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사건과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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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사상의 숨겨진 진실, 다섯 번째

추적 사건과 진실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19 21:05




지난이야기 : 김일성은 1인 독재체제가 확립된 1958년부터 ‘주체’를 더욱 강조해 나갔습니다. 한편 흐루쑈브의 쓰딸린 비판으로 시작된 중국과 쏘련간의 리념론쟁이 1959년부터 본격적으로 불이 붙기 시작하는데......



김일성은 중국의 립장을 지지했지만 대외적으로는 중립을 지켰습니다.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쏘련의 원조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쏘련을 공개적으로 비판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김일성의 립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쏘련은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가 끝났다’면서 ‘공산주의적 민주주의의 확대와 수령에 대한 개인숭배 반대’를 주장했습니다. 계급독재와 수령독재를 앞세워 1인 독재체제를 확립한 김일성이, 스스로 자기의 지위를 약화시키는 쏘련의 립장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쏘련의 립장을 반대하는 방향에서 사업을 지시했습니다. 우선 자신의 연설문과 당의 주요 문건을 정리하는 중앙당 서기실의 리론서기들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를 내렸습니다.



부관 : 수상님, 서기실의 리론서기들이 다 모였습니다.



김일성 그래. 들어오라고 해.



서기들 수상님, 안녕하십니까?



김일성 그래 어서들 앉아. 다들 알고 있겠지만 지금 정세가 매우 복잡해. 우리가 대외적으로는 중립을 지키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쏘련의 수정주의를 반대하는 방향에서 모든 사업을 풀어가야 돼. 알겠어.



서기들 네, 수상동지



김일성 동무들이 정리하는 글은 곧 당의 립장이 되는 것이니까, 한 글자라도 실수가 있어서는 안 돼. 정신 바짝 차리고 어느 때보다도 신중하게 일을 처리 해 나가야 해.



서기들 알겠습니다.



날이 갈수록 중국과 쏘련간의 리념론쟁은 격화됐습니다. 이 론쟁을 지켜보면서 김일성은 ‘주체를 더욱 튼튼히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김일성은 두 나라의 대립을 리용하여 자신의 지위를 더욱 확고히 다지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천리마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치고 선전했으며, 정치적으로는 물론 경제와 문화 건설에서 자주적인 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한편 김일성의 ‘양다리 외교’는 더는 이어갈 수 없는 상황에 부닥쳤습니다. 1960년 모스끄바에서 81개 나라들의 공산당. 로동당 회의가 열렸습니다. 이 회의는 1개월 가까이 론쟁이 계속될 정도로 매우 치렬했습니다. 쏘련은 중국을 국제종파주의라고 비난했고, 중국은 쏘련을 맑스주의를 왜곡하는 ‘수정주의’라고 비판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쏘련공산당은 공산주의 운동의 기수로 여기는 것이 일반적이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들과 군소 정당들은 무조건 쏘련 공산당을 지지했습니다. 중국을 지지한 곳은 조선로동당, 윁남공산당 등 몇 개의 공산당밖에 없었습니다.



이 회의에서 핵심적인 주제는 맑스의 ‘과도기 리론을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하는 문제였습니다. 쏘련은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는 끝났고 따라서 점차 민주주의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중국은, ‘쏘련이 과도기기 끝났다고 주장한 결과 웽그리아를 비롯한 각국에서 반혁명이 일어났다’면서 ‘쏘련의 주장은 명백한 수정주의’라고 반박했습니다. 우에서 말했지만 쏘련의 로선에 동조할 수 없었던 김일성은 중국의 립장을 지지했습니다. 김일을 단장으로 한 조선로동당대표단은, ‘조선전쟁 때 수십만의 군대를 보내 싸워준 중국은 국제종파가 될 수 없다’면서 중국에 대한 지지토론을 했습니다.



쏘련공산당과 그를 지지하는 다른 국가들의 압력이 계속되는 가운데, 김일은 국제전화로 김일성에게 회의결과를 보고했습니다.



김일 : 수상님, 쏘련과 중국의 립장이 좁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윁남의 호지명 주석이 중재를 하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잘 안됐습니다.



김일성 화해를 할 것 같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김일 네. 그랬는데, 중국의 류소기 주석이 ‘쏘련이 우리를 짓밟을 수는 있어도 뼈다귀는 부러뜨리지는 못할 것’이다면서 거부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합의를 보지 못하고 이대로 회의가 깨질 것 같은데, 최종적으로 우리의 립장을 정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의견을 주십시오.



김일성 : 우리가 백두산에 다시 들어가 감자를 캐먹으면서 유격투쟁을 할지언정 쏘련의 대국주의적 압력에는 절대로 굴하지 마십시오. 이게 우리 당의 립장입니다!



김일성은 이 국제전화를 쏘련 교환수들이 관리하다는 점을 알고서, 자신의 말이 쏘련 공산당 측에 들어가도록 큰 소리로 또박또박 말했습니다.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조선로동당은 자신의 립장을 밝히기 위해 성명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는데, 중국과 쏘련은 회의가 깨지기 직전에 극적으로 타협을 했습니다. 하지만 겉으로만 타협했을 뿐 근본적인 립장에서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사회주의 두 대국이 격렬하게 리념론쟁을 벌리는 것에 충격을 받은 김일성은, 조선로동당만의 독자적인 지도로선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였습니다. 김일성은 천리마운동을 펼치면서 자신이 제기했던 ‘주체문제’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김일성이 제기한 문제들에 중앙당 서기실의 리론서기들이 리론적 방조를 하면서, 김일성의 주체로선이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주체문제’가 비교적 체계적으로 정리되기 시작하는데, 문건을 통해 밝혀지기 시작한 것은 1961년 로동당 4차 당대회 이후부터입니다. 당시 김일성의 리론서기였던 황장엽은 자신의 책에서, 리론서기들이 주체로선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혁명과 건설에서 견지하여야 할 근본립장과 근본방법은 자주적 립장과 창조적 립장이다. 자주적 립장은 자기 인민의 요구와 리익을 철저히 옹호하고, 자기 인민의 요구와 리익에 맞게 모든 문제를 풀어나가는 립장이다. 창조적 립장은 모든 문제를 자기 나라의 구체적 실정에 맞게 풀어나가는 립장이다.”



김일성은 이 자주적 립장과 창조적 립장으로부터 출발하여 사상에서의 주체, 정치에서의 자주, 경제에서의 자립, 국방에서의 자위라는 4가지 기본로선을 내 놓았습니다. 이것이 1960년대 전반까지 김일성이 내놓은 주체로선의 기본내용이였습니다. 그렇다면 이 주체로선은 북조선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어떻게 수령절대주의를 옹호하는 사상으로 변질되게 되였는지, 다음 시간을 기대해 주십시오.



<추적, 사건과 진실, 주체사상의 숨겨진 진실>, 다섯 번째 시간이었습니다.



<참고 및 인용자료>

1. 황장엽 회고록. 시대정신

2. 개인의 생명보다 귀중한 민족의 생명. 시대정신. 황장엽 지음

3. 현대 북한의 지도자. 을유문화사. 서대숙 지음

4. 한 권으로 보는 북한사 100장면, 가람기획. 고태우 지음

5. 인터뷰: 전 로동당 비서 황장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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