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사건과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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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로동당 국제담당비서 황장엽 망명 사건 4

추적 사건과 진실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19 21:05




김정일과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황장엽 망명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김일성 서기실 리론서기이자 김정일의 스승이였던 황장엽, 그는 왜 가족들과 벗들의 희생을 무릅쓰고 망명을 선택한 것일까요? <추적, 사건과 진실, 조선로동당 국제담당비서 황장엽 망명 사건>



지난이야기 : 황장엽이 머물고 있는 북경의 남조선총령사관은, 김정일의 지시를 받고 파견된 특수요원들과 이들의 진입을 막으려는 중국 공안이 대치하면서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습니다. 한편 황장엽의 망명 문제로 중국을 상대로 북과 남의 치렬한 외교 전쟁이 벌어지는데.....



북경에서 황장엽의 망명 문제를 놓고 북과 남이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던 그 시각, 북조선 내부 사정은 어땠을까요? 특히 혁명의 수도인 평양 시민들의 표정이 궁금하지 않습니까? 앞에서 이야기 했지만 김정일 독재집단이 황장엽 망명 사건에 대해 공식적으로 립장을 표명한 것은 황장엽이 망명한 다음날인 2월 13일이였습니다. 외무성대변인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남조선의 랍치’라고 주장했는데, 그로부터 4일 뒤인 17일에는 ‘변절자야 갈 테면 가라’는 립장을 다시 밝혔습니다. 김정일 독재집단이 침묵을 지켰던 이 4일 동안 세계의 인민들은 매일매일 신문과 방송을 통해 황장엽 망명 소식을 접하고 있었지만 북조선 인민들은 입소문으로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황장엽이 북경에서 망명했다는 소식은 평양의 권력층에서부터 흘러나왔습니다. 이 소문은 급속이 퍼져, 3일이 지난 뒤부터는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게 되였습니다. 체제를 수호하는 전위부대라고 할 수 있는 보위부와 안전부에 근무하던 사람들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그만큼 황장엽 망명사건은 충격이 컸습니다. 잠시 1997년 2월의 사회 안전부 청사로 가서 안전원들의 대화를 들어보겠습니다.



안전원 1 : 야, 들었어. 황장엽이 망명했대?



안전원 2 : 그러게 말이야, 아니 중앙당 비서까지 하던 사람이 뭐가 모자라서 망명했을까?



안전원 1 : 아, 그거야 지금 중앙당 비서구 뭐구 다 잡아다 총살하는 판인데, 아무래도 찜찜했겠지, 서관히도 봐, 중앙당비서라도 뭐 용서가 되는게 있어? 아마 장군님 눈 밖에 난 걸 자기도 알았겠지,..”



안전원 2 : 아니 그렇다고 자기 가족들까지 다 내팽개치고 달아난단 말이야?



안전원 1 : 무슨 급박한 일이 있은 게 아닐까? 그나저나 이제 또 피바람이 불겠구먼,



안전원 2 : 그러게 말이야, 이제 또 숱한 사람들이 그 여독으로 청산되겠구먼, 으∼, 떨린다, 떨려.



황장엽이 꾸려놓은 ‘주체과학원’은 이미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주체과학원은 황장엽이 ‘주체사상 대외선전기지로 창설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의하여 김정일로부터 비준을 받아 만든 곳입니다. 황장엽은 1980년 8월에 박사원생을 모집했는데 이렇게 꾸려진 인재들은 황장엽의 지도하에 주체철학 전문가로 성장되였습니다. 천생이 학자인 황장엽은 회고록에서 “그들과 만나고 함께 공부를 하는 것은 큰 기쁨이였고 그들 역시 나를 너무 따라서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곳이였기 때문에 황장엽의 망명 사실이 알려지자 주체과학원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습니다. 국가보위부에서는 황장엽의 주변 사람들에 대한 철저한 감시에 들어갔고 그들의 가족들은 물론이고 그들과 접촉한 사람들 역시 조사를 하는 등 피바람을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북조선의 대표적인 인테리였던 황장엽의 망명을 당시 평양의 인테리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었을까요. 북조선 인테리들은 어떤 사건이 있을 때마다 늘 숙청의 대상이 되여 왔기 때문에 당시 평양의 인테리들은 황장엽의 망명이 저들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어느 인테리 가정의 모습입니다.



