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사건과 진실

  • 방송정보 | 종영방송
  • 출연진행:

공식 SNS

주체사상의 숨겨진 진실, 열 한번째

추적 사건과 진실
작성자
국민통일방송
작성날짜
2011-08-19 21:05




내레이션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밝힌 주체사상. 이 주체사상의 기치를 따라 전진해온 조선은, 수령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하는 사회로 변질되고 말았다. 인민대중이 혁명과 건설의 주인임을 천명했던 주체사상은 왜 수령만을 옹호하는 사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는가? 주체사상의 탄생과 성립과정을 통해 북조선 체제가 변질되는 과정을 파헤친다.



<추적, 사건과 진실, 주체사상의 숨겨진 진실>





당 중앙위원회 4기 15차 전원회의의 결정은 김일성의 이른바 5.25교시로 정리되면서 본격적으로 집행됐습니다. 많은 인민들이 5.25교시는 갑산파와 중앙당 간부, 지식인들에 대한 숙청을 기본내용으로 하고 있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이 교시가 나온 배경에는 김일성이 중국의 문화혁명 물결을 교묘히 리용하여 자신의 권력기반을 강화하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김일성의 리론서기였던 황장엽의 회고록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황장엽 김일성의 1967년 5.25교시는 북조선 사회를 특이한 형태의 극좌로 몰아가는 하나의 전환점이 되였다. 이때 표면화된 것이 과도기와 프로레타리아독재에 관한 리론투쟁이였는데, 그 밑바닥에는 중국의 문화대혁명의 영향이 스며들어 있었다.



5.25교시가 나온 직후 북조선에서도 중국의 문화대혁명과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다만 북조선에는 중국처럼 타도해야할 뚜렷한 정치세력이 없었기 때문에, 수령에 대한 우상화에 방해되는 것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그 결과 ‘당의 유일사상체계확립’이라는 이름 아래, 사상, 문화, 정치, 과학기술 분야등 전 사회가 난도질을 당했습니다. 이때부터 북조선 사회는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과도 다른 기형적인 수령절대주의 체제로 급격하게 기울어져 갔습니다. 이 시기를 체험했던 한 녀성동무는 자신의 수기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녀1 북조선 사람들은 모두가 60년대까지는 살기 좋았다고 말한다. 정확히 말한다면 5.25교시 전까지는, 북조선은 그래도 사회주의 인민의 나라였다. 그러나 5.25교시를 계기로 계급투쟁과 프로레타리아 독재의 강화, 수령 우상화의 심화, 인테리 혁명화를 몰아치는 가운데 사회 전반에 극좌적인 바람이 불어 닥쳤다.



북조선은 사회주의 인민의 나라가 아니라 김일성의 나라가 되여 갔습니다. 동지였던 김일성이 위대한 수령이 되였고, 점차 인간이 아닌 신의 존재로까지 우상화되여 갔습니다. 이 무렵부터 전 인민이 초상휘장을 달도록 강요받았고, 법우의 법으로 군림하며 인민들의 정신까지 통제하는 ‘당의 유일사상 체계확립의 10대원칙’도 나왔습니다. 갑산파에 대한 숙청사건이 수령에 대한 절대우상화로까지 번지게 된 데는, 김일성에 대한 우상화 경쟁으로 후계자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던 김정일과 김영주의 암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 문제는 주제와는 벗어나기 때문에 여기서는 다루지 않겠습니다.



한편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지만, 김일성의 유일사상이 강조되고 있는 가운데 인간을 주체로 한 진짜 주체사상이 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김일성의 리론서기였고, 김일성을 방조해 군중로선에 기초해서 주체로선을 리론적으로 정리했던 황장엽을 통해서였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력사란 참 야릇하다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당시 황장엽은 중앙당 서기실 동료들과 함께 쫓겨난 상태였습니다. 김일성이 박사목걸이까지 만들어주며 신임을 주었던 황장엽이 수난을 받게 된 것은, 1966년 김일성종합대학 20돐 기념론문집에 실린 한 편의 론문 때문이였습니다. 황장엽의 론문 <사회발전의 동력>은, 사회주의 과도기와 프로레타리아 독재 문제 그리고 사회발전에서의 인테리의 역할에 대해 강조한 것이 주된 내용이였습니다. 순수한 연구론문이였지만 중국과의 분쟁을 겪고 있었던 시기였고, 또 갑산파 숙청이라는 정치적 물결과 결부되면서 당내 리념론쟁을 촉발시켰습니다.



