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일남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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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부 김정일 왕족의 특각

리일남 수기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07 01:23




김정일 왕족은 관저만 호화로운 것이 아니라 명승지란 명승지에는 거의 모두 특각을 두고 있다. 전국 각지에 특각이 있는데, 그 실상은 나도 모른다. 내가 가본 곳 정도만 알고 있다.



해설 : 13부에서 말한 적이 있지만 김정일은 ‘초대소’나 ‘특각’으로 불리는 호화스러운 개인별장을 전국에 가지고 있다. 외부정보기관에서는 24곳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이중 일부는 위성사진으로 공개된 바 있다. 북조선은 지난 10여 년간 남조선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아 왔는데, 이 시기에도 김정일은 개인별장을 관리하고 증축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602호 원산특각과 신천온천 특각은 직접 가본 곳이다. 신천특각 안에는 온천물로 된 길이 1백m가 넘는 수영장이 있다. 나도 김정일과 정남이를 따라 수영해봤는데 규모가 엄청났다.

특이한 것은 김일성 특각과 김정일 특각이 각각 따로 있다는 점이다. 같은 지방에도 특각이 따로따로 있다. 아버지 특각에는 아들이 안 들어간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내가 가장 가보고 싶어 한 특각은 72호 특각이다. 함흥을 좀 지난 곳의 바닷가 벼랑꼭대기에 세워져 있다는 특각인데, 김정일과 정남이, 남옥이가 찍은 사진으로만 구경했다. 갔다 온 사람들이 대단한 경치라고 말했다.



원산에도 역시 특각이 있다. 원산특각은 내게도 기억이 있는 곳이다. 내가 만경대혁명학원에 다니던 시절에 공병여단이 그것을 지었는데, 당시 우리 중대가 원산 송도원에 야영훈련을 갔기 때문이다. 원산 송도원 야영소는 북조선에서 제일 좋은 야영소였다. 당시 특각 건설장의 명칭이 ‘602호 건설장’이었다. 우리 중대가 602호 건설장에 위문공연을 갔었다. 내가 가서 사회를 보았으니 기억이 안 날 수 없다.



원산의 602호 특각은 김정일과 그 가족만 가는 특각이다. 김일성을 위한 특각은 따로 있다.

원산특각은 6층인가 7층짜리의 호텔식 건물이 한 동 있고, 거기서 2백m쯤 떨어진 바닷가 백사장에 아빠트식으로 지어진 건물이 또 있다. 각각 분위기가 달랐다. 특각의 주위에는 울타리가 쳐져 있다. 특각은 부지가 넓어 그 안에서 밧데리차를 타고 다닌다.



특각은 울타리로 막아서 호위사령부 예하 중대가 지킨다. 지도자 특각이니 2호위부 소속인데, 복장은 조선인민경비대 복장을 하고 있다. 인민경비대는 국경을 지키는 부대인데, 견장이 초록색이라 일반 부대와 구분된다. 일반 인민이 봤을 때 경비대 건물로 인식하게 하려는 위장술이다.



79년 여름 원산특각으로 김정일과 가족들이 피서를 갔다. 바닷가를 산책하러 갔는데 김정일은 양손에 정남이와 남옥이의 손을 잡고 바닷가로 산보를 나갔다. 김정일은 내 동생 남옥이를 딸처럼 예뻐했다. 드넓은 백사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곳에는 선착장이 있었는데 김정일의 배가 묶여 있는 전용선착장이였다. 특수제조한 배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련락부 산하 원산련락소 소속이다. 때문에 사람들은 초고속정으로 알고 있지만 김정일이 낚시 등 유람할 때나 강원도 내 부대 등을 시찰할 때 사용하는 호화 요트다. 련락소 소장이 로농적위대처럼 국방색 천으로 된 옷을 입고 배 안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인사했다.



소장 :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 어서 오십시오.

김정일 : 음. 그래....... 정남아. 남옥아 빠빠랑 재미있는 구경 가자. 먼저 정남이부터 올려주고, 자 남옥이도 빠빠 손 꽉 잡고 천천히 올라가라. 옳지 옳지, 됐다. 일남이도 빨리 타라.



일남 : 네, 빠빠.



김정일 자, 그럼 가볼까. 출발하라!



아이들 : 출발하라! 하하하, 호호호



배를 타고 10분 정도 가자 원산련락소 소속 전투원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잠수 시범을 보여줬다. 그들은 바다 속에 들어가서 해삼, 멍게, 전복을 따다가 우리에게 바쳤다. 그때 김정일은 정남이와 남옥이의 손목을 잡고 있었고, 나는 그 옆에 인민복을 입고 서 있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평범한 수행원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때의 잠수부 중 전충남, 리상규가 후일 남조선의 큰 항구도시 부산 다대포로 남파됐다가 체포된다. 그들은 김정일이 아들과 딸을 데리고 원산에 왔다고 얘기했다. 그래서 김정일에게 알려지지 않은 딸이 또 있다는 말이 남조선에서 퍼졌는데, 당시 김정일 옆에 서 있던 소녀는 딸이 아니고 내 동생 남옥이었다.



련락부 전투원들은 백사장에서 격술시범도 보여주었다. 김정일은 원산련락소장에게 시범을 지시하고, 남옥이와 정남이 손목을 잡고 백사장을 갔다. 나는 그 뒤를 따라갔다. 전투원들이 격술, 벽돌 깨는 시범을 보였다. 전충남, 리상규는 그 격술시범에도 참여했다고 한다.

당시 원산에는 정남이 고모 식구들도 같이 갔었다. 고모 김경희와 고모부 장성택, 그리고 그들 사이의 딸 장금송도 있었다.



해설 : 장금송은 2006년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중 사망했다. 당시 29살이였는데 결혼을 약속한 남자를 집안에서 출신성분이 나쁘다며 반대하자 수면제를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 장성택도 출신성분에 문제가 있어서 김일성이 결혼을 반대했다. 김일성은 김경희와 떼어놓기 위해 김일성종합대학에 다니고 있던 장성택을 원산의 경제대학으로 쫒아버린 적이 있는데, 김경희의 애정공세로 결국 결혼에 성공했다.



남조선 사람들 중에서 평양에서 원산을 어떻게 갔느냐고 묻는 경우가 있다. ‘도로 사정이 나쁘다던데, 아무리 지도자라 한들 나쁜 도로 때문에 어려움은 없었느냐’는 질문이다. 남조선 기준으로 말한다면 도로 사정은 나쁘다. 그러나 차가 못 다닐 정도는 아니다. 보수가 제대로 안 되어 울퉁불퉁 했지만, 도로란 원래 그런 거려니 생각했기 때문에 큰 불편은 없었다.



우리는 원산에 갈 때 ‘홈카’라고 하는 리동주택을 타고 갔다. 차를 집처럼 만든 것으로 당시는 남조선에서도 미국 잡지를 통해 구경만 하던 굉장히 큰 차였다. 차 안에는 화장실과 식당, 침실에 작은 회의실까지 있었다. 홈카에는 김정일과 이모, 정남이와 내가 탔는데, 수행원도 한두 명 탔다. 물론 벤즈나 리무진 등 승용차도 10여 대 따라갔다.



원산의 특각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아름다운 바닷가, 시설 좋은 별장에서의 생활은 문자 그대로 ‘아무 부러움 없는’ 지상 락원이었다. 조선 인민들은 특각의 존재 자체를 잘 모르고 있고, 열손가락에 드는 특권층만 사용한다는 게 마음에 걸리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특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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