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사건과 진실

  • 방송정보 | 종영방송
  • 출연진행:

공식 SNS

한 국가보위원의 로씨야 무역대표부 망명사건 3

추적 사건과 진실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19 21:04




1996년 2월 17일, 중앙당 청사 근처에서 한 방의 총소리가 울렸다. 총소리가 울린 곳은 로씨야 무역대표부 건물 안이였다. 김정일의 생일 직후에, 평양의 중심부에서 발생한 총성사건, 과연 이 총성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추적, 사건과 진실, 한 국가보위원의 로씨야 무역대표부 망명사건>



지난이야기 : 서재골의 보위부 초대소 경비병으로 일하던 김복동은, 예심원들이 정치범들에 대한 무자비한 고문을 하는 것을 보면서 신경이 예민해져 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순간적인 정신착란을 일으키며 예심원들을 권총으로 살해하는데....



만탄창한 권총 두 자루를 쥐고 서재골 초대소를 빠져나온 김복동은 찬 새벽공기를 힘껏 들이마시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는 맑은 정신으로 다시 한 번 생각을 가다듬었습니다. 총소리가 울린 이상 보위원들이 들이닥칠 것은 시간문제였고 지금 움직인다고 해도 평양 외곽으로 빠지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김복동은 평양 내에서 평양을 벗어날 궁리를 했습니다. 북조선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곳, 유일한 살길은 외국대사관으로 가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김복동은 자신이 알고 있는 보위부 정보를 가지고 협상하면, 비록 7명을 살해했지만 망명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북조선의 압력을 막을 수 있고, 북조선 정보에 관심이 있는 나라를 놓고 저울질 하다가 로씨야를 선택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김복동은 2월14일 새벽 4시경, 로씨야 무역대표부에 진입한 것입니다.



김복동의 판단은 국가보위부의 허를 찔렀습니다. 외곽이 아닌 평양 중심으로 이동해 추격을 따돌렸을 뿐만 아니라, 치외법권지역인 로씨야 무역대표부에 진입함으로써 이제 사건은 외교적인 문제로 불똥이 튀었습니다. 무장한 국가보위원들이 무역대표부를 포위한 가운데 평양 외무성은 로씨야 대사를 불러 김복동을 체포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줄 것을 끈질기게 요구했습니다. 이 시각 무역대표부 안에 있는 김복동은 로씨야 측에서 제공한 식사도 손을 대지 않은 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습니다.



로씨야 정보원 : 김 선생, 자 식사하세요.



김복동 : 제 요구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로씨야 정보원 : 그게 외교적인 문제라 쉽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대사가 북조선 외무성과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 곧 좋은 결과가 나올 겁니다. 여기는 로씨야 령토이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러니 이제 식사 좀 하시지요.



김복동 : 저는 조리된 음식은 먹지 않겠습니다. 통조림 음식을 주십시오.



로씨야 정보원 : 아니, 저희가 마취제나 수면제를 탔을 까봐 그러십니까? 하하하. 좋습니다. 김 선생 마음이 그렇다면 바꿔 오겠습니다.



통조림이 나오자 김복동은 로씨야 정보원에게 먼저 먹어 보게 한 후 30분이 지나자 통조림에 손을 댔습니다.



로씨야 정보원 : 그나저나 김 선생, 무슨 정보가 있는지 알아야 우리도 상부에 보고를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 김 선생이 가지고 있는 정보가 가치가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정보만 좋으면 김 선생 망명건을 우리가 상부에 강하게 요구할 수 있습니다.



로씨야 정보원들은 신경을 도사리며 긴장을 늦추지 않는 김복동을 위해 최대한의 성의를 보여주며 회유하였습니다. 김복동도 자신의 정보가 가치 있다는 것을 인정받으면 망명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그가 알고 있는 보위부에 관한 정보들을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한편 로씨야 당국은 김복동의 처리 문제 때문에 매우 곤혹스러워하고 있었습니다. 평양 외무성 측의 요구대로 문을 열어주자니 대국의 자존심도 있고, 국제사회의 비난도 감수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북측의 말대로 7명을 살해한 범죄자를 무조건 감싸기도 어려웠습니다. 로씨야 측은 북조선과 협상에 림하는 한편 김복동에게서 정보를 뽑아내는데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3일 뒤인 2월 17일 로씨야 무역대표부 직원 모두를 건물에서 철수시켰습니다. 이것은 김복동에 대한 처리를 북조선 측에 맡기겠다는 신호였습니다.



2월 17일 오후, 정적이 감도는 가운데 자동보총과 권총으로 무장한 보위원들이 무역대표부 안으로 진입했습니다. 복도를 살금살금 지나 김복동이 있는 방문 앞에 선 무장인원들은 총부리를 일제히 겨눴습니다.



두 명의 보위원이 먼저 문을 박차고 뛰어 들어 갔다가 그대로 굳어졌습니다. 량 손에 권총을 들고 자신들을 겨누고 있는 김복동의 눈과 정면으로 마주쳤기 때문입니다.



보위원1 : 이봐 복동이, 우리 말로 하자. 너희 어머니도 지금 밖에 와 있어.



보위원2 : 그래 복동아. 네가 정신적으로 충격에 빠져서 이번 일을 벌렸다는 걸 알고 있다. 아마 병원에 가서 치료 받으면 다 나아질 거야. 그러니까 그 총 내려놓고 우리랑 같이 가자.



김복동 : 그래. 너희들도 다 알고 있단 말이지. 내가 왜 그놈들을 죽였다고 생각해. 그 놈들은 사람들이 아니고 악마였어. 가장 악질적인 사람 죽이는 악마! 너희들도 똑같은 악마야. 알아?



보위원1 : 그래. 네가 말한 거 다 맞아. 이젠 다 끝났으니까 그 총 내려놔.



김복동 : 그래. 다 끝났어. 내가 너희 둘도 죽여 버리고 싶지만 같이 오랫동안 지낸 정을 생각해서 그냥 보내 줄테니까 밖으로 나가. 셋을 세겠어. 하나, 둘



보위원2 : 그래. 그래. 네 말대로 할게. 기다려.



보위원들이 나가고 문이 닫혔습니다. 김복동은 자신에게 닥쳐올 운명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살되면 다행이지만 사로잡힐 경우 꿈속에서도 자신을 괴롭혔던 고문을 받다가 개죽음을 당할 것이라는 것을. 김복동은 량손을 서서히 머리로 가져갔습니다. 보위부에 들어갔다며 좋아하던 어머니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이렇게 김복동은 짧은 인생을 마쳤습니다. 부정할 수 없는 것은 김복동은 사람을 살해한 범죄자라는 점입니다. 하지만 당성이 투철하고 충성심이 높았던 김복동을 살인자로 몰고 간 것은 보위부의 반인간적인 고문이였습니다. 김복동은 스스로의 목숨을 끊음으로써 사람을 죽인 죄 값을 치렀습니다. 그렇다면 정상적인 청년의 정신을 살해한 김정일 독재집단에게도 그 죄 값을 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추적, 사건과 진실, 한 국가보위원의 로씨야 무역대표부 망명사건>을 마칩니다.

전체 0

국민통일방송 후원하기

U-friends (Unification-Friends) 가 되어 주세요.

정기후원
일시후원
페이팔후원

후원계좌 : 국민은행 762301-04-185408 예금주 (사)통일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