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일남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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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의 출생

리일남 수기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07 01:23




그 남녀 한 쌍은 김정일의 오촌 당숙인 김선주와 전순옥이라는 영화배우였다. 김선주는 김정일의 할아버지인 김형직의 친동생 김형록의 막내아들이였다. ‘주’자 돌림은 김일성과 같은 항렬임을 말해준다. 김일성의 본명이 김성주, 동생은 영주, 사촌들은 원주, 창주, 선주다.

김선주는 김정일보다 나이도 대여섯 살 정도 많았는데 친구처럼 계속 붙어 다닌 모양이였다. 당시 김선주는 상좌로서 조선인민군 총정치부 산하 선전선동부 부부장이였다.



이모는 훗날 나에게 “김선주 그 사람은 망나니”라고 말했는데, 술 먹고 실수도 많이 한 모양이였다. 김선주의 짝인 전순옥은 68년에 나온 영화 <금강산처녀>의 주인공인데, 이모 친구로 역시 굉장한 미인이였다. 어쨌든 이모랑 김정일, 김선주와 전순옥이 바닷가에서 수영복을 입고 있는 사진, 차 안에서 술 마시는 사진 등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찍은 사진이 트렁크에 가득했다.



이모는 1970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공훈배우 칭호를 받는다. 영화에 출연은 안 했지만,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소속 배우라 과거의 공적으로 칭호를 받은 것이다. 당시 중앙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이였던 김정일의 입김이 작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해설 : 성혜림의 언니 성혜랑의 수기를 보면 성혜림이 김정일의 눈에 들면서 공훈배우가 됐다는 걸 알 수 있다. 성혜랑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성혜랑 : 그때까지 혜림이는 많은 영화 주연을 했지만 토대가 나쁘기 때문에 배우급수도 안 올려주고 당원도 시키지 않았다. 꼬투리만 잡으면 비판무대에 세웠다. 사람들은 성혜림과 최부실이 없으면 비판회가 성립이 안 될 것이라고들 말했다. 그러나 김정일이 관심을 돌리는 눈치가 보이자 혜림에게 ‘공훈배우’를 주고 입당을 시키고 외국 영화축전에 보내기도 했다.



어쨌든 이모는 또래 중 제일 먼저 공훈배우가 되였다. 60년대 조선 영화계를 주름잡았던 유명 여배우는 성혜림, 우인희, 김현숙이였다. 그 세 명 중 이모가 제일 먼저 공훈배우가 되였고, 1년 지나서 우인희와 김현숙이 공훈배우가 되였다.



이모는 김정일과 69년부터 본격적으로 동거에 들어갔다. 내가 알기로는 정남이를 낳고 나서도 한참 동안은 이모의 존재를 시아버지인 김일성도 몰랐던 것 같다. 김정일의 연애와 동거는 김일성에게 보고할 사안이었지만 아무도 보고하지 않은 모양이다.



김정일은 1968년부터 살살 연애를 하기 시작하다가 69년부터 동거에 들어갔고, 정남이를 임신한 70년에 중성동 관저에 들어갔다. 그 이듬해 정남이가 태어난다. 정남이가 71년 5월 10일 생인데, 계산해 보면 그런 추리가 가능해진다. 그러니까 중성동에 조그맣게 관저를 지어서 이모와 살림을 시작한 것이다.



정남이는 봉화진료소에서 ‘몰래’ 태여났다. 이 말은 어머니가 나에게 이야기한 것이니까 거의 확실하다. 김정일이 이모와 동거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김일성에게 비밀로 하는 판이니 아들 낳았다는 얘기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때의 일화가 있다. 당시 우리는 문화인 아파트 4층 8호에 살고 있었는데, 이모가 아들을 낳던 날 김정일이 우리 집에 왔다. 밑에서 자동차 경적 소리가 두 번 나면 어머니가 밑으로 뛰어 내려가기로 약속되여 있었다고 한다. 당시 우리 집에는 외할아버지도 계셨으니 김정일이 올라오기는 불편했을 것이다.



해설 : 리일남의 어머니 성혜랑은 자신의 수기에서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적고 있다.



성혜랑 : 나는 잠결에 수상쩍은 자동차 경적소리를 들었다. 벌떡 일어나 창턱으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우리 집은 4층에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덩치가 큰 시커먼 승용차가 바로 내 창 밑에 있는 것이 보였다.



김정일은 로씨야제 까만 볼가를 타고 왔다. 어머니가 차에 타니 김정일이 “이제 금방 혜림이 아들을 낳았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정일은 어머니를 태우고 봉화진료소에 갔는데 굉장히 좋아했다고 한다.



이모는 젖이 잘 안 나와 고생했다고 관저책임자 이수헌이 전했다. 이수헌은 나중에 김정일의 차안에서 부화를 하다가 쫓겨났는데, 그는 이모와 김정남이 살기위해 중성동에 관저를 만들면서부터 소좌 계급장을 달고 이모를 보살피기 시작했다.



이모가 젖이 잘 안 나오자 평양에서 튼튼한 유모를 골라 관저로 데려와서 정남이에게 젖을 먹였다고 한다.



해설 : 김정남은 김일성의 첫 손자였지만 세상에 내놓을 수 없었다. 당시 김정일은 계모 김성애와 후계자 자리를 놓고 권력투쟁을 벌리던 때라 유부녀였던 성혜림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꺼려했다. 이 때문에 김정남은 성혜림의 가족들에 의해서 비밀리에 키워진다. 다시 성혜랑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성혜랑 : 어머니는 정남이가 두 달이 되자 곧 지도자의 집에 들어가 아이를 도맡아 길렀다. 승용차 ‘질’의 옆 뒤 창은 청색 천으로 가려져서 밖에서도 들여다보이지 않고 안에서도 내다보이지 않는 차였다. 어머니가 아이를 그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다니실 때 이 불쌍하게 태여난 손자의 앞날이 어떻게 될 것인지 어머니의 마음은 언제나 어두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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