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위한 력사강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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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과 남조선에서의 50년대 선거와 정당정치의 성장

청소년을 위한 력사강좌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07 01:23




안녕하세요. <청소년을 위한 력사 강좌>의 장성무입니다. 오늘은 제25과 ‘남조선에서의 50년대 선거와 정당정치의 성장’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950년대 남조선의 정치는 정치지도자들 간의 과도한 분렬과 대립이 반복되였던 혼란한 시기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혼란 속에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선거를 통해 남조선 인민들의 정치의식이 높아지면서 정당정치가 성장하는 계기가 되였다는 점입니다.



1948년 5월 10일 실시된 남조선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총선거는 북과 남의 력사상 처음으로 실시된 민주주의 선거제도였습니다. 정치수준이 낮았던 당시에 이렇듯, 자신이 투표하는 한 장이 나라의 정치에 반영되는 민주주의 선거제도는 대다수 남조선 인민들에게는 낯설고 서툰 정치제도였습니다. 이 때문에 남조선의 정치는 큰 혼란을 겪게 됩니다. 초대 대통령인 리승만은 반대파가 다수인 국회에서 차기대통령으로 당선되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는 1952년 5월, 계엄령을 선포하여 다수의 국회의원을 구금하는 등의 비민주적인 정치를 강행하게 됩니다.



그러나 인민들의 절대적 신임을 받고 있던 리승만은 1952년 8월 선거를 통해 2대 대통령으로 다시 당선됩니다. 이러한 리승만의 권위주의적 행태는 1954년, 대통령의 련임제한 규정을 철폐하는 헌법 개정안을 무리하게 통과시키면서 더욱 강화되게 됩니다. 결국 1956년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리승만은 무난히 당선되지만 부통령 선거에선 야당인 민주당의 장면이 부통령에 당선되면서 남조선의 정치는 더욱 혼란스러워집니다. 한편, 이러한 혼란 속에서도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선거가 몇 차례 반복되면서 남조선의 민주주의 제도는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인민들의 정치의식도 높아져 도시를 중심으로 대통령의 권위주의 정치와 집권 여당의 횡포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광범위하게 형성됩니다.



또한 1950년대는 남조선 정치에 야당과 여당이라는 량당 정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여 정당정치가 성장하는 시기였습니다. 남조선에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선 초기의 정당들은 특정 정치리념에 뿌리를 내린 집단이라기보다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인맥 집단의 성격이 매우 강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도자를 둘러싼 정치 상황의 변동에 따라 뜻이 같으면 모였다가 뜻이 다르면 갈라서기를 거듭합니다. 그러나 1952년 여당으로써 자유당이, 1955년 야당으로서 민주당이 창당하면서 남조선 정치는 점차 량당 구조로 안정되기 시작합니다.



이렇듯 1950년대 남조선의 정치에서 주요하게 살펴보아야 할 것은 바로 ‘선거와 정당 정치, 인민들의 정치의식의 성장 등 남조선의 민주주의가 조금씩 발전해나가게 되였다는 점입니다. 마지막으로 리해를 돕기 위해 인민들이 직접 투표하여 선출하는 남조선의 대통령 선거제도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남조선의 대통령 선거제도는 인민들이 직접 선거를 통하여 선출하는 직접선거제도이다. 선거의 기본원칙은 보통, 평등, 직접, 비밀 선거의 4가지 방식으로 진행된다. 첫째 보통선거란 모든 인민들이 일정한 년령이 되면 투표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하며 둘째, 평등선거란 투표에 참여하는 모든 인민들에게 동등하게 1인 1표의 투표권을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셋째, 직접선거란 본인이 직접 투표하는 것을 말하며 넷째, 비밀선거란 투표자가 어는 후보를 선출하는지를 알 수 없게 투표하는 것을 말한다.’



<청소년을 위한 력사 강좌> 제25과 ‘남조선에서의 50년대 선거와 정당정치의 성장’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 이 시간에는 제26과 ‘재일동포 북조선으로의 귀국사업’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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