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사건과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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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사상의 숨겨진 진실, 네 번째

추적 사건과 진실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19 21:05




지난이야기 : 김일성은 6.25조선전쟁을 계기로 군대권력을 장악한 후 그를 토대로 자기의 독재체제를 강화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조선전쟁시기 중국지원군의 참전과 쓰딸린의 사망을 계기로 쏘련의 영향력이 약화되자 김일성은 주체를 세우는 문제를 강조하기 시작하는데....



주체사상은 크게 네 단계로 나누어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제1단계는 주체사상의 탄생기로 김일성이 쏘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1인 독재체제를 확립하는 시기입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봤듯이 6.25조선전쟁 때부터 1958년까지를 제1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2단계는 쓰딸린에 대한 개인숭배 비판으로 시작된 중쏘 분쟁의 틈바구니에서, 주체라는 말을 더욱 강조하며 군중로선에 기초해 주체문제를 비교적 체계적으로 밝히기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1958년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를 제2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제2단계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1958년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1958년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김일성에게 큰 의미가 있는 해입니다. 정치적으로는 8월 종파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정치적 경쟁자들을 제거하고 1인 독재체제를 확립했습니다. 이 시기 모든 조직이 김일성의 말 한마디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정도로 김일성의 독재체제가 강화됐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전후 복구사업이 일정한 성과를 거둬 인민 생활이 나아졌고, 농업협동화를 끝내고 사회주의 경제제도도 나름대로 완성되였다고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다 쓰딸린에 대한 개인숭배 비판으로 쏘련의 영향력도 크게 약해지면서 김일성이 ‘주체’를 강조해 나갈 수 있는 대내외적인 조건이 마련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김일성은 북조선에 남아 있던 쏘련의 흔적을 조금씩 지워나갔습니다. 특히 김일성은 자신의 리론서기들에게, 그동안 자신이 했던 연설문을 대폭 수정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김일성 : 그동안 내가 한 연설문을 묶어서 ‘선집’으로 출판했는데, 연설문을 작성한 사람들의 리론수준이 낮고 또 그 중에는 정리되지 않은 채로 실린 연설문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상적으로 주체를 세우는데 부정적인 작용을 한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데, 이 문제를 동무들이 빨리 해결해야 하겠습니다.



서기들 네, 수상동지!



김일성 동무들은 내가 말한 내용뿐만 아니라 내 머리 속에 들어있는 생각까지 읽을 수 있 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 생각에 딱 맞는 글을 쓸 수가 있습니다.



<김일성 선집>에 실린 연설문은 쓰딸린에 대한 개인숭배사상이 강하게 반영되여 있었습니다. 모든 연설문에 “쓰딸린 만세”라는 문구가 들어 있었는데, 김일성의 리론서기들은 이 부분을 몽땅 삭제했으며 사상적으로 주체를 세우는 방향에 맞게 문장도 고치고 론리도 다듬었습니다. 또한 리론서기들은 아직 발표하지 않고 기요과에서 속기형태로 보관하고 있던 몇 건의 속기록을 받아 다시 정리해서 김일성의 새로운 저작집에 포함시켰습니다. 이 속기록 가운데 1955년 12월, 김일성이 선전일꾼들에게 연설한 속기가 포함되여 있었는데, 리론서기들은 이 문건을 <사상사업에서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할 데 대하여>라는 제목을 달고 다시 정리해서 발표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우의 문건에서 주체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래서 주체사상의 탄생시기를 이 연설이 나온 1955년 12월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김일성이 이 문건에서 “주체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처음으로 지적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당시 김일성의 리론서기였던 황장엽은 “이 때부터 주체를 세우는 문제가 제기 되였다고는 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황장엽 : 1955년 12월 연설이라고 하는게, 여기서 자꾸 그걸 주체사상의 창시된 첫날이다 이렇게 얘기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것은 우리들이 58년에 정리한 것인데, 그게 결국은 전쟁시기의 것을 다 얘기한 것. 내용은 다 전쟁시기 것이다. 그래서 소련은 자꾸 소련식으로 전쟁을 하겠다고 했다. 중국은 중국식으로 전쟁을 하겠다고 했다, 김일성은 우리는 우리 현실에 맞게 해야 한다 이렇게 주장했다. 이게 기본 내용이다.



황장엽은 <사상사업에서 교조주의와 형식주의를 퇴치하고 주체를 확립할 데 대하여>라는 문건의 내용을 보면, “조선전쟁시기 중국 지원군의 참전과 쓰딸린의 사망을 계기로 북조선에 대한 쏘련의 영향력이 약화된 반면에 김일성의 정치적 기반이 강화된 것을 배경으로 하여 주체를 세우는 문제가 강조되기 시작하였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라고 지적했습니다.



아무튼 이 같은 작업을 통해 김일성은 쓰딸린에 대한 개인숭배를 지워버리고 그 빈자리를 자신에 대한 개인숭배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즉 쓰딸린주의 간판 대신에 주체사상의 간판을 내걸고 정치사상적인 독재를 강화해 나간 것입니다. 결국 1958년을 기점으로 김일성이 “주체”를 세울 것을 더욱 강조한 것은 쓰딸린에 대한 개인숭배 비판이 자신의 독재약화로 이어지는 것을 차단하고 1인 독재체제를 강화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한편 쓰딸린에 대한 개인숭배로 시작된 중쏘 리념론쟁이 1959년부터 본격적으로 불이 붙었습니다. 이 론쟁은 김일성을 곤혹스럽게 했습니다. 쏘련은 자신을 지도자로 내세워 북조선에 사회주의 국가를 수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나라이고, 중국은 조선전쟁에서 직접 피를 흘리며 싸워줬고 전후 복구사업에서 헌신적인 방조를 해준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공개적으로 어느 편도 들 수 없었던 김일성은, 두 나라 사이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하면서 신중하게 사태를 지켜봤습니다. 하지만 쏘련에서 시작된 ‘쓰딸린 비판 운동’이 북조선을 비롯해 전 사회주의 국가들을 뒤흔든 것을 체험한 김일성은 중국과 쏘련의 리념론쟁이 어떻게 번질지 몰라 촉각을 곤두세웠습니다.



<추적, 사건과 진실, 주체사상의 숨겨진 진실>, 네 번째 시간이었습니다.



<참고 및 인용자료>

1. 황장엽 회고록. 시대정신

2. 개인의 생명보다 귀중한 민족의 생명. 시대정신. 황장엽 지음

3. 현대 북한의 지도자. 을유문화사. 서대숙 지음

4. 한 권으로 보는 북한사 100장면, 가람기획. 고태우 지음

5. 인터뷰: 전 로동당 비서 황장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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