에 꼭 필요한 소금도 크게 부족했습니다. 가공이 제대로 되지 않아 껍데기가 섞인 옥수수가루로 떡이나 국수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1970년대까지도 쌀에 무우를 섞은 무밥도 많이 먹었습니다.



당시는 음식재료를 사려면 량표, 기름표, 고기표 같은 표가 있어야 했습니다. 어떤 집에서는 외지에 갔던 집식구가 돌아오면 함께 돼지고기 료리를 먹으려고 고기표 유효기간 마지막 날에 고기를 사다 김치움에 저장해 놓았는데, 집식구가 일찍 돌아오지 못하면 돼지고기가 변질되여 먹지 못할 지경에 이른 일도 많았던 그런 시대였습니다.



사회 : 그렇군요. 쌀이나 밀가루가 좀 부족해도 다른 곡식으로 배고픔을 달랠 수 있었다면 그나마 형편이 좀 나았던 것은 아닐까요?



윤 : 사실, 1950년대 말이 되면 토지 국유제가 급격하게 시행되면서 생산력도 낮아집니다. 그 이전에도 식량 사정이 넉넉했던 것은 아니지만 급진적인 토지 국유화 정책으로 식량 사정이 더욱 악화되고 말았습니다. 1983년에 발행된 <중국년감>에 따르면, 1959년에서 1961년까지 3년간 진행되었던 대약진운동이 실패함으로써 약 2천 4백만 명이 굶어죽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회 : 굶주려 죽을 정도라면 식생활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만큼 식생활이 심각하게 어려웠던 시대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 사람들은 배고픔에서 완전히 해방되지 않았습니까? 그와 같은 변화는 언제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습니까?



윤 : 중국에는 '백성이란 먹는 것을 하늘처럼 섬긴다(民以食爲天)'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역대 천자들이 생각했던 최대의 정치적 과제는 백성을 어떻게 먹이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백성들을 굶지 않게 해주는 황제가 나타나면 태평성대의 황제로 칭송받았습니다. 그러나 인구가 워낙 많다보니, 먹이는 것이 보통 문제가 아니었고, 그 때문에 중국 대륙에서 력사상 먹는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력사상 한 번도 해결된 적이 없었던 먹는 문제가 개혁개방이 실시된 직후인 1980년대가 되면 점차 해결되기 시작합니다. 개혁개방 이후 곡물생산량이 늘어나고 백성들의 생활형편도 점차 좋아졌습니다. 개혁개방이 실시되면서 곡물을 배급받던 시대는 끝이 났습니다. 중국사람들은 자신이 일해서 번 돈으로 장마당에 나가 마음에 드는 쌀과 기름을 먹고 싶은 만큼 살 수 있게 됩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각 가정의 밥상에서 잡곡밥이 사라지고 새하얀 이밥이 등장합니다. 상 귀퉁이에는 고기 료리가 올라왔고, 가끔씩 과일이나 먹고 싶은 부식품도 등장하게 됩니다.



1980년대 후반에는 굶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먹는 문제가 거의 해결됩니다. 중국 사람들은 1980년대를 배불리 먹었던 시대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회 : 조선에서는 1990년대에 수백만이 굶어죽는 식량난이 찾아오지 않았습니까? 1990년대 중국의 식생활은 어땠습니까?



윤 : 1980년대는 배불리 먹던 시대였다고 말씀드렸는데요. 1990년대 중국의 식생활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는 배고파서 먹는 것이 아니라 진귀하고 맛있는 음식을 즐기기 위하여 먹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자신이 먹어보지 못한 귀하고 맛있는 료리를 먹기 위해 유명호텔이나 식당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문화가 생겼습니다. 당시 중국에서는 인민비 기준으로 1000억 원에 달하는 돈이 음식상 위에서 사라질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요식업이 크게 발전했습니다.



사회 : 개혁개방 이후 요식업, 즉 식당업은 얼마나 발전했습니까?



개혁개방이 막 시작되던 1978년에는 전국에 약 11만 7천개의 식당이 있었습니다. 식당에서 일하던 접대원의 수는 약 104만 4천명이었습니다. 중국 정부는 개혁개방과 함께 국가가 소요하고 있던 식당을 모두 개인에게 넘겼습니다. 그 이후 식당의 수가 점차 늘어났는데요. 1990년대 음식을 즐기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식당의 수도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2002년 기준으로 중국의 식당은 약 350만까지 늘어납니다. 식당에서 일하는 접대원의 수도 1800만 명으로 증가했습니다. 20년 전에 비해 식당은 약 서른 다섯배, 접대원은 약 열여덟배 정도 늘어난 것입니다.



