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사건과 진실

  • 방송정보 | 종영방송
  • 출연진행:

공식 SNS

김정일 권력장악 비화, 곁가지를 제거하라 4

추적 사건과 진실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19 21:05




지난이야기 : 조직지도부 검열단이 평양시당과 중앙녀맹에 파견되여 5개월간 검열을 벌렸습니다. 이 결과를 토대로 평양시당 전원회의와 녀맹중앙위원회 회의가 열렸고 녀맹위원장 김성애는 몰락하게 됩니다. 한편 김정일은 배다른 동생들을 경계하기 시작하는데.....



후계자 자리를 놓고 삼촌 김영주와 이붓어머니 김성애와 치렬한 암투를 벌린 김정일은 1974년 2월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마침내 후계자로 지목됐습니다. 하지만 김정일은 고삐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김정일은 부총리로 떨어져 이미 날개가 꺾인 김영주를 량강도의 심심산골로 쫒아 보냈습니다. 이후 김영주는 18년동안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다가, 1993년 ‘전승 40돌 기념 예술공연’때에야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김정일은 대대적인 숙청으로 다시 일어서기가 어렵게 된 김성애와 그녀의 자식들에 대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지위를 넘볼 수 있는 싹은 아예 돋아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이른바 ‘곁가지 론리’까지 만들어 냈습니다. 곁가지란 김일성-김정숙 부부를 나무로 친다면 김정일과 김경희는 ‘원가지’이고 삼촌 김영주와 이붓어머니 김성애와 그녀의 자식들은 곁가지라는 것입니다. 김정일은 이같은 론리를 전당에 조직적으로 지시해 동생들을 억눌렀습니다. 특히 김정일은 동생 평일을 ‘핵심 곁가지’로 분류해 그가 권력의 근처에도 오지 못하도록 차단했습니다.



김정일이 김평일을 경계한데는 나름대로의 리유가 있습니다. 우선 김일성이 자신을 닮은 김평일을 매우 좋아했고 장차 조선인민군을 이끌 장군감으로 생각하고 교육도 군사 쪽으로 방향을 잡아 주었다는 점 때문입니다. 더구나 오진우 인민무력부장까지 김일성의 뜻을 알고 김평일을 잘 돌봐주었습니다. 만약 김정일의 권력을 넘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수령과 군대의 책임자가 총애하는 김평일을 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정일이 김평일을 어느 정도 경계했는지는 다음의 일화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1977년 가을 김정일을 수행하던 호위사령부 김성윤 2국장이 불구가 되여 지방으로 쫓겨간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호위사령부 2국에 소속되여 있는 휴양관리부에서 올린 신소에서 시작되였습니다.



김정일 : 그래, 장과장. 급히 보고할 일이란게 뭐야?



과장 : 아무래도 김성윤이가 김평일을 끼고 들면서 그에게 충성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정일 : 밑도 끝도 없이 무슨 소리야. 자세히 말해 보라.



과장 : 얼마 전에 평일이랑 친구들이 수령님 특각에서 놀고 갔다고 하는데, 김성윤 2국장이 술과 안주를 공급해 줬답니다.



김정일 뭐야! 김성윤 이 개새끼가..... 부관! 부관!



부관 : 지도자 동지 부르셨습니까?



김정일 : 지금 당장 김성윤이를 내 앞으로 불러오라!



부관 : 네,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



김정일은 길길이 날뛰었습니다. 그는 김성윤이 사온 물건들을 눈에 띠는 대로 박살냈습니다. 이때 집무실로 김성윤이 들어왔습니다.



김정일 : 야, 이 새끼야, 네가 평일이를 싸고 돌아. 내 앞에서 당장 사라지라!



집무실을 나오던 김성윤은 너무 놀란 나머지 계단에서 발을 헛디뎠습니다. 허리를 크게 다친 김성윤은 반신불수가 되였고 철직되여 지방으로 쫓겨 갔습니다.



‘곁가지 대상’들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은 김성윤 뿐만이 아니였습니다. 김평일의 친구라는 리유만으로 삼수갑산으로 추방당하거나 직위에서 줄줄이 밀려났습니다. 평일의 동생들인 영일이나 경진에게서 사소한 선물이나 편지를 받았다고 하여 철직되고 추방된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김정일은 이복동생들을 계속 따돌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곁에 있지 못하게 했습니다. 1980년에는 중앙당 조직지도부에 곁가지 문제를 전담하는 ‘10호실’까지 만들었습니다.



김정일 : 곁가지 대상들의 사소한 움직임도 빠짐없이 감시하라. 그들이 누구를 만나는 경우 시간과 장소는 물론, 누구의 요구로 만났고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자세히 보고하라.



사람들은 ‘10호실’의 눈이 두려워 ‘곁가지 대상’과는 인사도 하지 않았습니다. 만나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운명이 끝장날 수도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없는 사람 취급하거나 피해 다녔습니다. 결국 김정일은 평판이 두려워 동생들을 죽이지 않는 대신 그들의 사회정치적 생명을 완전히 끊어버린 것입니다.



김정일의 곁가지 제거작업은 그가 통치하는 내내 이어졌습니다. 그렇다면 김정일의 배다른 동생들은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요?



김정일은 자신의 동생들을 모두 해외로 쫓아 조선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김평일은 1988년 웽그리아 대사로 시작하여 뽈스까 대사가 된 지금까지 해외에서 떠돌고 있습니다. 김일성의 둘째딸 김경진도 1979년 남편 김광섭을 따라 체스꼬로 간 뒤 현재는 오지리 대사가 된 남편과 함께 외국에 머물고 있습니다. 김일성의 막내아들인 김영일은 독일과 말따 등지에서 떠돌다가 2000년 5월에 간경화로 사망했습니다.



한없이 인자하고 부드럽다고 선전하는 장군님은 오로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서, 자신의 가족들까지 철저하고 잔인하게 짓밟았습니다.



<추적, 사건과 진실, 김정일 권력장악 비화, 곁가지를 제거하라 >, 마지막 시간이었습니다.



<참고 및 인용자료>

1. 김정일 리포트, 바다출판사, 손광주 지음

2. 김정일 로열패밀리, 시대정신, 이한영 지음

3. 황장엽 회고록, 시대정신

4. 평양25시, 고려원, 고영환 지음

5. 조선일보 통한문제연구소, NK데이터 베이스, ‘인물’

전체 0

국민통일방송 후원하기

U-friends (Unification-Friends) 가 되어 주세요.

정기후원
일시후원
페이팔후원

후원계좌 : 국민은행 762301-04-185408 예금주 (사)통일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