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일남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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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부 김정남의 첫 해외 나들이

리일남 수기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07 01:23




나는 76년부터 모스크바 생활을 시작했는데 78년 11월 정남이가 모스끄바로 관광려행을 왔다. 8살 된 정남이의 첫 번째 해외 려행이었다.



해설 : 뒤에서 자세히 이야기 되겠지만 리일남은 76년 5월 17일에 모스끄바로 류학을 떠난다. 가장 큰 리유는 평양과 모스끄바를 오가며 치료를 받고 있던 이모 성혜림을 돌봐주는 일 때문이였고, 리일남이 만경대혁명학원에 적응을 못하면서 교육 문 제가 제기됐기 때문에 류학을 가도록 한 것이다.



정남이는 평양에 갔던 혜림이모와 함께 왔는데 수행원이 엄청났다. 이모가 모스끄바에 올 때는 요리사 두 명에 전속 부관, 규채, 문길이까지 엄청 많이 따라왔다. 옷 갈아 입혀주는 하녀에 시중들어 주는 사람 등으로 이모의 숙소로 사용하는 아빠트 다섯 집이 꽉 찰 정도였다.



해설 : 당시 성혜림의 아빠트는 모스끄바 레닌대로 바발로바가 85번지에 있었다. 이곳은 쏘련 주재 외교관들이 사는 외교관 아빠트 단지로, 당시 북조선은 15층짜리 아빠트 3개 동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 아빠트는 한 층에 다섯 집이 있는 구조였는데, 성혜림은 아빠트 한 층을 숙소로 사용하고 있었다.



정남이가 모스끄바에 도착할 때 나는 당시 김재봉 대사와 함께 비행기 안으로 올라가 이모와 정남이를 영접했다. 정남이는 김일성의 특별기를 타고 왔다.



김재봉 : 대장 동지, 녀사님 먼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김정남 : 일남아!



리일남 : 이모 고생많으셨습니다. 대장동지 반갑다.



나는 정남이를 껴안고 좋아라 했다. 비행기 바로 밑에 벤즈가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정남이 손목을 잡고 비행기에서 내려 자동차를 탔다.



정남이를 데리고 모스끄바 관광도 시켜주고 여러 곳을 다니면서 놀아주었다. 재미있는 일도 있었다. 정남이가 혜림이모의 숙소인 아빠트 단지 안에서 나와 함께 있다가 자기 또래의 외국애들이 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곳은 외교관 아빠트 단지라 쏘련 애들도 있고 다른 나라 애들도 있었는데, 정남이는 평양에서처럼 자기 말이면 다 되는 줄 알고 아이들에게 명령했다.



정남 : 야 너희들 다 이리와봐!



일남 : 정남아, 쟤네들은 우리 조선말을 못해서 니 말 못 알아들어.



정남 : 그럼 일남이 니가 쏘련 말로 하면 되지 않아? 넌 여기서 공부하니까 여기 말을 알 것 아니니? 빨리 다 오라고 하라.



일남 : 정남아, 여기는 공화국이 아니야. 여기는 외국이기 때문에 공화국에서처럼 네가 오라고 해도 안 온다. 우리 명령을 안 듣는단 말이야.



정남 : 진짜야?



일남 : 그렇다니까?



정남 : 씨.... 그래도 내가 오라고 하면 다 와야지.





해설 : 위의 일화에서 알 수 있지만 김정남은 비정상적인 권력을 누리며 자랐기 때문에 평등한 인간관계를 리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남의 이모 성혜랑의 수기에서도 지적되고 있다.



성혜랑 : 정남은 울타리 바깥 세상과 철저히 격리된 상태에서 단 한 명의 친구도 없이 어울려 뛰어 노는 즐거움을 모르고 기형적으로 키워지고 있었다. 아이를 세상에 내놓지 못하는 제 아버지의 처지를 우리는 리해하고 있었지만 이 비정상적인 생활을 강요하고 있는 그를 찬성할 수 없었다. 제 엄마의 병의 원인이 이것이었다. (중략) 수직적 인간관계밖에 체험하지 못한 정남에게는 수평적 교제가 불가능했다.



우리 아파트 5층에 외국어대학 학급동무가 한 명 살고 있었다. 벌가리아 무역대표부에 근무하는 아버지와 함께 사는 마리아 네노바였다. 그녀는 평소 전철이나 뻐스로 통학했는데, 가끔 내 차로 학교에 갔다. 잘 사는 나라 외국 아이들에게도 차가 없었는데 나는 김정일을 이모부로 두고 있는지라 차가 있었다. 당시 외국인 학생들은 나를 ‘리노’라고 불렀다. 리일남을 빨리 부르다 보면 리노가 되었던 것이다. 마리아는 가끔 우리 집에 와서 '리노... 학교 안가니? 가자!‘하고 나를 불렀다.



정남이가 와 있을 때에도 자주 빠져서 그랬지 학교는 다녔다. 그런데 정남이가 내가 마리아와 같이 차를 타고 학교에 갔다오는 것을 창문에서 보았던 것 같다. 모스끄바에서 별 반응이 없던 그가 나중에 평양에서 마리야 얘기를 꺼내 나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관저에서 김정일과 함께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밥을 먹던 중 갑자기 정남이가 입을 열었다.



정남 : 빠빠, 일남이는 아침에 학교 갈 때 노랑대가리랑 같이 간다.



김정일 : 일남아, 이게 무슨 말이냐?



일남 : 그게.... 아빠트 다른 층에 같은 반 동무가 삽니다. 벌가리아 녀학원생인데 무역대표부 딸입니다. 가끔 학교에 같이 갔다 오는 일이 있었습니다



김정일 : 일남이 너. 외국 아이와 눈 맞아가지고 달고 나오면 큰일난다. 외국 녀자애들 가까이 하지마라. 알았지.



일남 : 예, 알겠습니다



정남이와 우리 가족은 79년 1월말 평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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