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사건과 진실

  • 방송정보 | 종영방송
  • 출연진행:

공식 SNS

총련 핵심간부가 밝힌 총련의 실체, 두 번째

추적 사건과 진실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19 21:05




나레이션 2002년 4월 일본사회를 뜨겁게 달굴 책 한권이 발표된다. 40년간 총련 의 핵심으로 활약했고, 총련중앙본부 재정국 부국장까지 지낸 한광희 동포의 수기 “우리 조선 총련의 죄와 벌”이라는 책이였다. 김정일 정권의 지령을 받아 일본 에서 온갖 불법활동을 저질러온 총련, 한광희 동포의 수기를 통해 총련의 실체를 파 헤친다. 추적, 사건과 진실, 총련 핵심간부가 밝힌 총련의 실체



지난이야기> 목숨을 걸고 총련의 비리와 죄행을 만천하에 폭로한 한광희 동포의 수기는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총련 동포들은 조직에 실체를 알고 배신감에 치를 떨고, 한광희는 목숨까지 위협 받는데.....



한광희 동포가 밝힌 총련의 비리와 죄행을 추적해 가기 위해서는 재일동포 귀국사업부터 더듬어 올라가야 합니다. 1959년 8월13일 인도의 칼카타에서 북조선과 일본의 적십자사이에 재일조선인들 귀국에 관한 협정이 체결됩니다. 이에 따라 그 해 12월부터 1984년까지 약 9만 3000여명의 재일동포들이 북조선으로 귀국합니다. 하지만 말이 좋아 귀국사업이지 그것은 처음부터 철저히 계획된 사기극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재일동포귀국사업은 당시 로동력 보충을 원하는 북조선 정부와 우리 동포들을 일본에서 내쫒고 싶은 일본 정부의 목적이 착 맞아떨어져서 추진됐습니다. 또한 김정일 정권이 일본의 총련조직과 동포들을 얽어매기 위해 감행한 파렴치한 인질작전이었습니다. 그 모든 것의 앞장에서 돌격대의 역할을 수행한 것이 바로 일본의 총련조직이었습니다.



1959년 무더운 한 여름의 금요일 저녁, 일본 도치기 현 고꾸분지라는 한 작은 마을에서 그 지방 동포들의 큰 집회가 열렸습니다.



효과 : (집회) 응성거리는 소리



여러명: “재일동포들의 귀국사업 조기실현을 허용하라! 허용하라! 허용하라! (반복)



(OL) 다음날인 토요일 아침 팔팔한 동포청년들이 100대의 자전거를 타고, 일명 100대의 자전거부대가 일제히 도쿄의 일본 적십자사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합니다.



효과 : 자전거 소리(일제히 따르릉)

남1 : (우렁찬 연설) “여러분 우리들은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도치기 현 본부의 자전거 부대입니다. 재일조선인의 귀국사업 조기실현을 위해 여러분 모두의 힘을 보태 주십시오”

효과 : (FO) 자전거 소리(일제히 따르릉)



북조선에 대한 재일동포들의 조기귀국실현을 웨치는 총련조직의 선전깜빠니아 시위였습니다. 당시 일본 내의 여론은 오히려 재일동포들의 조기귀국을 적극 원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 때 재일동포들은 일본에선 없어도 되는 귀찮고 성가신 존재로 취급받고 있었습니다. 일본경제가 한창 성장 가도를 달리던 그 당시 일본에서는 전쟁터에 나갔다 돌아오는 일본남자들이 많았기에 조선인들의 로동력이 줄어드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일본정부는 재일조선인들은 생활수준이 낮고 란폭하며 무지몽매하다며 일본에서 빨리 내보내려 북조선과도 접촉하는 등 외교적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때 북조선의 추동 하에 총련조직은 시위행진까지 벌리며 재일동포들의 조기귀국을 위한 선전깜빠니아에 더욱 열을 올렸습니다.



당시 19살의 어린 나이에 재일동포 귀국선전사업에 앞장섰던 한광희동포는 이렇게 수기에 적고 있습니다.



한광희 : 목조건물로 된 총련 도찌기현 본부 3층은 70명-80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강당 이였습니다. 그 곳에서는 북조선 기록영화를 자주 상영하군 했는데 북조선 찬양 선전에서 그 역할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영화 속에서는 빠르게 건설되는 공장과 아빠트들이 소개되기도 했고 인테리 학생들이 활보하는 김일성종합대학의 전경, 그리고 정력적으로 현지 지도하는 김일성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면 누구라도 가난했던 북조선이 해방 후 비약적으로 발전해 잘 살게 됐다고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총련은 북조선에 대한 동경심을 더욱 부추기기 위해 10대 안팎의 순진한 청년들을 적극 포섭해 귀국선전의 앞장에 내세웠습니다. 동포청년들에게 북조선의 현실을 미화 분식한 여러 가지 영상사진들과 기록영화들을 보여주면서 그들의 정신과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그런 그들을 내세워 재일동포들에게 북조선으로의 귀국을 적극 부추겼던 것입니다.



녀1 (웅변) 여러분, 평양의 저 아름다운 유보도, 양복과 치마저고리를 산뜻하게 차려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 붉게 타오르는 용광로와 그 앞에서 일하는 로동자의 긍지 높은 표정을 보십시오.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에서 해방된 조국의 미래를 볼 수 있습니다. 사회주의 리상이 꽃펴나는 참다운 내 조국으로 귀국해서 차별없고 풍요 로운 삶을 누립시다!



여러분들 중에는 총련 동포들이 어떻게 이런 선전에 속아 넘어갔을까 하고 의문을 가지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 리유를 한광희동포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한광희 : 그때로 말하면 일본도 아직 가난한 시대였습니다. 패전국이라는 오명으로 일본인이 받은 상처와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었고 생활수준도 현재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습니 다. 그에 비해 찬란히 빛나는 우리 조국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식탁에는 맛있 는 것들이 가득하고 로인과 어린이들 웃음이 끓이지 않는 행복 넘치는 가정,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가? 하지만 그 모든 것이 가짜이며 하나에서 열까지 죄다 거짓이라는 것, 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비렬하고 악랄한 사기라는 것은 그 때엔 전혀 알 수 가 없었습니다.”



가난과 차별대우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재일동포들은 마술에라도 걸린 듯, 환상뿐인 총련의 미화선전에 깊숙이 빠져들어 갔습니다.



1959년 그 해가 다 저물어가던 12월 14일, 수많은 인파의 환송 속에 재일동포들의 첫 귀국선이 일본 니이가타항을 출발하여 북조선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총련의 거짓선전의 전모가 하나하나 밝혀지게 되지만, 재일동포들을 한명이라도 더 귀국시키려는 총련의 기만적인 선전사업은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엔딩. 추적 사건과 진실, 총련 핵심간부가 밝힌 총련의 실체, 두 번째 시간이었습니다.

전체 0

국민통일방송 후원하기

U-friends (Unification-Friends) 가 되어 주세요.

정기후원
일시후원
페이팔후원

후원계좌 : 국민은행 762301-04-185408 예금주 (사)통일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