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선 생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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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화 프랑카드
남조선 생활기
작성날짜
2012-06-28 18:31
부산에서 오래 만에 하나원 동기 영애가 올라왔다. 저번에는 KTX급행렬차를 타고 왔었는데 오늘은 남자친구랑 함께 자가용차를 척 타고 왔다.
몇 달 전부터 여기 남조선 청년과 사귄다는 말을 들었었는데 오늘 같이 올라와서 정말 반가웠다. 영애의 남친은 키도 크고 잘 생겼다. 예쁘장한 영애랑 딱 어울리는 게 정말 남남북녀를 실감하는 것 같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저녁식사 하러 가기 위해 차에 타려는데, 영애남친이 앞장서더니 차문을 척 열어준다.
갑작스런 상황에 어쩔바를 몰라하는데, 영애는 익숙됐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차안으로 휙~ 들어갔다. 주춤거리다 영애 뒤를 따라 들어가 앉으니 차문까지 철컥 닫아주기까지~~
정임; 어머머머~ 웬일이야?! 신기해 어쩔줄 몰라하는 날 보고 영애는 희뜩해서 웃기만 한다.
영애; 나도 첨엔 얼마나 어색했는지 아니? 이젠 뭐 별일두 아니야, 알구 보니 남한 사람들은 여자들한테 다 그렇게 친절하데~
정말, 내 아직 반생도 못살았지만 세상 오래살구 볼 판이다. 어떻게 여자가 남자에게 그런 대접을 받는 일이? 가끔 티비 드라마에서 그런 장면이 나오면 영화니까 그런 줄만 알았는데, 실제로 당하구 보니 못 먹을 걸 먹은 것처럼 불편했다.
암튼 우리는 랭면집으로 향했다. 영애도 나도 국수를 좋아한다니 그의 남친이 사주겠다며 랭면집으로 차를 몰았다.
저녁 한강바람이 참 시원하다. 오늘은 퇴근시간인데두, 별루 길이 안 막힌다. 차를 타면 항상 느끼는 바이지만 오늘따라 쭉 뻗은 강변도로가 기가 막히게 기분을 띄워주었다. 미끄럼을 타는 듯 굴러가는 차창 밖으로 또 한번 대한민국에 사는 행복을 만끽해보았다.
한강변을 벗어나 주택가로 차가 핸들을 돌렸다. 높은 아파트 건물들이 줄지어 늘어선 번화가를 한창 달리고 있는데 저 멀리 한 아파트 벽에 커다란 프랑카드가 늘어져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이런~ 보기만 해도 무서운 글발이였다.
“누구를 위한 교통정책인가, 주민 고통외면하고 백년된 도로 막는 주택공사는 자폭하라!’ 그 밑에는 폭탄 터지는 그림까지 붙어있다.
정임; 와! 영애야 여긴 참 대단한 나라다, 저런 프랑카드도 버젓이 내 걸리고? 저 폭탄그림만 봐도 소름이 오싹하구나야!
영애와 둘이서 프랑카드를 보고 수군대자 계속 웃기만 하던 영애 남친이 모처럼 한마디 했다.
영애남친 ; 여기선 조금만 자기가 손해 본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이 저렇게 난리를 쳐요. 조금 참을 수도 있는데 좀 너무한 거 같아요.
순간 표정이 굳어졌다.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어디 하소연 하나 할 데 없는 북에서의 생활이 떠올랐다.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길거리에서 장사를 하다 보안원한테 걸려 물건을 모조리 빼앗겨도 항의 한 번 하지 못하고 울기만 했었다.
영애 마음도 마찬가지였을까?
영애 ; 와, 진짜 여긴 백성들이 왕이야, 조선엔 어딜 가나 김정일 만세나 같은 구호들만 있지 아마 저런게 하나 걸렸다간 온 나라가 발칵 뒤집어졌을 거야, 놈 잡는다구, 챠, 더 말해 뭘 하겠니,
영애의 말처럼 여기는 백성이 왕이다. 인민들이 나라의 주인이다.
프랑카드를 보며 사람들이 너무 자기 리익을 지키는 데만 열을 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긴해도 고향 땅에도 저런 날이 한번쯤은 왔음 싶다. 정당한 리유 없이 보안원한테 물건을 빼앗기면 당당히 맛서 싸워서 되찾을 수 있는 그런 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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