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선 생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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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박정희 대통령

남조선 생활기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2-10-04 20:14


추석이라 사람들 모두 부모님 계시는 고향 시골로 내려간다고 분주하다. 올해는 개천절까지 끼여서 5일이나 휴식한다. 어디 갈 데도 없는 사람에겐 명절이 무척 고달프다.



친구 집에 놀러 갈 수도 있지만 왠지 기분이 나질 않아 가고 싶지도 않고, 그냥 집에서만 혼자 뒹굴었다. 온 종일 티비 리모콘만 붙잡고 앉았다. 여긴 다행히 통로가 몇 십 개나 되니 이게 재미없으면 저거 보다 저거 재미없으면 또 다른걸 보다, 그렇게 해서 온 하루 후딱 지나간다.



명절이다보니 재미나는 프로그람들이 많이 나왔다. 희극같은 것이 나오면 혼자 웃고, 또 6.25전쟁 때 이북의 가족들과 헤여진 실향민들과 탈북인들이 나오는 프로를 보고는 같이 펑펑 울고, 참, 명절이 뭐이래?



문득 mbn통로를 돌렸는데, 재떨이가 휙 던져져 깨여지는 장면이 나왔다. 이게 뭔지 싶어 보니 옛날 박정희대통령이 한 일군에게 재떨이를 던지는 장면이였다. 프로 제목을 보니 "대통령의 그날"이였다.



여기 와서 박정희가 경제대통령이란 의외의 말을 들었던 터라 프로그람이 더욱 흥미진지하게 다가왔다.



효과;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고속도로, 한국 경제사에 큰 획이 된 경부고속도로 탄생에 얽힌 박정희 대통령의 그날, 1968년 2월 28일, 당시 공화당 의장이였던 김종필씨를 비롯한 여당 수뇌부가 박정희 대통령을 찾아왔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위한 휘발유 인상안 법안이 야당의 반대로 미루어야겠다는 김종필 당의장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 정희 대통령이 소리를 지르며 재떨이를 던졌다.



박정희는 측근조차 반대하는 고속도로 건설을 밀어부쳤다. 경제 발전에 사활을 걸었던 박정희는 고속도로 건설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결국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석유세를 인상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은 다음날인 29일 밤, 단 2분 만에 통과됐고, 이후 2년 넘게 공사를 해서 서울과 부산을 잇는 경부고속도로가 완성된다. 남조선 최초의 고속도로는 물류수송에서 혁신을 일으키며 경제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미래를 내다본 박정희의 안목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였다.



박정희의 꿈은 오직하나, 경제발전과 근대화를 해서 인민들이 가난에서 벗어나고, 부강한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였다.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새마을 운동”을 궐기하고 노래 가사까지 직접 만들어 온 나라를 혁신의 장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남조선이 오랜 가난에서 벗어나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외화가 없어서 서부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를 파견했고, 애젊은 청년들을 윁남전쟁터로 떠나보내야 했다. 결단을 내릴 때 박정희의 재떨이에는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비난이 쏟아졌다. 가난한 나라의 지도자가 감내해야 할 고통은 컸다. 박정희는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고 했다. 죽어서도 천덕꾸러기가 될 지언정, 나라의 경제발전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각오한다는, 한 나라 대통령의 소신 있는 담대한 말 한마디였다.포항제철, 울산 현대중공업, 구미선산 공업기지 등 경제적 기반이 우후죽순처럼 일떠섰고, 박정희는 남조선이 세계적인 경제대국이 될 수 있는 기반을 닦아 놓고 력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박정희가 죽은 지 30년이 지난 요즘, 그의 딸 박근혜가 대통령 후보로 나왔다. 상대방 후보들이 박근혜에게 아버지의 독재에 책임지라는 비난을 퍼붓고 있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남조선 사람들이 배가 불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정희가 독재를 했다고 하지만, 백성들을 굶주리지 않게 하고,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닦은 지도자다. 북조선에도 그런 지도자가 있었다면 고향 사람들의 삶은 지금처럼 비참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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