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경의 살며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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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마른 명태

서미경의 살며 생각하며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2-06-04 18:16


한 겨울 어머니는 아파트 베란다 창문에 생선명태를 여러 마리 묶어 매달아놓곤 하셨다. 추운 날씨에 얼었다 녹았다 하며 그 명태꾸러미는 먹음직한 건어물이 되었다. 그것은 여러 가지 반찬이 되거나 아버지 술안주, 또는 우리 형제들의 맛있는 간식이 되어주었다. 그 중 간식으로 구워 먹던 그 별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어머니는 마른 명태로 무얼 만들기 전에는 항상 망치로 탁탁 두드리곤 하셨다. 그러면 명태가 찢어먹기 좋게 푹신푹신해지는데 그럴 때 나와 두 오빠는 놀다 말고 어머니 주위에 몰려들곤 하였다. 어머니가 반찬을 만들 것인가? 간식으로 구워주실 가? 자식들의 그 간절한 표정에 못 이겨 어머니는 가끔씩 반찬을 만들려다가 우리에게 구워주셨다.



평소에는 밥상에 오른 반찬까지도 선을 그어가며 내게는 조금 왔다느니, 네게로 더 갔다느니, 하며 옥신각신 하던 우리 형제들은 그 때만은 얌전히 앉아 어머니가 찢어주는 명태쪼가리를 질서 있게 받아먹었다. 마치 어미 새가 물어다주는 먹이를 열심히 받아먹는 어린 새들과 같았다고 할까, 그것이 얼마나 맛있고 행복했던지…… 그 때는 다는 몰랐다. 그게 왜 그리도 맛있고 행복했는지를,



이제는 20여 년 세월이 흘렀다. 지금도 그 시절이 생각나 일부러 마른 명태를 북북 찢어 먹어볼 때가 있다. 하지만 그 맛이 전혀 나지 않는다. 어머니에게 일부러 찢어 달라 해도 마찬가지이다. 나랑 함께 북에서 살다 온 친구에게 이 말을 했더니 자기도 북에서 먹던 명태 맛이 더 달다는 것이다. 북조선에서는 명태를 잡아 바닷물 그대로 말리지만 여기 남조선에서는 위생상 깨끗한 물에 한 번 더 씻기 때문에 바다고유의 단맛이 조금 빠진다나,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래도 뭔가 빠진 것만 같다.



음식은 분위기에 따라 맛이 다르다. 어쩌면 내가 못 잊는 마른 명태의 그 맛은 어린 시절 어머니와 오빠들과 함께 했던 오붓한 그 가족분위기가 아닐까? 그 때 어머니가 찢어주는 명태를 함께 받아먹던 두 오빠는 지금 살아있는 지, 죽었는지 생사여부를 알지 못한다. 자유로운 세상에 가서 한번 마음 편히 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국경을 넘은 것이 반역죄가 되어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고 만 것이다. 오빠들이 그렇게 된 후 우리 가족은 추방당했고 아버지는 충격을 받아 돌아가셨다. 단란했던 우리 가족은 그렇게 뿔뿔이 흩어졌고 결국 우리 모녀만 여기 남조선으로 오게 되었다. 오빠들이 가고 싶어 한 그 자유의 길로 말이다.



처음 남조선에 도착했을 때 얼마나 눈물이 흐르던지,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나서 울었고 살아있다면 같은 하늘아래 숨 쉬고 있을 오빠들 생각에 오열했다. 지금도 어머니는 오빠들 생일 때면 그 이름들을 애타게 불러보며 주름진 눈가를 적시신다. 정말이지 오빠들이 기적처럼 살아있어 눈앞에 나타나주면 얼마나 좋으랴, 우리 삼형제가 예전처럼 어머니 주위에 빙 둘러앉아 어머니가 찢어주는 마른 명태를 오순도순 받아먹던 그 맛과 행복은 다시는 느낄 수 없는 것인가,



이것이 어찌 나와 우리 어머니만 이랴, 북에서 살다 여기 남조선에 온 다른 많은 분들도 모두 그런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특히 혈육과 헤어진 채 반세기가 훨씬 넘은 수많은 리산가족들, 국군포로들, 랍북자가족들의 마음은 오죽이나 아프고 고통스러우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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