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선은 어떻게 경제강국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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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강 1960년대 수출의 급증

남조선은 어떻게 경제강국이 되었나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2-12-13 18:08

 


<강의 요약>


수출입국과 수출진흥책


수출증가 고무된 박정희 정부는 1965년 시정목표를 ‘증산과 수출’로 정하고 수출진흥정책을 적극 추진. 대표적인 것이 저리 수출금융. 1965년 예금대출금리 인상 이후 은행대출금리가 21%대에 올랐지만, 수출금융금리는 6%대. 수출업체는 이 금리 차이만큼 보조금을 받은 셈. 정부는 매월 대통령 주재 하의 수출진흥확대회의를 열어 수출 진흥 방안을 논의. 또 1962년에 설립된 대한무역진흥공사는 해외지점망을 통해 수출대상지의 시장정보를 수집하여 기업에 제공.


수출의 증가


수출은 1961~1979년의 18년간 명목액 기준으로 4,100만 달러에서 175억 달러로 427배 증가. 연평균 40%의 경이적 증가율.1960년대 수출 증가를 이끈 품목은 섬유, 합판, 가발 등 가공경공업품. 수출 중 세 품목의 비중은 1960년대 초에만 해도 1/5 이하였으나, 1960년대 말에는 2/3에 달함.


① 섬유공업
섬유공업은 1963년 제조업 전취업자(40만)의 27%(11만), 생산액의 23%, 부가가치의 20%를 차지하는 제1의 산업. 노동력이 풍부한 우리나라의 경제여건에 비추어 수출신장 가능성이 가장 큰 산업. 박정희 정부는 섬유공업진흥7년계획(1965~1971년)를 수립하여 민간기업의 자생적인 수출 진흥 노력에 박차. 섬유제품 수출이 계속 증가 1970년에는 전체 수출의 40.8%를 차지.


② 합판가공
1950년대에 전쟁으로 파괴된 건물의 건축이 활발하였다. 목재수요가 증가하였고, 이에 목재산업이 발흥. 복구 수요가 일단락되자 목재산업이 불황에 빠졌는데, 목재업자들은 새 활로로 일본의 합판가공업을 참고하여 합판가공을 시작. 합판가공 역시 노동집약적 품목으로서 우리나라에 적합.


③ 가발공업
가발제조는 우리나라 여성의 섬세한 손재주, 풍부한 노동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내에서 조달 가능한 원료 등 면에서 1960년대 전반 우리나라에 딱 맞는 업종.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가발 제조는 거의 없었으나, 서울통상(주)의 최준규가 가발 수출의 가능성을 보고 뛰어듦. 1965년에 미국 정부가 중공산 머리카락으로 만든 가발에 대해 수입금지 조치를 하자 일본과 홍콩이 가발생산이 중단되는 행운까지 작용해, 가발 수출이 급증.  1970년 총수출액의 12%로서 제2위 수출품목이었으며, 순외화가득액으로는 섬유제품을 제치고 단연 1위 품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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