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위한 력사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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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청소년을 위한 력사강좌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07 01:22




안녕하세요. <청소년을 위한 력사 강좌>의 장성무입니다. 오늘은 제6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유엔은 조선림시정부 수립을 위해 북과 남의 총선거를 제안했으나 당시 북조선을 장악하고 있던 쏘련은 이를 거부합니다. 이 시기 남조선에서도 통일정부 수립이 어렵다는 여론이 확산되여 갔습니다. 결국 유엔은 ‘감시가 가능한 남조선만의 총선거 실시’를 결정하고 1948년 5월 10일, 남조선만의 선거가 치러집니다. 이 선거를 북조선 당국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을까요?



‘미제는 1948년 5월 10일 남조선에서 살벌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단독 선거를 감행하였으며 그 결과를 날조하여 8월 15일에는 리승만 괴뢰정권을 조작하였다. 이로써 미제는 남조선에서 신식민주의적 통치를 위한 정치적 도구를 마련하였으며 조선은 영구 분렬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고등중학교 6학년 교과서는 이렇듯 ‘5.10 단독선거와 남조선의 정부 수립’을 ‘미제에 의한 날조와 조작, 조선의 영구분렬 책동’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것이 사실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남조선에서의 총선거는 쏘련과 김일성에 의해 공산주의체제로 착실히 준비되고 있던 북조선과는 달리, 남조선 인민들의 신분과 재산에 차별 없이, 다른 사람의 감시 없이 자신이 직접 선거에 참여한 최초의 민주주의 선거로 평가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 시기 남조선에서는 단독정부 수립에 대한 주장이 나오면서 새로운 론쟁이 시작됩니다. 단독정부 수립에는 리승만과 한국민주당이 적극 나섰습니다. 이들은 쏘련과 미국의 갈등이 깊어간다는 점, 38도선 북쪽이 이미 공산주의 체제로 들어섰다는 점을 리유로 ‘우선 38도선 남쪽에서 총선거를 실시해 정부를 세운 뒤, 북쪽과의 통일을 추진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김구과 김규식이 주도하는 민족자주련맹은 북과 남 전체의 총선거를 주장하며 1948년 4월 평양에서 열린 ‘전조선 제정당, 사회단체련석회의’에 참석합니다. 회의에선 쏘련과 미국군의 철수, 북과 남의 불가침, 림시정부 수립과 전국 총선거에 의한 통일국가 수립 등을 합의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38도선 북쪽에서 공산주의 혁명을 먼저 수행한 후 남쪽까지 확대한다는 쏘련과 김일성의 의도를 전혀 몰랐습니다. 때문에 김구와 김규식 등은 쏘련과 김일성에 의해 리용만 당한 채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남조선에선 1948년 5월 10일, 748만여 명의 인민이 투표에 참여한 총선거가 실시되고 그 결과 209명의 국회의원이 선출됩니다. 이렇게 뽑힌 국회의원들에 의해 5월 31일 국회가 소집되고 7월 17일 헌법이 공포됩니다. 이어서 국회는 리승만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하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합니다. 조선반도 남쪽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길을 걷는 대한민국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와는 달리 조선반도 북쪽은 1948년 4월 29일, 사실상의 정부 역할을 수행하던 ‘북조선인민위원회’에서 림시헌법 초안이 통과되면서 본격적인 공산주의 사회로 들어서게 됩니다. 이로써 조선은 이후 60년 동안 두 나라로 갈라지는 분단의 아픔을 겪게 되고 서로 다른 체제 하에서 대결과 반목을 계속하게 됩니다.



<청소년을 위한 력사 강좌> 제6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이 시간에는 제7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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