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사건과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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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련 핵심간부가 밝힌 총련의 실체, 여섯 번째

추적 사건과 진실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19 21:05




지난이야기> 한광희 동포는 총련의 청년 간부로서 재일동포 귀국선전을 비롯한 총련의 모든 활동에 적극 앞장서 왔다. 조직의 신임을 얻은 그는 총련의 비공식조직인 학습조 성원, 즉 일본 내 지하당조직인 조선로동당원으로 추천받아 입당하게 되는데….



총련의 학습조는 비밀조직이기 때문에 철저한 사상교육과 자기검토과정을 거쳐 조직원을 선발하고 육성합니다. 한광희 동포도 학습조 성원으로 추천받기 전 이미 2단계 교육과정을 거쳤습니다.



학습조 성원으로 추천받기 1년 전인 1960년 어느 날, 한광희 동포는 총련 도찌기현 본부 차승락 조직부장의 지시로 당시 도쿄의 남부 고마에시에 있었던 총련중앙학원으로 3개월 교육을 가게 됩니다. 중앙학원건물은 주변이 온통 대나무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에선 잘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은밀한 곳이었습니다. 도착 당일 입학식이 치러지고 다음날부터 본격적인 강의가 진행됐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한광희 동포는 수기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한광희 : 수업은 조선말로 진행됐습니다. 오전에는 조선로동당 력사를 기본으로 맑스-레닌주의 등 사회주의 기초리론을 배웠습니다. 교과서는 전 24권으로 된 "빨찌산 회상기"였는데, 김일성 장군이 어떻게 일제와 싸워 이겼는지, 하는 무용담이었습니다. 후에 알았지만 그 건 90%가 창작이었습니다. 또 김일성이 얼마나 위대하고 자애로운 지도자인지 말해주는 전 20권으로 된 "인민들 속에서" 라는 책도 배웠는데, 역시 전부 거짓말이었습니다. 교관은 우리에게 그 책들을 100번 되풀이해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중앙학원은 총련 조직원들에게 소위 우리말과 글 등 민족교육과 사상교육을 시키는 곳으로 초급 1개월, 중급 3개월, 상급 6개월 과정이 있었습니다. 당시 3개월 중급 교육과정에 있었던 한광희 동포도 고등학교 3학년 때 이미 관동학원에서 초급 1개월 교육을 받았습니다.



중앙학원 교육과정을 전부 다 마친다는 것은 그 만큼 사상이 투철해지고 김일성의 충실한 전사가 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또 총련조직으로부터 앞날의 간부로 약속받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교육과정은 여간 답답하고 지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외출도 허락되지 않았고, 음주는 더더욱 안됐으며 휴식 일에도 기숙사에서만 지내야 했습니다. 그야말로 철저한 격리교육이었던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3개월 교육과정 2개월째부터 교육생들은 매일 매일 자기비판과 호상비판, 즉 생활총화에도 참가해야 했습니다.



녀1: (주눅) 교관동지는 빨치산 회상기를 100번 반복해 읽으라고 했는데 저는 아직 1권도 끝까지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교관: 100번 읽으라면 읽을 것이지 왜 안 읽었는가? 여기 놀러온 줄 아는가? 그에 대해 철저히 자기비판을 하라!



남1: 지금까지 숨겨왔지만 사실 우리 형은 민단에 있습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교관: 자기 형제 하나 교양개조하지 못하면서 동무가 그러고도 혁명가인가?



남3: (마지못해) 저는 고등학교 때 근처 돼지목장에서 돼지를 훔쳐 팔아먹었습니다.



교관: 빨치산 때 김일성장군은 아무리 배고프고 고통스러워도 도적질 따위는 절대 해선 안 된다고 대원들을 가르쳐주셨다. 그래도 동무는 전후 일본에서 편안하게 살았는데, 도적질을 해? 다들 호상비판 하시오!



사람들: (격렬) (남1) 동무 같은 인간이 있으니 일본 사람들이 조선 사람을 멸시하는 것 아닙니까? (녀1) 동무는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도적질은 자기 량심을 파는 나쁜 행동입니다. (남2) 동무는 여기서 교육 받을 자격도 없소. 당장 나가시오!



한번 호상비판이 시작되면 날을 셀 때도 있었다고 한광희 동포는 수기에 적고 있습니다.



한광희: 이런 식으로 생활총화는 당사자가 울 때까지 계속됐습니다. 대체로 강의가 끝난 오후5시부터 저녁시간 사이에 진행됐는데, 그래도 끝이 나지 않으면 저녁을 먹은 후 깊은 밤에도 계속됐습니다. 심지어 날 밝을 때까지 무작정 이어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 매 사람의 생활은 밑바닥까지 죄다 드러나고 자기만의 사적인 비밀까지 여지없이 침해당했습니다."



교육과정이 올라갈수록 생활총화 강도도 더해졌습니다. 한광희 동포도 학습조성원이 된 후 6개월 상급 교육 때 혹독한 비판을 받게 됩니다.



한광희 : 1964년 나는 23살이었습니다. 총련 도치기현 청년동맹 본부위원장으로 참가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비판을 받았습니다. 총련학교도 다니지 않고, 단련도 안 된 주제에 너무 빨리 출세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억울해서 누구보다 조선말도 잘하고 발음도 좋다면서 반발했는데 그러자 또 어린 주제에 아는 척 한다며 몰아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결국은 나도 울면서 용서를 빌 수밖에 없었습니다."



1개월, 3개월, 6개월 이렇게 단계적으로 교육을 받고 나면 교육생들은 완전히 사상적으로 개조가 되어 머릿속은 전부 김일성주의 일색으로 꽉 들어차게 됩니다. 한광희 동포는 뒤늦게야 중앙학원의 교육이 거짓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한광희 : (한스럽게) 솔직히 그 때 젊었을 때는 그 정도 열심히 정진하면 어떤 어려운 학문이든지 능히 닦을 수 있었고 박사도 쉽게 됐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정열을 다 바쳐 우리가 배운 것은 북조선의 독재가가 자기 우상화를 위해 만들어낸 거짓말이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보면 내 인생에 도움이 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총련의 학습조 성원들은 학습조 양성기지인 중앙학원에서 지독한 사상교육과 자기검토과정을 통해 김일성, 김정일에게 충실한 북조선의 하수인으로, 그야말로 총련조직에 맹종 맹동하는 로보트로 철저하게 키워졌습니다.



추적, 사건과 진실 "총련 핵심간부가 밝힌 총련의 실체" 여섯 번째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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