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경의 살며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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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피보다 더 한 고통

서미경의 살며 생각하며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2-06-11 18:18


어릴 적에 피가 무서웠다. 놀다가 넘어져 무릎이 까지거나 칼 같은데 손가락이 베이면 아파서보다 피 나는 것이 무서워 엉엉 울었다. 피 흘리는 장면이 많은 전투영화 같은 것을 보다가도 선혈이 랑자한 화면이 펼쳐지면 무서워서 두 눈을 꼭 감았다.



중학생시절 어느 날이었던가? 그 때부터 피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피는 녀자가 녀성으로 살고 있음의 증표 같은 것, 피를 볼 수 없는 녀자는 녀자도 아니었다. 전쟁터나 사고현장이 아니면 피를 목격할 일이 드문 남자에 비해 녀자는 한 달에 한 번씩 불가피하게 피를 본다. 녀자가 남자보다 독한 리유는 수시로 피를 보기 때문이 아닐까, 암튼 결혼해서 임신해 아이를 낳을 때 피 흘리며 겪던 그 산고는 세상이 통째로 깨지는 듯 한 아픔이었고 고통이었다.



살면서 더 잘 알게 되었다. 깨진 무르팍이나 베인 손가락을 들여다보며 엄살 부릴 때는 행복한 때였다는 것을, 아이를 낳을 때의 고통은 이후에 찾아온 환희, 새 생명이라는 큰 축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 것과 비교도 안 되는 아픔, 피 보는 것보다, 피 흘리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은 피도 안 나는 고통이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90년대 고난의 행군시기 수많은 북조선주민들이 굶어죽었다. 너도나도 변압기를 뜯어가고 전기 줄을 자르고 길가의 망홀 뚜껑을 훔쳐 중국제 밀가루와 바꿔먹었다. 내가 아는 한 분이 전기 줄을 자른 죄로 시범껨으로 공개 총살당했다. 가족들은 그 앞으로 끌려가 지켜봐야 했고 가족을 먹여 살리려 전기 줄을 자른 가장을 반역자라고 타도해야 했다. 그 아들은 아버지가 총살당하는 모습을 보고 울지도 못했다. 아니, 너무 고통스러워 눈물이 안 나왔다고 한다.



사람이 사람대접을 못 받고, 스스로도 사람다운 체면을 지킬 수 없을 때 그 상처와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그래서 인권이라는 말이 있는 것이고, 그 인권을 보장받고 싶어 수많은 북조선주민들이 탈북했다. 여기 남조선에 온 탈북자만 2만 5천명이 넘는다.



그 탈북자들에게 통일의 꽃 림수경이 막말을 했다. 최근 그 녀가 한 탈북대학생에게 근본도 없는 탈북자들이라며 탈북자들을 싸잡아 폄하한 것이다. 게다가 북한인권운동을 이상한 운동이라고까지 매도했다.



림수경이 누구인가? 13차세계청년학생축전에 남조선의 전대협대표로 참가했던 그가 우리에게 남긴 인상은 참으로 컸다. 그의 연설이나 행동거지, 머리모양과 옷차림, 해맑은 웃음에서 나오는 자유분방함은 북조선의 우리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자유세계에 대한 동경 그 자체였다. 그래도 그 녀가 평양으로 갔던 89년 북조선은 겉으로나마 멀쩡해 보였다. 특히 그 곳에서 림수경은 통일의 꽃으로 내세워지며 큰 환대를 받았다. 그 녀는 자기를 영웅대접해준 북조선의 독재체제가 고마워 옹호하고 싶어 그런 망언을 했는가?



하지만 우리는 그 땅에서 노예처럼, 벌레처럼 짓밟히며 살아왔다. 더는 견디기 힘들어 목숨을 걸고 뛰쳐나왔다. 림수경은 근본도 없는 탈북자들이라고 욕을 했지만 근본은 커녕 인권마저 허용 안 되는 곳이 바로 북조선이다. 그 땅의 참혹한 인권유린현실은 널리 알려졌고, 그걸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전 세계가 떨쳐나섰다. 정녕 그 녀는 그것을 보지 못하는 건가? 아니면 안 보는 것인가?



그 녀는 취중에 한 부적절한 발언이었다고 공개사과를 했다. 하지만 그걸 받아들이기에 우리 탈북자들이 받은 상처는 너무도 컸다. 사람답게 살아보자고 온 여기 남조선에서, 그것도 자유세계의 우상이던 림수경에게 그 말을 들으니 정말 피보다도 더 한 고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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