이 론쟁은 김일성 종합대학 측과 조직지도부장 김영주와 중앙당학교 리론가들이 맞서는 형세가 됐습니다. 김일성 종합대학 사람들은 황장엽을 지지했고, 김영주 등은 황장엽의 론문이 계급투쟁과 프로레타리아 독재를 약화시키는 반당적 수정주의 글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런데 리념론쟁이 정치적 물결을 타면서 점차 목숨을 건 사상투쟁으로 변해갔습니다. 김일성은 이 리념론쟁을 자신의 권위를 높이는 데 활용하려고 했습니다. 그 내용이 5.25교시에 고스란히 담겼는데, 김일성은 자신만이 올바른 리론을 내놓을 수 있는 리론의 대가인 것처럼 자처하면서, 그동안의 론쟁에 종지부를 찍고 일방적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김일성 (마이크, 자신만만) 지금 당내에서 론쟁이 일고 있는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로의 과도기와 프로레타리아 독재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지금껏 여러차례 이야기 해 왔지만 황장엽은 쏘련 류학시절 때 이 지식 저 지식을 조립해서 얻은 철학지식을 가지고 ‘우경 기회주의’적인 리론을 펼치고 있습니다. 반면에 김영주 동지와 중앙당학교 리론가들은 중국과 같은 ‘좌경기회주의적’인 립장에서 리론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량측 모두 똑똑한 견해가 없습니다. 우리는 주체로선의 관점에서 과도기 문제를 풀어야만이 옳바른 로선을 내올 수 있는 것입니다.



5.25교시가 나온 직후 ‘인테리 혁명화’의 바람이 몰아치면서 황장엽과 의견을 같이 했던 중앙당 서기실 동료들은 모두 쫓겨났습니다. 황장엽도 추방될 것을 각오하고 짐을 싸놓았습니다. 그런데 황장엽에 대해서는 비판만 계속 할 뿐 추방명령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황장엽은 평소에 친하게 지냈던 김일 부수상을 찾아가 조언을 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김일 총장동무, 어서 오시오. 그래. 요즘 어떻게 지냅니까?

황장엽 부수상 동지, 오랜 만에 뵙습니다.

김일 그래, 상의하자는 일이 무엇입니까?

황장엽 제 론문 문제 때문입니다. 부수상 동지도 잘 알겠지만 요즘 저에 대한 비판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도 잘못이 있다면 책임을 지겠다고 결심하고 있지만, 우에서 비판만 계속할 뿐 속시원한 결론을 내려주지 않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부수상 동지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김일 총장동무, 리론적 과오는 리론적으로 극복해야 하지 않겠소. 지 금으로서는 내가 이 말 밖에는 못해주겠소.

황장엽 아닙니다. 부수상 동지의 말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일은 황장엽을 돕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황장엽도 그런 말을 기대한 것은 아니였습니다. 하지만 김일의 말은 황장엽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습니다. 황장엽은 김일의 말대로 리론적인 문제는 리론적으로 풀기 위해 즉 과도기와 프로레타리아독재 문제를 해명하기 위해 말 그대로 필사적으로 달라붙었습니다. 그것이 맑스-레닌주의의 오류를 극복하고 인간을 중심으로 한 주체사상으로 발전되리라고는 황장엽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추적, 사건과 진실, 주체사상의 숨겨진 진실>, 열 한번째 시간이었습니다.





<참고 및 인용자료>

1. 황장엽 회고록. 시대정신

2. 개인의 생명보다 귀중한 민족의 생명. 시대정신. 황장엽 지음

3. 현대 북한의 지도자. 을유문화사. 서대숙 지음

4. 한 권으로 보는 북한사 100장면, 가람기획. 고태우 지음

5.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기파랑, 교과서포럼 지음

6. 조선일보통한문제연구소, http://www.nkchosun.com , 시사백과

전체 0

국민통일방송 후원하기

U-friends (Unification-Friends) 가 되어 주세요.

정기후원
일시후원
페이팔후원

후원계좌 : 국민은행 762301-04-185408 예금주 (사)통일미디어