남1 : 황장엽이 중앙당 국제비서이니 국제부는 폭탄 맞은 집 같겠구먼. 그나저나 이제 또 인테리의 나약성이니 뭐니 하면서 우리들만 달달 볶게 생겼어, 이번 피바람을 어떻게 피해가나...



녀1 : 어휴, 정말 걱정이에요. 근데 여보 왜 황장엽이 갑자기 망명했을까요? 참, 리해할 수가 없네, 수령님이 안 계시니까 별의 별 일이 다 생기는 같아요?



남1 : 답답한 사람, 그것도 몰라. 장군님은 수령님과 많이 다르시잖아? 무자비하고 용서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니까. 그러기에 서관히고 뭐고 다 죽여 버리잖아.



녀1 : 그러니까요. 그런데 서관히가 간첩이라는게 말이나 돼요? 서관히도 참 억울하겠어요. 장군님이 하라는 대로 기껏 충성했더니만 마지막에는 간첩이라는 루명이나 쓰고 그것도 총에 맞아 죽었잖아요.



남1 : 그러니 누군들 달아나지 않겠어, 맹탕 여기 있다가 죽을 필요 있어? 그러니까 황장엽이도 미리 손써서 망명이라는 선택을 했을지 누가 알어?



녀1 : 그런데 여보, 황장엽이까지 망명하는 걸 보면 이놈의 사회도 다 되긴 된 모양이 에요.



남1 : 인민들이 이렇게 계속 굶어 죽어나가는 판인 데 우리식 사회주의도 끝났다고 봐야지. 덜렁거리는 문짝이 3년 간다고, 이제는 3년이 넘었으니깐 문짝이 떨어질 때가 되긴 된 모양이야.



녀1 : 정말 빨리 좀 어떻게 됐으면 좋겠어요. 갈수록 사는 건 어려워지는데 통제는 세지고, 이거야 한시도 발편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



남1 : 이런 세상에서는 배운게 죄지. 아무것도 모르는 편이 오히려 편할거야.



녀1 : 황장엽도 인민들이 굶어 죽어 나가는 것을 보면서 김정일에게 충성을 웨치는게 고통스러웠을 거예요. 량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게 어디 할 짓이에요.



남1 : 죽지 못해 그러는 거지. 그나저나 황장엽은 중국에서 어디로 망명한다는 거야?”



녀1 : 아마 미국으로 가지 않을까요?”



남1 : 중국이야 우리나라와 친한 사인데 그걸 허락하겠어? 아무래도 황장엽이 타산을 잘못 한 것 같아



녀1 : 아휴, 지금 우리가 그걸 걱정할 때에요? 당신 걱정부터 하셔야지요.



남1: 그러게, 이제부터 또 불어 닥칠 그 놈의 여독청산놀음,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 으 ∼∼”



조선에서 혁명성이 가장 나약하다고 선전하는 인테리, 그 인테리를 대표하는 황장엽이 목숨을 걸고 망명을 선택했습니다. 온갖 숙청속에서도 로동당의 핵심 간부로 자리를 지켜왔고 북조선의 최고 대학인 김일성종합대학의 총장을 14년 동안 해왔던 황장엽의 망명은 북조선의 지식인들에게도 큰 충격이였습니다. 북조선 인민들이 온갖 추측을 하며 자신에게 닥칠지도 모를 숙청의 바람을 걱정하고 있을 때 황장엽은 어떤 상태에 있었을까요.



<추적, 사건과 진실, 조선로동당 국제담당비서 황장엽 망명 사건>, 네 번째 시간이였습니다.



<참고 및 인용자료>

- 황장엽 회고록, 시대정신

- 중, 전례없어 망설일 가능성도, 조선일보, 1997-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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