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사건과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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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호위부대원은 왜 김정일에게 총을 겨누었나? 4

추적 사건과 진실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19 21:05




1994년 김일성의 죽음이 확인된 순간, 그의 경호를 맡았던 호위총국 1국은 철저한 감시를 받았다. 그로부터 얼마 뒤, 호위총국 1국의 고급군관 한 명이 김정일을 저격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추적, 사건과 진실, 김일성 호위부대원은 왜 김정일에게 총을 겨누었나?>



지난이야기 : 김정일은 북남수뇌회담으로 통일 분위기가 고조되자 이것이 자신의 권력약화로 이어질 것을 우려했습니다. 이 때문에 ‘통일’보다 ‘사회주의가 더 중요하다’면서 측근들을 단속했습니다. 한편 묘향산에서 경제일군들과 회의를 하던 김일성은 배급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말에 불같이 화를 내는데.......



예상치 못한 실태에 경악한 김일성은, 더는 아무 말도 잇지 못했습니다. 그 상황에서 더 놀란 사람들은 협의회 참가자들이었습니다. 국가주석이, 인민의 어버이로 불리는 김일성이 이미 3개월 전부터 배급을 중단한 사실을 모르다니. 사람들은 그 순간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허위보고와 과장된 기만자료로 김일성의 눈과 귀를 막아온 김정일을 생각했습니다.



기록영화 ‘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를 보면 표정이 굳어 있는 김일성에게 경제담당 부총리인 김복신이 무엇인가 열심히 설명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실 그것은 철도상에게 인민들에 대한 식량배급이 중단됐다는 말을 듣고 침통해하는 김일성의 심사를 풀어주기 위해 김복신이 4·15 선물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장면입니다.



김복신 : 수령님,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7월말까지는 두메산골 학생들에게도 선물교복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김일성 : 그래그래. 김복신이 그 말에 내 기분도 좀 풀리는 것 같구먼. 피곤 해서 그러는데 좀 쉬었다 하자.



이 교복은 원래 4월15일에 즈음하여 온 나라 학생들에게 공급하게 돼 있는 것이었지만 외화부족으로 6월까지도 실행이 안 돼 김일성이 자꾸 재촉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러나 김복신의 말도 김일성의 기분을 다 풀어주지는 못했습니다. 김일성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자기 방으로 돌아간 즉시 김정일을 찾았습니다. 평소처럼 극진한 존경의 태도로 전화를 받는 김정일에게 김일성은 밀쳐내는 것 같은 힘으로 버럭 소리를 질렀습니다.



김일성 : 주민들에게 배급을 주지 못한다는 게 사실이야!



김정일 : 수령님, 배급문제 같은 것은 신경 쓰실 필요가 없습니다. 일군들이 알아서 하고 있으니 심려하지 마십시오.



김일성 : 이러고저러고 할 것 없고 배급을 주지 못하는 게 사실인가?



김정일 : 그게 책임일군들이 자기 맡은 사업을 책임적으로 하지 못하면서 일부 지역에서 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너무 심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인차 해결될 겁니다.



김일성 : 내가 인민들에게 이밥에 고깃국을 먹이는 게 소원이라고 말한 것이 언젠데 이제 와선 쌀도 못 준다는 거야. 그리고 그걸 나한테 왜 숨겨? 그런 식으로 일하겠으면 최고사령관이고 조직비서고 싹 그만두라!



김일성과 김정일 사이의 이 통화는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가 됐습니다. 훗날 김정일은 이 대화내용을 루설했다는 죄로 호위사령부 호위총국 1국 소속의 고급군관 몇 명을 적선에 몰아 총살했습니다.



이 수기를 보면서 김일성이 배급이 끊긴 것을 모를 정도로 북조선 내부 실정에 어두웠다는 게 믿기지 않는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1994년이면 김일성은 아무런 권력도 없는 말 그대로 상징적인 존재에 불과한 상태였습니다. 물론 김일성을 이렇게 만든 것이 김정일이고 어떻게 보면 권력승계 과정에서 생기는 필연적인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김일성은 김정일을 후계자로 지목한 이후 차근차근 자신의 권력을 넘겨주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김정일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고 빠르게 자신의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움직였습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김일성에 대한 보고체계를 흔들어 놓는 것이였습니다. 우선 김정일은 김일성에게 올라가는 보고는 반드시 자신을 거쳐서 올라가는 체계를 세웠습니다. 또한 김일성의 시력이 나쁘다는 리유로 특별한 경우 외에는 문서보고를 금지시켰습니다. 그 대신에 보고 내용을 록음하여 김일성이 가장 편한 자세에서 보고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겉으로는 아버지에 대한 효심을 보여주는 것이였지만 속심은 김일성을 속이기 위한 것이였습니다. 자연히 보고의 횟수와 정보의 량이 줄어들었습니다. 이렇게 정보를 장악한 김정일은 권력의 중심으로 성큼성큼 들어갔고 그만큼 김일성은 통치부문에서나 정보면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1980년 중반에 들어서자 김정일은 군대통수권을 제외하고 당과 군대, 정무원을 실질적으로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김정일의 말 한마디에 간부들의 얼굴이 흙빛이 되는 상태까지 되었습니다. 1991년 김일성이 마지막으로 쥐고 있던 최고사령관직을 넘겨주자 김정일은 거칠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김일성이 김정일의 눈치를 보는 지경에까지 이릅니다. 이 같은 상태였기 때문에 김일성이 배급이 끊긴 것을 모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김정일의 우상화 선전과 아첨으로 환상에 빠져 살던 김일성은 자신이 처한 현실에 직접 마주하자 만감이 교차했을 것입니다. 특히 이밥에 고깃국을 먹는 것을 사회주의 지상락원이라고 선전했던 김일성은, 자신이 선택한 후계자가 그것을 망치고 있는 것을 알고서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 다음 시간을 기대해 주십시오.



<추적, 사건과 진실, 김일성 호위부대원은 왜 김정일에게 총을 겨누었나?>, 네 번째 시간이었습니다.



<참고 및 인용자료>

1. ‘김일성 사망 직전 父子암투 120시간’, 신동아(p142 ~ 164), 2005.08.01

2. 김정일 리포트, 손광주 지음, 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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