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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복숭아 한 조각

남조선 생활기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2-12-03 18:51

 


마트에 가서 부식물을 잔뜩 사가지고 아파트 출입문에 들어서는데, 한 스물 댓살 돼보이는 처녀애와 마주쳤다. 근데 옷차림새랑 보니 어딘가 모르게 나랑 같은 북한 사람같은 느낌이 딱 들었다. 걸어가는 그의 뒤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데, 마침 그가 전화통화를 했다.


연심이 : , 하나센터라구요? 네 박연심이 맞습니다. 어제 나왔습니다.


 말투를 보니 분명 탈북자였다. 하나원을 졸업한지 얼마 안 된 모양이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그에게 다가가서 말을 건넸다. 알고 보니 나랑 같은 함경북도 태생이었다. 어제 하나원을 나와서 우리 아파트 19층에 집을 받았다고 했다.


오래 만에 같은 고향 친구를 만나 정말 반가웠다. 한참이나 서서 얘기를 나누다가 어딜 가냐고 물으니 미용실에 간다고 했다.


나도 미용실 갈 참이었는데, 마침 잘 됐다. 난 얼른 집에 올라가 물건을 부려놓고 연심이랑 같이 미용실로 향했다.


마을 입구에 있는 미용실에 가니 사장님이 어서 오라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사장님은 언제봐도 멋지고 세련되었다. 후리후리한 두 눈에 하얀 피부, 늘씬한 키에 가느다란 허리, 나이 40이 넘었는데도 아직 30대 초반 같이 상큼하고 젊어보인다.


마침 손님이 없어 내가 먼저 미용의자에 앉았다.


그때 잠간 방안으로 들어간 사장님께서 그릇에 복숭아 한 알을 몇 등분으로 쪼개 가지고 나오셨다. 그리곤 그 한 쪼각을 연심이한테 건네셨다.


아마 기다리는 동안 심심하니 먹으라고 하신 것 같다. 그런데 연심이가 그걸 안 먹겠다고 사양하고 있었다.


그러자 사장님은 더 권하지 않으시고 내 머리를 다듬기 시작했다. 나는 연심이가 복숭아를 좋아하지 않나 부다, 하고 나름대로 판단했다.


어느 덧 우리 둘은 머리를 다 다듬고 미용실을 나섰다. 그러다 문득 아까 복숭아 생각이 나서 왜 안 먹었느냐고, 연심이에게 물어보았다.


연심 ; 그거 어떻게 먹기나 하겠습디까, 아까워서 고렇게 쪼그맣게 썰었는데, 그리구 내가 안 먹겠다고 하니까 바로 아무 말도 안하잖아요, 내가 먹겠다고 했으면 큰 일 날뻔 했네, 어휴, 차라리 먹으라 소리 하지나 말지,


순간, ~ 해졌다. 이건 뭐지? 그리고 다음 순간 아, 그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쳤다. 아마 나도 하나원을 금방 나온 상태라면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다.


남한 사람 누구에게 물어봐도 복숭아 아까워서 작게 썰었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 싫다고 하는데다 계속 들이대는 것도 실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번 이상은 더 권하지도 않는다.


, 지지리도 먹는 고생만 해오다 나니 고향 사람들은 먹는 것에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복숭아 한 쪼각을 놓고도 북과 남의 시각이 이처럼 다르다는 것을 또 한번 새삼스레 느낀다.


오해하고 있는 연심이에게 자세히 설명해주긴 했지만 그가 몸으로 받아들이기 까지는 조금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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