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사건과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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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 천도교 교령 오익제 랍치 사건 6

추적 사건과 진실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19 21:04




1997년 8월 남조선의 종교지도자 오익제가 평양에 도착했다. 당시 장군님의 품을 찾아 한 달음에 달려왔다고 요란하게 선전했지만 평양역에 도착한 오익제의 표정은 어두웠고 일그러져 있었다. 오익제는 도착 성명을 발표한 직후 어디론가 끌려갔고 그 뒤로 오랫동안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과연 오익제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추적, 사건과 진실, 남조선 천도교 교령 오익제 랍치사건>



<지난이야기> : 오익제는 35호실 공작원을 통해 안해와 딸의 사진과 편지를 전달받았다. 오익제는 감정이 크게 동요됐다. 공작원은 이틈을 놓치지 않고 가족들을 만나볼 수 있다며 오익제를 해외로 유인하는데......



김정일의 지시를 받고 오익제 랍치공작을 맡고 있던 35호실, 대외련락부, 작전부, 통일전선사업부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습니다. 오익제가 ‘중국에서 가족을 만나게 해주겠다’는 공작원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인지가 작전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일이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오익제가 이 대가없는 호의를 의심할 것에 대비해 대남 공작부서들은 후속 전술안을 치밀하게 준비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이 전술안은 굳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감정이 크게 흔들린 오익제는 처와 딸을 만날 볼 생각이 앞서서 공작원이 던진 미끼를 덥석 물었습니다. 오익제 랍치공작의 지휘본부인 평양시 의암초대소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부장 : 뭐야! 회의중인 거 안 보여.

직원1 : 죄송합니다. 급한 정보가 들어와서.....

부장 : 그래? 들어오라.

직원1 : 오익제가 가족을 만나겠다고 했답니다.



대남 공작부서 책임자들은 하던 회의를 중단하고 긴급하게 오익제 문제를 토론했습니다. 토론의 핵심은 랍치의혹을 피해 의거입북으로 위장하기 위해서는 오익제가 중국으로 오는 과정이 깨끗해야 한다는 것이였습니다. 즉 가족을 만나러 간다는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해야만이 오익제가 자발적으로 중국으로 와서 의거입북을 했다고 주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작전은 통전부와 대외련락부가 실행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오익제를 중국까지 유인하는임무를 맡은 대외련락부는 자기의 공작선을 로출시키는 한이 있어도 오익제 공작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또한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는 외부 공작선을 활용하는게 적절하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이에 따라 그동안 대외련락부가 관리하고 있던 미국의 로스안젤스(LA) 전금관광려행사 대표 김충자를 남조선으로 파견해 오익제와 접촉하게 했습니다. 김충자는 인도적 차원에서 북측이 가족을 만나게 해준다는 것과, 북남이 대치된 상황이기 때문에 은밀하게 움직여야 가족들을 만날 수 있다며 오익제를 북경으로 유인했습니다. 오익제는 안해와 딸을 만날 수 있다는 꿈에 부풀어 김충자의 말을 충실하게 따랐습니다.



한편 안경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국장을 책임자로 둔 통전부의 ‘오익제 랍치공작 실무단’은 중국 북경에서 김충자가 오익제를 데려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오익제가 북경에 도착했고 김충자는 미리 약속한 장소로 오익제를 안내했습니다.



오익제 : 아니 김선생 제 처와 딸은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이 분들은 누구입니까?



김충자 : 무슨 사정이 있는 듯 하니 일단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 하시지요.



안경호 : 오익제 선생, 김충자 선생 말대로 우선 앉아서 이야기 하시지요. 제가 어떻게 된 일이지 말씀드리려고 이곳에 온 사람입니다.



안경호 : 제 소개부터 드리겠습니다. 저는 조국평화통일서기국 국장을 맡고 있는 안경호라고 합니다. 오선생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오익제 : 국장님, 제 처와 딸한테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왜 이곳에 못 나온 것입니까?



안경호 : 그게 좀 곤란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오선생 가족들이 중국까지 나오긴 했는데 북경까지는 오진 못했습니다. 현재 오선생의 가족들은 북중 분계선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익제 : 이곳까지 못 오는 리유라도 있는 겁니까?



안경호 : 그게.....북조선에도 안기부와 같은 보위부가 있습니다. 보위부에서는 월남자 가족들의 해외려행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저희 부서에서 최대한 노력을 했지만 단동까지만 려행이 허용돼서 오선생의 가족을 이 자리에 데려오지 못했습니다. 정말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단동으로 가시면 가족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걸 약속합니다.



오익제는 잠시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내친 걸음이였습니다. 또한 북측의 중요 직책에 있는 듯한 사람이 약속을 했기 때문에 단동까지 가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통전부는 이 순간에도 ‘의거월북’으로 위장하기 위한 공작을 빈틈없이 진행시켰습니다. 오익제에게 서울로 전화를 걸게 해서 중국에 없는 것처럼 위장한다거나, 단동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위장변신까지 하도록 했습니다.



드디어 오익제가 단동에 도착했습니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신의주가 마주 보이는 단동까지 왔다면 공작은 90%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하지만 공작원들은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오익제가 가족을 꼭 만나겠다는 일념이 없었다면 10시간 이상 걸리는 단동까지 올 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공작원들은 오익제에게 마지막 미끼를 던졌습니다. 오익제의 안해와 딸이 려권 문제 때문에 렬차에서 발이 묶여 있다고 한 것입니다. 오익제는 렬차가 서 있다는 단동역으로 갔습니다. 신의주 쪽으로 머리를 향하고 있는 렬차 한 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편지에서 흐느끼던 안해와 딸의 얼굴이 아른 거렸습니다. 작심한 듯 오익제가 렬차 계단에 올라섰습니다.



<추적, 사건과 진실, 남조선 천도교 교령 오익제 랍치 사건>, 여섯 번째 시간을 마칩니다.





<참고 및 인용자료>

- 전 북한 통일전선부 요원 11년만의 폭로(신동아, 200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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