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일남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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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부 김정일의 호화관저, 첫 번째

리일남 수기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07 01:23




해설 : 리일남에 따르면 김정일의 가족들이 사는 저택을 관저라고 부른다. 확인된 것만 해도 김정일은 평양에 5개의 저택을 가지고 있는데 그 규모가 엄청나다. 리일남의 이야기 들어보자.



그때 우리는 관저를 3개 사용하고 있었다. 15호 관저로 불리는 중성동 관저, 85호 관저로 불리는 동평양 관저, 그리고 창광산 관저가 그것들이다. 나중에 창광산 관저는 사용하지 않았는데, 김정일의 새 애인 고영희가 산다는 것을 후에 알게 되었다.



해설 : 고영희는 북송 재일교포 출신으로 김정일의 세 번째 부인이다. 만수대 예술단 무용수로 활동하다가 1975년경 김정일의 눈에 띄어 부인이 되였다. 김정일은 고영희와의 사이에서 정철, 정운 형제를 낳았는데 이중 자신과 닮은 정운을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고영희는 김정일의 각별한 사랑을 받아 그의 자식들이 유력한 후계자로 떠올랐지만, 2004년 고영희가 유방암으로 죽으면서, 다시 김정남을 지지하는 세력과 경쟁을 벌리고 있다.



창광산 관저는 산 우에 있는데 차가 산밑의 동굴로 들어간다. 차에서 내리면 승강기를 타고 산꼭대기에 있는 집으로 간다. 집 평수가 7, 8백 평쯤 되는데, 중성동 관저처럼 크지는 않지만 아담하고 운치가 있는 집이다.



내가 모스끄바에 가 있는 동안 중성동 관저가 새로 증축됐다. 정남이가 78년 11월 모스끄바에 올 때는 중성동 관저에서 산 게 아니라 85호 동평양 관저에 살았다고 한다. 증축된 중성동 관저는 엄청나게 커져 있었다. 평수가 8백 평 정도에서 2천 평 가까이로 늘어났다. 85호 관저도 그렇지만, 관저 내 청소요원이나 관리요원들은 골프장에서 타고 다니는 밧데리차를 타고 다녔다.



중성동 관저에 도착하자 김정일은 정남이와 이모, 나와 남옥이와 어머니에게 증축된 관저를 직접 안내하며 구경시켜 주었다. 정남이 놀이방과 침실, 서재, 김정일의 접견실과 서재 및 금고실, 부부 침실은 물론 이모 혼자서 사용할 방 등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이튿날에도 집안 구경을 계속했는데, 집안 구경에만 하루가 걸렸으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가장 흥미를 끌었던 것은 금고실이었다. 금고실은 김정일의 서재를 통해 들어가게 돼있는데, 김정일과 이모가 사용하는 것 외에 정남이 금고 등 모두 5개 정도의 대형금고가 있었다. 정남이 금고에는 총알이 들어 있지 않은 각종 권총과 김정일에게 선물 받은 보석이나 돈, 금덩어리가 들어 있었다.



정남이 오락장이 3백 평 정도 된다는 것은 이미 얘기했다. 그 안에서도 밧데리차를 타고 다니니까 굉장히 큰 규모였다. 3백 평의 오락장도 중간에 기둥이 없이 확 터져 있어 운동장 같은 느낌을 주었다. 오락실 한가운데에는 당구대가 있고, 사방 벽에는 전자오락기가 쭉 붙어 있었다.



