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사건과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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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권력장악 비화, 곁가지를 제거하라 3

추적 사건과 진실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19 21:05




지난이야기 : 김일성이 인민대학습당을 지으려고 아껴두었던 부지에 김성애의 동생 김성갑의 저택이 들어섰습니다. 평소 이 땅을 아껴왔던 김일성은 불같이 화를 냈고, 이 사건으로 김일성과 김성애 사이에는 틈이 벌어졌습니다. 김정일은 이 틈새를 놓치지 않고 파고드는데......



김성갑의 비리가 터져 나오면서 김정일은 이붓 어머니 김성애를 공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습니다. 김정일은 그동안 극비리에 모은 자료를 들고 김일성을 찾아가 김성애의 월권행위와 비리들을 조목조목 보고했습니다.



김일성 : 그래, 김정일 부부장. 하고 싶다는 말이 뭐야?



김정일 : 수령님, 말씀드리기가 죄송한데, 이번에 김성갑 해군사령부 정치위원 사건은 중앙녀맹위원장과 관련이 있습니다.



김일성 : 그게 무슨 말이야? 녀맹위원장이 왜....



김정일 : 중앙 녀맹에 대한 신소가 들어와서 조사를 해 봤는데, 김성애 동지의 전횡이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였습니다.



김일성 : 계속해봐.



김정일 : 강성산이 인민대학습당 부지에 저택을 지은 것도 김성애 동지에게 아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동안 김성애 동지는 자기를 선전하기 위해 ‘어머니 교양실’이라는 것을 전국에 만들었는데, 수령님의 혁명력사연구실보다 더 요란하게 꾸려 놓았습니다.



김일성 : 부부장! “김성애 녀사 말씀 연구록” 이건 뭐야?



김정일 : ‘어머니 교양실 꾸리기 운동’을 하면서 뿌린 김성애 동지의 말씀집이라고 합니다.



김일성 : 뭐, 말씀집? 이 녀편네, 그냥 둬서는 안 되겠구만.



때마침 매제인 장성택이 ‘김성갑이 해군사령부 일을 하지 않고 아편을 맞고 녀자들과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들춰냈습니다. 이 사건으로 김일성 부부는 심하게 다퉜고, 성질이 불같은 데가 있었던 김성애가 식사도중 김일성에게 밥상을 엎어버리기도 했습니다.



한편 김정일은 쐐기를 박기 위해 조직지도부 검열단을 공개적으로 중앙녀맹과 평양시당에 파견했습니다. 평양시당 검열단은 김성갑의 비행을, 중앙녀맹은 김성애의 비행과 그의 추종자들을 가려내는 것을 주된 임무로 하였습니다. 검열단 성원들은 대상자들을 강당에 모아놓고 내부검열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부부장 : 오늘부터 당중앙위원회 위임에 의해서 조직지도부 검열을 시작합니다. 당원 동지들은 개인적 생활과 주변 동지들의 생활을 곰곰이 생각해서 담화에 충실히 림해주기 바랍니다.



조직지도부 검열단은 등골이 오싹해질 만큼 무섭기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그들은 대단히 인자하게 사람들을 대하지만 여우처럼 교활하고 노련하게 사람을 다뤘습니다. 소리 한번 치지 않고 오로지 호상 이간질로만 자기들이 원하는 자료를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이 조직지도부 검열단이였습니다.



부부장 : 당신이 제출한 총화서를 검토 해봤는데, 특별한 문제는 없구만. 그런 데 깜빡 잊고 쓰지 않은 게 있지 않아?



녀1 : 아닙니다. 조직생활, 경제생활, 사생활에서 제기된 문제들을 빠짐없이 솔직하게 썼습니다.



부부장 : 그런데 다른 이야기가 들리던데. 당신 평양시체육단 훈련관이 개관하던날 “김성갑 만세”를 외쳤다고 하던데 그건 왜 말 안 했나?



녀1 : 누가 말했을까? 그 자리에 누가 있었더라. 옳지 춘실이 년이 같이 있었지. 그년이 일러 바친게 분명해. 춘실이년 어디 두고 보자!



조직지도부 검열단의 담화는 생활총화 때 호상비판을 하지 않으면 비판을 받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검열 대상들은 상대방을 물어뜯어야 자신이 살아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될 정도로 정신적으로 압박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의 이런 심리를 교묘하게 리용해 무려 5개월간에 걸쳐 강도 높은 검열이 벌어졌고, 이 검열에서 빠져나갈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조직지도부 검열이 끝나자 김정일은 다시 김일성을 찾았습니다. 문건을 본 김일성은 엄하게 지시했습니다.



김일성 : 당장 평양시당 전원회의와 녀맹중앙위원회를 열고 이 문건을 검토하라!



이 명령에 따라 공개비판 회의가 열렸고 검열내용이 사실임이 확인됐습니다. 김일성은 관련자들을 모두 철직시키라고 지시했습니다. 이와 함께 김성애와 김성갑과 관련된 사람들은 전부 농촌과 탄광으로 추방됐습니다. 이 숙청사업의 실무를 그 무렵 국가주석 직속기구로 창설된 국가정치보위부에서 집행했는데 이들은 김성애 남매와 조금이라도 관련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조리 트럭에 싣고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김일성의 처남 김성갑과 김성호도 철직되여 연금상태에 들어갔습니다. 김성애에게는 일체의 공개석상에 나타나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자모산 별장으로 보내져 6개월간 반성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이 사건 이후 신문, 방송, 출판물에서 김성애의 이름과 사진은 일시에 사라졌습니다.



김성애의 야망은 이렇게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김정일이 뽑아든 숙청의 칼끝은 김성애의 자식들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추적, 사건과 진실, 김정일 권력장악 비화, 곁가지를 제거하라 >, 세 번째 시간이었습니다.



<참고 및 인용자료>

1. 김정일 리포트, 바다출판사, 손광주 지음

2. 김정일 로열패밀리, 시대정신, 이한영 지음

3. 황장엽 회고록, 시대정신

4. 평양25시, 고려원, 고영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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