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깜빠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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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사회주의 그루빠와 인권 문제

인권 깜빠니아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07 01:24




안녕하십니까? 자유조선방송의 리유정입니다. 오늘 인권깜빠니아 주제는 ‘비사회주의 그루빠와 인권문제’입니다.



북조선 당국이 인민들을 적극 통제하기 위한 수단 중의 하나가 비사회주의 그루빠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비사회주의 그루빠는 ‘사회주의를 좀먹는 온갖 비사회주의적인 행위들을 적발해내고 처벌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그루빠가 생겨나게 됐는지 그 유래부터 살펴보겠습니다.



1970년대 초만 하여도 북조선에서는 잘살고 못사는 사람간의 차이가 거의 없었습니다. 간부라도 인민들과 생활수준이 거의 비슷했기 때문에 돈에 대한 인민들의 집착은 별로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1989년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계기로 북조선 인민들은 외화에 눈을 뜨게 되었고 저마다 돈을 벌기 위한 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한때는 외화벌이바람에 전국이 휘둘러진 때도 있었을 정도로 외화에 대한 집착은 더 강해져만 갔습니다. 한 마디로 인민들이 돈 맛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돈 맛을 알게 된 데는 김정일이 부추긴 면도 있습니다. 례컨대 1972년 김일성의 생일을 계기로 시작된 김정일의 선물놀음이 좋은 사례입니다. 간부들은 외국에서 들여다 선물로 준 천연색TV나 랭장고, 록음기 등 일반 인민들은 꿈에서도 가질 수 없는 물건들을 명절 때마다 받았습니다. 간부들의 생활은 꽃펴난 반면 죽도록 일만 하는 인민들의 생활은 나날이 쪼들려만 갔습니다. 더구나 평양시를 비롯한 전국 도시들 곳곳에 외화상점들이 생겨나면서부터 돈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간의 차이가 더욱 실감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인민들은 돈만 많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고, 어떤 방법으로라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한 집착을 가지게 되였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북조선 당국은 사회주의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만든 것이 당시 사회 안전부 ‘6.4 그루빠’였습니다. 이 6.4그루빠가 비사회주의 그루빠의 시초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고난의 행군에 들어서게 된 북조선은 경제를 회복시켜 인민들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대신 더 강력한 통제로 해결하려 했습니다. 이때부터 시작된 비사회주의 그루빠는 오늘에 와서 당, 행정, 법 일꾼들을 포함한 더 강력한 비사회주의 그루빠로 탈바꿈해 인민들을 통제하기 위한 강력한 수단으로 계속 이용되고 있습니다.



이들이 검열한다는 비사회주의 행위라는 것을 보면 인민들이 돈을 버는 모든 행위가 다 포함됩니다. 그야말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입니다. 이러다보니 이 기간 동안 장사도 하기 힘들고 먹고 살기가 더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억울한 사람들이 시범껨에 걸려 공개총살을 당하기도 합니다. 비사회주의 그루빠 총화가 한번 끝나고 나면 수많은 사람들이 잡혀가거나 다른 산골지방으로 추방되면서 공포분위기가 한참 동안 감돌기 마련입니다.



지금도 북조선 인민들은 비사회주의 그루빠가 진행하는 검열놀음 때문에, 행동을 감시당하고 또 처벌을 받고 있습니다. 북조선 당국은 오로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벌리는 모든 검열활동을 중단하고, 인민들의 인권을 탄압하는 비사회주의 그루빠를 즉시 해체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남조선의 북한인권기록보존소와 자유조선방송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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