해설 : 김정일은 이같은 개인 관저 말고도 조선 전역의 명승지에 특각이나 초대소 등으로 불리는 개인별장을 가지고 있다. 파악된 것만 해도 24개에 이른다. 이중에 대표적인 특각이 함경남도 락원군에 있는 72호 특각인데, 수심 100미터의 바다 속을 볼 수 있도록 설계된 해저 별장이다. 당중앙위원회 호위부 6처에서 김정일 경호원으로 일했던 리영국의 수기를 보면 김정일의 별장이 얼마나 화려한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리영국 : 72호 특각은 바다 수평선에서 아래로 3층, 수평선 위로 7층 건물이지만 일반 건물과 비교하면 25층 정도의 높이다. 한 층은 800평 정도로 내부 시설은 상상을 초월한다. 매층마다 고급 순모주단과 각종 오락시설, 운동기재, 영사실, 위성통신시설이 가득 차 있는데 일본과 스위스, 스웨리예 등에서 수입해온 최고급품들이다. 온도와 습도를 자동으로 조절해주며 세계 첨단의 경비시설도 갖춰져 있다. 이곳에 투자되 는 전력만 하여도 한 개 군에 맞먹거나 큰 련한기업소에 맞먹는 량이다.



리발사 등 관리요원들은 관저 밖 부속건물에 거주하고 있었다. 관저 밖이라고 해도 령내다. 2층인 작은 부속건물에는 리발소와 재단실로 불리는 양복부, 그리고 관리과장실 등이 있었다. 관저는 2중 콘크리트 담으로 보호되어 있다. 맨 안쪽 담 안에 관저가 있고, 담과 담 사이에 부속건물이 있다.



정남이 오락실에는 리발실도 붙어 있었다. 머리를 잘라야겠다고 하면 리발도구를 준비한 리발사가 들어온다. 정남이 리발실 리용자는 정남이와 나밖에 없다. 남옥이는 미용실에 간다. 김정일의 경우 집무실에 리발실이 따로 있고 리발사도 따로 있다. 관저에서 근무하는 리발사는 황창인이라고 호위사령부 소속인데, 정남이의 머리를 자르는 게 일이다. 정남이 리발사는 일이 없을 때 관리과장 등 다른 사람들의 머리도 만져준다. 그는 리발만 할 뿐 다른 일은 하지 않는다.



양복부에는 두학남 아바이와 국순 아줌마가 있다. 김정일의 양복을 다리고 인민복의 목달개를 빳빳하게 준비해놓는 게 그들의 일이다. 정남이와 내 양복은 다 거기서 만들었다. 두학남 영감은 왜정 때부터 재단사를 했다고 한다. 관저 안에 근무하는 사람들을 위한 아빠트가 령내에 있다. 관저 운전기사부터 시작해 경호원 등 관리요원들이 모두 그곳에 산다.



관저에는 과부 관리원 등 나이든 사람이 많다. 주방의 허동순 로친네나 옥선 아줌마는 나이가 많았다. 허동순은 내가 있을 때 이미 환갑이 넘었고, 옥선 아줌마는 마흔이 넘었다.



관저 총책임자는 2호위부 부부장이다. 처음에는 이수헌이 관저책임자였는데, 그는 78년에 철직되어 끌려갔다. 김정일의 차를 끌어내 녀배우들과 차안에서 부화를 한 것이 들통났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차를 좋아해 관저뿐만 아니라 집무실에도 외국 고급차를 여러 대 가지고 있었다. 벤즈도 까만색, 초록색 등 여러 가지가 있었고, 리무진도 여러 종류가 있었다. 그밖에 정남이와 이모가 리용하는 벤즈와 리무진 등 관저에는 차가 많았다. 그것을 리수헌이 몰고 나가서 관저보좌관이라는 지위를 리용해, 조선인민군 협주단의 녀배우들, 그리고 만수대예술단 녀배우들과 부화한 것이다. 이수헌이 건드린 녀배우들은 10명이 넘었다고 하는데, 김정일은 리수헌에게 질렸는지, 후임 관저책임자로 꼬장꼬장한 로인네를 임명했다.



로종일 대좌가 2호위부 부부장으로 새로 왔다. 로 대좌의 별명은 ‘달기 수매꾼’이었다. 나이도 많고 비쩍 마른 데다 엉거주춤 걷는 모습이 두 손에 닭을 들고 수매하러 다니는 하급 간부 같다고 해서 이모가 지은 별명이다. 로종일 대좌는 이상한 폼 때문에 달기 수매꾼이 되었지만 그는 15호 관저뿐만 아니라 85호 관저까지 책임을 맡고 있는 막강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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