1990년대를 거치면서 식당의 수만 늘어난 것은 아닙니다. 음식을 연구하는 전문 요리연구가들이 생겼고, 음식을 다루는 책이 급격하게 늘어났습니다. 중국 전역에서 음식경연대회나 음식축제가 열리고, 텔레비죤에는 음식에 대한 프로그람까지 생겨났습니다.



사회 : 식생활 문화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군요. 중국이 시장경제를 추진하면서 그와 같은 식생활 문화가 그대로 경제발전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국 사람의 식생활 변화가 중국 경제를 얼마나 발전시켰습니까?



윤 : 식생활 변화가 중국 경제에 미친 영향을 정확히 계산해 내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중국의 식당이 얼마를 벌어들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자료가 나와 있습니다. 중국 사회과학원의『재경청서』에 따르면, 중국의 전체 식당이 1년 동안 벌어들인 돈이 1978년에 인민비로 약 54만 8,000위안에 불과했으나, 2008년에는 1조5,404억 위안으로 무려 100만배나 증가했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중국의 평균 경제 성장률보다 훨씬 높은 벼락성장을 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 : 그렇군요. 1990년대 중국 식생활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나머지 특징은 어떤 것입니까?



윤 : 먹고 마시자는 이른바 ‘먹자풍’이 1990년대 전국 전역을 휩쓸었다는 말씀을 드렸는데요. 어떤 사람은 자신이 한달 동안 번 돈을 대부분 먹는 데 써버릴 만큼 먹자풍이 거셌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중국료리 만으로는 더 이상 중국 사람들의 입맛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중국 전역에 외국 음식을 파는 식당들이 생겨났습니다. 프랑스, 이딸리아, 일본 료리점과 맥도날드, 컨더키 같은 미국 료리 전문점들이 전국 곳곳에 생겨났습니다. 중국사람들은 돈만 있으면 국경을 벗어나지 않고도 세계 각국의 료리를 마음껏 맛볼 수 있었습니다.



사회 : 그렇군요. 그러나 굶는 것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많이 먹게 되면 건강을 해칠 수도 있지 않습니까? 1990년대 불어 닥친 먹자풍 때문에 혹시 중국 사람들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진 않았습니까?



윤 : 아직 심각한 수준은 아닙니다만, 문제가 조금씩 생기고 있습니다. 기름지고 단 음식을 너무 많이 먹는 바람에 뚱뚱한 사람들이 크게 늘었고, 고혈압, 당뇨병 같은 선진국형 질병도 점차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2000년대 이후 중국 사람들의 식생활은 또 다시 달라지고 있습니다.



사회 : 그래요. 어떻게 달라지고 있습니까?



윤 : 일단 비만과 선진국형 질병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는 기름진 음식과 소금을 적게 먹기 시작했습니다. 비만의 원인이 되는 탄수화물이 많이 든 쌀이나 밀가루 섭취도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대신 옥수수와 같은 잡곡이 다시 밥상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의 최근 식생활을 잘 보여주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네발 가진(돼지, 소 등) 음식이 두발 가진(오리, 닭 등) 음식보다 못하고 두발 가진 음식이 한발 가진(버섯류)음식보다 못하다’는 말입니다. 돼지나 소고기 보다는 오리나 닭고기가 몸에 좋고 오리나 닭고기 보다는 버섯이 더 몸에 좋다는 말입니다. 2000년대 이후 중국사람들은 맛보다는 건강을 위한 식생활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기호식품의 소비도 크게 늘었습니다. 최근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국 사람들의 92.2%가 커피를 마신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이 중 6%는 거의 매일 마시고, 38.4%는 자주 마시며, 55.6%는 가끔 마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회 : 중국 사람들은 식생활은 굶지 않기 위해 먹는 것에서 많이 먹는 것으로, 많이 먹는 것에서 맛있게 먹는 것으로 변화했다가 오늘날에는 건강을 위해 먹는 것으로 급격하게 변화했다고 말할 수 있겠군요. 그렇다면 이제 의복생활의 변화에 대해 알아보죠. 개혁개방 이후 의복생활에서 가장 큰 변화는 무엇입니까?



윤 : 가장 큰 변화는 옷의 색깔입니다. 개혁개방 이전 중국 사람들의 옷은 대체로 검은색이나 흰색이 주를 이루고 이었는데요. 개혁개방 이후에는 천연색 옷으로 바뀌었습니다.

개혁개방 이전에 색깔 옷을 입지 못한 이유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은 염색기술이 부족해서 옷감에 물을 들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또 색깔 있는 옷을 입게 되면 ‘자산계급’으로 분류돼 타도의 대상으로 몰릴 수도 있다는 정치적 이유도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포표(布票, 뿌피아오)라는 것이 있어서 천을 사는 것도 한 사람당 1년에 3~4미터를 넘지 못했습니다. 일단 옷 자체가 별로 없었던 시대였습니다. 평백성들 중에는 한 벌로 사계절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개혁개방이 되면서 옷이 없는 중국사람들은 없습니다. 대부분의 중국사람들은 각 철마다 적게는 서너벌 많게는 열벌 이상의 옷을 갖고 있습니다. 이 옷은 입지 말라 저 색깔 옷은 벗어라 하는 식으로 당국이 간섭하는 일이 사라졌다는 것도 의복생활의 큰 변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회 : 개혁개방으로 옷이 없어 생활이 불편한 사람이 사라졌고, 옷차림 검열도 사라졌고, 그런가 하면 옷 색깔도 다양해지고 화려해졌다는 말씀이시군요.



윤 : 그렇습니다. 최근 중국 사람들의 주요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편리하면서도 멋진 옷을 입느냐 하는 데 있습니다. 여성들은 드라마에 나오는 유명 여배우들의 옷차림을 금새 따라하고 있고, 남성들도 월급을 받으면 백화점에 가서 고급 양복을 구입합니다. 또 한번 사면 10년 20년씩 입는 것이 아니라, 새 계절이 오면 대부분 한 두벌 정도는 새 옷을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국에서는 매년 편리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요령을 소개한 책이 수천권씩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사회 : 한때 중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입던 중산복은 지금 어떻게 됐습니까?



윤 : 중산복은 손문 선생이 현대 생활에 편리하게 고안한 옷입니다. 중산이라는 손문선생의 호를 따 이름을 붙였습니다. 중국 사람이 가장 애용하는 복장입니다. 그러나 농촌에나 가야 볼 수 있는 옷이 되었습니다. 특히 젊은 사람이 입은 모습은 보기가 힘듭니다. 중국사람들이 입는 옷의 대부분은 개혁개방 이후 들어온 서양의복들로 변했습니다.



사회 : 조선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자 이제 주거생활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개혁개방이 되면서 중국 사람들의 주거생활은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윤 : 우선, 1인당 거주면적이 달라졌습니다. 중국 도시 주민의 경우 한 사람이 거주하는 면적은 평균 30㎡ 정도, 농촌 주민의 경우 33.6㎡ 정도라고 합니다. 개혁개방 당시인 1978년에는 6.7㎡ 정도였습니다. 거의 네 배가 늘어난 것입니다. 개혁개방 이전에는 10㎡ 밖에 안 되는 작은 방에서 아홉 명이 끼어 사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대부분 방 한칸에 한명씩 생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 : 주택 소유제도와 형태는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1998년이 되면 주택의 소유주가 국가에서 개인으로 넘어갔습니다. 개혁개방 이후 주거 생활의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사람들은 자신이 열심히 일해 돈을 벌면 자신의 집을 가질 수 있게 됐고, 그 집이 마음에 안 들거나 식구들이 늘어나서 집이 좁아지면 다른 사람에게 팔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집을 팔아 돈을 벌 수 있게 되면서 집을 지어 판매하는 기업소들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주택 건설기업소들이 늘어나면서 주택의 수도 크게 늘어났습니다. 그 때문에 방한 칸에서 여러 세대나 여러 명이 같이 생활하는 경우가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주택의 형태도 대부분 아파트로 바뀌고 있습니다. 2009년 현재 중국사람 가운데 약 절반에 해당하는 46.6%가 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이 2011년인데요. 절반을 넘어섰을 것으로 보입니다. 도시의 주택형태는 대부분 아파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중국 사람들은 전기와 수돗물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습니다. 도시가스를 이용해 밥을 짓고 난방을 하는 사람의 수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사람들은 자기 집에서 편리하고 생활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 : 개혁개방 이후 중국 사람들의 식의주 생활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개혁개방을 통해 굶주림에서 벗어나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되었으며, 오늘날에는 건강을 위해 오히려 무조건 쌀과 고기만 먹는 것이 아니라 채소를 비롯한 다양한 자연식품을 먹는 선진국형 식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 검정색과 흰색만 입던 중국 사람들이 이제는 편리하고 아름다운 색깔의 옷을 자유롭게 입게 되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방 한칸에서 아홉명이 끼어 살던 시대에서 널찍한 방 한칸에 한명이 생활하는 시대로 발전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개혁개방 이후 변화하고 있는 중국의 사상문화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조선인민이 살 길은 개혁개방 뿐이다. 오늘 시간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윤성호 방송원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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